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소환투표 논란의 출발이 아닌 끝이 돼야 한다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이제 2주 후면 결판이 나게 됩니다. 제주해군기지 후보지 선정과정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촉발된 사상 초유의 광역단체장 소환투표가 최종점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소환정국에서 제주도민 여러분들의 관심은 뭘까요? 뭐니뭐니해도 ‘투표율’이겠죠?

주민소환법상 소환투표가 성립되기 위해선 유권자의 1/3이 투표해야만 투표함을 열 수 있기 때문에, 최대 관심은 투표율이 33.344% 이상 될 수 있냐는 것일겁니다.

여러분도 아시죠? 투표율 1/3이 얼마나 어려운지. 2007년 12월 전국 최초로 실시된 경기도 하남시 주민소환투표가 31.1%로 결국 2% 부족해 주민투표자체가 무효가 됐습니다. 제주에서도 행정구조개편을 위한 주민투표가 당시 제주도정에서 엄청난 물량을 쏟아붓고 도청 공무원을 총동원해 투표를 독려한 후에야 36.7%로 겨우 데드라인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말이 1/3이지 유권자 세명 중 한명이 투표에 참여한다는 게 쉬운 수치는 아닙니다.

소환본부가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소환대상자인 김태환 지사가 느긋한 입장도 아닙니다. 주민소환서명 참여한 숫자만 놓고 본다면 불안할 수 밖에 없죠. 소환서명운동에 들어갈 때만해도 잘해야 2만~3만명하고 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청구요건인 4만1649명을 훨씬 넘어선 5만1044명(서명인원 7만7000여명 중 주소불명확, 이중서명 등 2만5860명은 무효판정)이 서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소환본부는 적극적인 투표를 통해 투표함을 열겠다는 전략이고, 반대로 김 지사는 투표에 불참해 주민소환 자체를 무효화시킨다는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김 지사는 주민소환 투표가 발의된 8월6일에 ‘투표불참도 하나의 권리’라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더니 13일에는 홈페이지를 통해 아예 ‘투표 불참! 쉽고 확실!’이라며 사실상의 불참전략을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한 체육단체 간부는 산악인들이 모인 행사에서 건배사로 ‘(주민투표소에) 가지! 말자!’라고까지 선창해 말썽을 빚고 있기도 합니다.

김 지사 진영에선 “주민투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게 투표이후 갈등을 더 부추길 수 있다”며 갈등해소론 차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자칫 대응을 잘못했다간 어떻게 번질지 모르는 주민투표의 폭발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적 사고가 앞선듯 합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둬 상대 예비후보 진영에서 주민투표에 적극적으로 가세할 경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고요. ‘당당하지 못하단 욕을 먹을 망정,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겠다’는 고강도 김빼기 전략입니다. 김 지사 입장에선 활용 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주민투표법도 본인에 한해 ‘투표불참’ 운동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3자가 이를 밝히면 그건 주민투표법 위반이 됩니다.

문제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양측이 승복하고 갈등을 잠재울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투표율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제주사회 일각에서 투표이후 정국에 대해 우려가 나오는 것도 지금 양측이 벌이는 투표전략이 또 다른 논란의 ‘촉발점’이 되지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한번 주민투표 이후 벌어질 가상정국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민투표가 1/3을 넘고 투표결과 찬성이 우세하면 김 지사는 주민소환법에 의해 도지사직을 잃게 되고, 해군기지 건설계획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해군은 국책사업이라며 ‘중단없는 전진’을 밝히겠지만 계획자체가 상당히 지연되거나, 심지어는 후보지 선정과정 절차에 대한 전면 재검토까지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정부지사가 지사직을 대행하겠지만 주민투표 결과에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두 번째, 주민투표가 1/3을 넘고 투표결과 반대가 우세하면 김 지사는 즉시 도지사직에 복귀하게 됩니다. 해군기지 건설은 김 지사 뜻대로 탄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해군기지 문제가 철학적 가치문제를 담고 있어 쉽사리 논쟁이 가시진 않겠지만 적어도 반대 목소리는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그동안 쌓여왔던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가 현안으로 부각되겠죠.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주 명쾌합니다. 주민투표 결과에 대해 진 쪽에선 억울해 하고, 주민소환제도의 맹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투표 결과에 대해선 승복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주민투표 결과가 법적 구속력도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투표란 게 법 이상의 사회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 번째 시나리오입니다.

투표율이 1/3을 넘지 못해 아예 투표함을 열지 못하고, 주민소환투표 자체가 무효되는 경우입니다. 현재까지 김 지사 진영이 바라는 결과죠.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자칫 ‘문제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논란의 출발’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소환정국 이후 지방선거 정국으로 곧바로 이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논란과 정쟁의 단초로 이어질 소지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투표에 30%만 참여해 소환투표가 불발에 그쳤다고 합시다. 그럼 나머지 다수인 70%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투표율이 그 이하여도 마찬가집니다. 주민소환에 반대입니까, 찬성입니까? 아니면 기권일까요?

김 지사 쪽에선 어쨌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민소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도민들이 많다는 ‘반대’의 뜻이라며 소환본부를 압박할 겁니다. 반대로 소환본부가 선뜻 승복할지 여부에 대해선 속단하기 힘든 듯 합니다. 투표결과엔 승복하지만, 내용적으론 수용하겠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투표불참에 대해 양측이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해석할 순 있지만, 엄밀히 말해 70%는 ‘기권’입니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김 지사가 ‘투표불참’을 핵심전략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김 지사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불참할 수도 있지만, 설령 찬성한다고 해도 혈연, 학연, 지연 등 4돈의 8촌까지 각종 연고로 묶인 제주사회에서 남을 끌어내리는 투표가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또 여기에다 주민소환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찬성과 반대 모두가 싫어하는 도민들도 이 70%에 포함되는 겁니다. 법적으로 주민소환투표 자체가 무효가 되지만, 도민들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줬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담겨 있는 겁니다.

이번 주민투표가 제주해군기지, 그리고 김태환 지사의 도정운영 스타일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는 계기로 삼아햐 한다는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투표불참보다는 투표에 적극 참여해 찬성과 반대에 대한 도민들의 정확한 뜻을 묻는게 낫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투표율이 50% 이상만 된다면 감히 누구도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논란도 당연히 끝을 보게 될 겁니다.

투표참여와 투표불참이 법적으로 허용되고 양측이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옳다 그르다

▲ 이재홍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제주의소리
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만, 투표이후 도민사회 안정이라는 대의(大義)를 고려할 때 무엇지 바람직 한지는 양쪽 모두 진지한 성찰이 있기를 당부합니다. 도민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 추신 : 일부 공무원들이 나서서 ‘투표불참’을 종용하고 외친 것은 정말 꼴불견입니다. 주민소환법 위반 여부를 떠나 투표에 적극 참여하자고 독려해야 할 공직자가 ‘하지 맙시다’를 외친다는 건 ‘법을 지키지 맙시다’라고 선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차라리 ‘반대합시다’라고 하는 게 떳떳한 것이겠죠. 제주도정은 ‘오늘’을 넘어 그들이 공직을 마치더라도 무한하게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공직사회의 발등을 찍은 자가당착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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