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17] 4만명 가능할까 했는데 7만명 서명받는 강정주민들

 

▲ 기자회견 29일 오전 10시 강정마을 주민들과 주민소환운동본부 회원들이 제주도선관위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장태욱  

 6월 29일 이른 아침, 강정마을회관이 술렁거렸다. 지난 45일간 주민들이 제주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받은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을 첨부해서 선관위에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강동균 마을회장, 양홍찬 해군기지저지 대책위원장, 윤호경 사무국장 등을 포함한 주민 30여 명이 버스와 승용차에 몸을 싣고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이 있는 제주시 이도2동으로 향했다.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이날 오전 10시에 제주도 선관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있었다. 기자회견 예정 시간이 가까워오자 도선관위 1층 로비는 취재진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전국 광역시도지사에 대한 최초의 주민소환운동이라는 역사적 현장에 함께하기 위해 그 좁은 틈에 비집고 섰다.

애초 주민소환투표 청구에 필요한 서명인 수는 전체 유권자의 10%에 해당하는 4만1694명이었다. 서명운동이 시작할 당시만 해도 강정마을 주민들은 주민소환이 무엇인지 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홍찬 대책위원장 조차도 소환운동 초기에는 필자에게 '과연 4만 명이 넘는 유권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4만 명 넘는 유권자에게 서명 받을 수 있을까'

▲ 서명인 접수 서명인 명부가 든 상자를 선관위 4층 사무실로 운반하고 있다.
ⓒ 장태욱  

 그런데 이날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선관위에 접수를 신청한 서명자 수가 7만7367명이라고 밝혔다. 주민소환투표 청구에 필요한 최소인원 수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서명자의 주민등록번호나 주소가 행자부 전산망에 등록된 것과 일치하지 않아 무효처리 될 서명이 상당수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김태환 지사 소환에 대한 주민발의가 성립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주민소환운동본부 고대언 공동대표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에서 김태환 지사의 전횡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가 어느 수준인지, 그리고 그를 심판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결연한지를 엿볼 수 있었다.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은 마을공동체를 파괴하고 주민들의 피눈물을 끝내 외면한 권력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가 뽑은 도지사라도 민심을 거스르면 퇴출될 수 있다는 도민들의 경고입니다.

진정성 없는 대화와 기만적인 소통으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오늘 제주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또 다른 출발점에 섰습니다. 주민소환은 제주의 자존을 확인하고 도민주권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잘못된 권력에 대한 도민적 심판은 멈출 수 없습니다. 도민들께서 만들어주신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 완성을 위해 다시 힘껏 뛰겠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주민소환투표 서명 서류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선관위 건물 4층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도선관위 직원들과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만7000여 명의 서명이 든 서류함을 제주도선관위 강동완 조사관에게 제출했다.

▲ 강동균 마을회장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고 나서 강정마을회 강동균 회장이 언론사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장태욱  

 선관위에 접수된 서명인에 대한 확인작업이 약 20일 정도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서명인 수가 주민발의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정이 되면 선관위는 법에 명시된 대로 김태환 지사에게 20일 정도 소명 기회를 준다.

이런 절차에 따라 주민발의가 성립되어 주민투표가 공고되는 시점은 약 8월 10일경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제주도선관위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주민투표가 공고되는 시점까지는 주민소환투표운동을 일체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제주도선관위에서 50분가량의 일정을 마친 강정마을 주민들은 주민소환운동에 함께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수고했다'며 서로 격려를 나눴다. 오랜만에 주민들 표정에 웃음이 넘쳐났다.

▲ 귀가 준비하는 주민들 기자회견과 주민소환투표 청구 과정을 지켜본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각자 타고온 차로 향하는 모습이다.
ⓒ 장태욱  

 필자가 "그동안 서명을 받느라 고생하셨는데 앞으로 며칠은 편히 다리 뻗고 주무실 수 있겠다"고 인사를 전했더니,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과수원에 밀린 일이 산적하다"고 답했다. 당분간 주민소환투표운동을 할 수 없다는 말에 섭섭하기는 하면서도,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생업을 돌볼 수 있으니 여간 홀가분하지 않은 눈치다.

한편, 주민소환운동의 당사자인 김태환 지사도 이날 오전 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소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김태환 제주지사 29일 오전 김태환 지사도 기자회견을 열어 주민소환운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 제주의소리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대상지는 2년 전 확정된 것으로 강정마을 주민 여러분과 도민 여러분의 이해를 바란다"고 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에 변경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김 지사는 또, "서명과정에서 불법, 탈법 사례도 접했고, 심지어 오류 및 위법사례가 10~30%에 달한다는 여론도 있다"며, 주민소환운동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인 "서명부 열람이나 이의신청, 서명자 정보공개 청구 등의 행위를 일체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명인들을 확인하기 위해 서명명부의 정보공개를 청구할 경우 서명인의 인적사항 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제주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 지사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도민 여러분의 심판을 받겠으니 소환청구인 측도 주민소환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했다.

"내일 검찰 출두해야 하는데...."

▲ 마을회관 주민들이 '김태환 지사 퇴진'이 적힌 깃발을 모두 자진 철거했다. 마을회관 옥상에 있던 깃발도 철거했다.
ⓒ 장태욱  

 이날 오후 강정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집집이 세워놓은 깃발을 철거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집 입구에 '해군기지반대', '김태환 지사 퇴진'등이 적힌 깃발을 세워놓았는데, 선관위에서 '주민 소환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김태환 지사 퇴진'등의 깃발을 철거해야한다고 요구하자 이에 응하는 것이다.

"우리 마누라는 내일부터 내가 과수원일을 도와줄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검찰에서는 자꾸 출석요구서가 날아드니 출석을 한없이 미룰 수가 없잖아. 우리 마누라 얼마나 실망이 클까?"

강정마을 주민들이 오랫동안 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는 싸움을 하면서 시위가 잦아졌는데, 검찰에서는 주민들이 1인 시위 등을 할 때 주민들이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마을회장에게 책임을 물어 출석을 요구했다고 한다. 저녁에 마을회관에서 만난 강동균 마을회장이 필자에게 농담 섞인 푸념에서 주민들이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고난의 정도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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