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보·강관순·김성오·김순종·김여석 선생…제주지역 ‘사회주의 독립운동’ 공식인정

86주년 3.1절을 맞아 제주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유공자 5명이 국가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국가보훈처는 86돌을 맞는 3.1절을 계기로 일제에 항거해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여운형, 권오설, 조동호, 김재봉 선생 등 57명의 독립 유공자를 포함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총 165명을 포상한다. 

이 중에는 제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5명의 독립운동가가 포함됐다.

특히 그동안 사회주의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4명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4명이 선정돼 그동안 ‘반쪽’으로 전락된 제주의 독립운동사가 복원되게 됐다.

▲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강창보 선생
독립유공자로 선정돼 포상을 받는 제주출신 독립운동가는 제주야체이카 총책임자였던 강창보 선생과 혁우동맹원으로 항일해녀투쟁을 주도했던 강관순, 김성오, 김순종 선생이 포함됐다. 이들 4명은 모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펼쳐왔다.

또 민족주의계열 독립운동으로는 조천격문사건의 김여석 선생이 포함됐다.

강창보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그리고 나머지 4명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는 故 강창보(1902~1945) 선생은 제주시 용담동 출신으로 일제 치하에서 청년동맹과 제4차 조선공산당 제주야체이카를 조직해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지배 체제를 비판하고 농민과 해녀들의 권익보호와 의식고취 활동을 전개해 왔다.

강창보 선생은 세급불납운동과 세 차례에 걸쳐 해녀투쟁을 지도, 일제에 의해 검거됐으나 유치장에서 탈출해 일본 대판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을 전개했으며, 조선문제시국연구회를 조직해 시국문제를 연구하는 활동을 전개하면서 다시 국내 잠입을 모색하다 체포돼 1943년 징역 7년을 선고 받아 복역 중 옥사했다.

▲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강관순 선생
강관순(1909~1942) 선생은 우도면 연평리 출신으로 조선일보 기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야학소를 통해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민중계몽 운동을 고취시켰다. 혁우동맹 핵심원으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지도하다 검거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으며 옥중에서 해녀 노래를 작사하고 이를 밖으로 빼내 항일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김성오(1910~1986) 선생은 우도면 연평리 출신으로 보통학교 교사와 야학소를 통해 문맹퇴치 활동과 구습 타파 운동, 그리고 일제에 항거하는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비밀결사인 혁우동맹에 가담해 해녀들의 투쟁기금과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 오다 해녀항쟁 사건 배후조종과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김성오 선생
김순종(1899~1972) 선생은 구좌읍 하도리 출신으로 항일독립운동 비밀결사체인 혁우동맹원으로 가입해 해녀들을 교육시키고 항일해녀투쟁을 지도하다 일제에 체포돼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았다.

민족주의 계열인 김여석(1891~1961) 선생은 북제주군 한경면 출신으로 서당훈장을 지내면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조천만세운동 할 때 격문을 작성 배포했다. 3.1 만세운동 거사에 앞서 고사를 지내고 격문을 붙이다 일제에 발각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오는 3.1절 5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됨에 따라 건국이후 제주출신 중 독립유공자로 정부 포상을 받은 분은 모두 134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또 도내 사회주의 항일운동의 대표적 사건인 혁우동맹과 관련해서는 1990년 김시곤(1901~1983) 선생과 2003년 문도배(1908~1953)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이후 이번에 4명이 포함돼 독립유공자는 모두 6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김전근 해녀항쟁기념사업회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시점에서 70년전 일제치하의 이념적 논쟁을 갖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가 부끄러울 뿐”이라면서 “그분들이 당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방편, 수단으로 한 것으로 비록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정부가 혁우동맹을 독립운동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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