제주 제일의 봉천수 '하가리 연화못'

제주공항에서 서쪽으로 1132번 도로를 타고 달리다보면 마늘밭과 양파 밭이 시원스레 펼쳐집니다. 제주 들녘의 운치는 무엇보다도 검은 돌로 쌓아올린 밭담이지요. 들녘을 사이에 두고 30분 정도 달리자, 왼쪽에 커다란 표지석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표지석은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마을을 안내하는 '하가리'표지석이었습니다. 하가리 표지석 앞에서 좌회전을 하고 마을길로 5분 정도 달렸더니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 앞에 도착했습니다. 더럭분교 앞에는 커다란 연못 하나가 자리 잡고 있더군요. 연화못입니다.
 
작은 시골마을 연못의 정체는?  
   

   
▲ 연하못  ⓒ 김강임

"시골마을에 이렇게 큰 연못이 있다니?"

행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못에서는 수련이 꽃봉오리를 드러냈습니다. 무려 3천 7백여평이 넘는 연화못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갓길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안내표지석을 읽어봤습니다. 친환경습지생태학습장이라 새겨진 안내표지판에는 연못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현황이 사진과 함께 담겨있었습니다. 안내표지판에 의하면 연화못에는 연꽃과 수련은 물론 개구리밥과 바랭이, 흑삼능, 살모사와 자라, 쇠백로와 흰뺨검둥오리, 맹꽁이 등이 산다고 합니다. 작은 시골마을치고는 너무나 큰 연못, 연화못의 정체가 궁금해지지 시작했습니다.

   
▲ 친환경 습지 생태학습장  ⓒ 김강임

친환경습지 생태학습장, 스트레스 확-풀려

지난 2000년 12월, 친환경습지 생태학습장으로 태어난 연화못, 연화못은 현재 생태 기행장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올록볼록하게 설치한 발마사지 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직은 일교차가 큰 탓에 맨발로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지만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었더니 해방된 기분입니다. 연못에서 불어오는 5월의 바람이 양말 속에 닫혀 있었던 발가락을 간지럽게 만들더군요. 도심지에서 하이힐을 신고 아스팔트길만 걸었으니 발바닥이 오죽 답답했겠어요. 하지만 발마사지 길을 걸으니 극진한 대우를 받는 느낌입니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을 뭐라 표현할까요. 

   
▲ 마름위에 떠 있는 자라  ⓒ 김강임

마름 위에 떠 있는 용궁의 자라

이제 막 이파리를 키워가는 마름 위에 자라가 느릿느릿 헤엄을 치며 행인을 맞았습니다.   

"야, 자라다!"

함께 데이트를 즐기던 지인은 호들갑을 떱니다.  감탄사에 놀랐는지 자유를 만끽하던 자라가 물속으로 숨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맑지도 투명하지는 않은 연못에 물결이 일더군요. 

   
▲ 습지 산책로  ⓒ 김강임

연화못에는 서너 개의 산책로가 나 있었습니다. 물론 산책로는 서로 연결돼 있었지요. 연화못 오른쪽 모서리에 나 있는 산책로부터 걸어 보았습니다. 습지식물들이 산책로 모서리에 서식하고 있더군요. 특히 등이 휜 버드나무는 각박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세인의 마음처럼 어깨가 축 쳐져 있었습니다.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 연화못  ⓒ 김강임

연못의 지킴이, 5월의 신부 같아

연화못이 특별함은 너른 연못에 피어나는 연꽃과 수련입니다. 이제 막 붉은 꽃잎을 드러낸 수련의 꽃잎이 5월의 신부 같다고나 할까요. 산책로를 걸으니 연못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더군요. 처음 비행기를 탈 때 기분처럼 설레기도 하고, 행여 연못 속에 빠져 버리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조심조심 산책로를 걸을 수 밖에요. 그 걸음이는  꼭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 같았어요. 

온갖 동식물들이 꿈틀대는 습지지역 위에 구름이 쉬어 갑니다. 둘이 걷는 산책로가 심심할 것 같았는데, 연화못 속에 숨에 있는 마름과 수련, 부들이 행인을 유혹하니 가슴이 콩당콩당 뛰더군요. 연화못의 유혹에 설렙니다.

 ▲ 용궁가는길, 육각정 가는 산책로  ⓒ 김강임

▲ 연못위에 떠 있는 육각정  ⓒ 김강임

용궁 같은 육각정 배를 띄워 놓은 것 같아

연화못 한가운데는 육각정이 있습니다. 물론 육각정으로 통하는 산책로는 모서리에서부터 연결돼 있었지요. 육각정으로 들어가자니 용궁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하가리 연화못 육각정은 길에서 보면 마치 연못 위에 배를 띄워 놓은 것 같지만, 이 육각정에는 알고 보면 아픈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하가리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연화못 터는 예전에 야적의 터였다 합니다. 

   
▲ 한때 '야적의터'였다는 연화못 ⓒ 김강임

행인을 농락하고 재물을 약탈한 '야적의 터'  

고려 충렬왕 때, 현재 연하못은 '야적들의 집터'였다고 합니다. 야적들은 연못 한가운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마을을 지나가는 행인들을 농락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했다 합니다. 신임판관 초도순시가 있을 때 야적들은 판관 일행을 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이 마을 뚝할망이 야적들의 흉계를 관가에 알렸다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관군이 출동하여 야적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뚝할망이 야적들의 칼에 맞아 죽었다 하네요. 따라서 관가에서는 뚝할망의 충정심을 기려 벼슬을 내리고 제주향교의 제신으로 받들게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움푹 파인 야적의 집터를 소와 말에게 물을 먹이는 못으로 활용하다가, 17세기 중엽 수리 공사를 하여 지금의 연못으로 탄생되었다 하니 연화못의 역사가 그리 아름다운 사연을 간직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연못은 우마 급수나 빨래터로, 나물을 씻는 용도로 사용하며 뚝을 쌓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전하니 연못에도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군요.  연화못의 육각정 주변에 피어나는 연꽃과 수련도 사연이 있었다네요. 연꽃의 유래는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19세기 중엽, 제주목사 지방 순시 중 이곳에 들러 '연꽃잎으로 술을 빚어 마시고 시를 읊었으며 양 어머니로 하여금 연꽃을 지켜 가꾸도록 했다'는 유래가 있다 합니다.

계절의 여왕 5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1569-2번지 연화못 산책로를 걸어보세요. 용궁 가는 기분을 느낄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연하못 육각정은 건립당시 수중에서 야적배 가옥의 편재, 초석 등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는길: 제주공항- 노형오거리 -1132번 도로-구엄-하가리 표지석(왼쪽)-좌회전-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연화못.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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