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24] 도보순례 이틀, 남원에서 성산으로

▲ 도보순례 강정마을 주민들이 뙤약볕을 맞으며 도보순례를 하고 있다. ⓒ 장태욱

14일 아침 강정마을을 출발한 도보 순례단은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남원리에서 열린 유세를 관람한 후 저녁에 남원성당에 여정을 풀었다. 하루 종일 옷과 신발이 젖은 채로 먼 길을 걸어왔던 주민들은 몸을 씻은 후 물집이 잡힌 발을 어루만졌다.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마을 청년회원들이 준비해온 맥주를 꺼내들었다. 모처럼 밤을 같이 보내게 된 주민들에게 맥주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낮에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 남원성당 주민들이 도보순례 첫날에 남원성당에서 밤을 보냈다. ⓒ 장태욱
 

9시쯤 되니 남원 농민회 회원들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지지방문을 왔다. 강동균 회장과 주민들이 이들을 맞았다. 농민회 회원들을 강정마을 주민들의 당한 처지를 위로하고 오랜 고난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말도록 당부했다. 농민회 회원들은 지난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을 받을 때부터 강정마을 주민들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15일 아침 6시 30분부터 부녀회원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전날 오랜 시간을 걸은 후에 밤에 술까지 마셨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도 주민들은 모두 제 시간에 일어나 식사를 마쳤다.

사정상 성당에서 밤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주민들이 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7시 45분경 버스를 타고 남원성당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온 주민들이 합류하자 순례대는 다시 길을 떠났다.

▲ 이승민 어린이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다. 아빠와 함께 순례에 동참했다. ⓒ 장태욱
 

전날에는 비가 많이 내려 걷기에 불편했는데. 15일에는 태양이 강하게 내려 비쳤다. 강한 햇볕으로 인해 얼굴이 따가워진 주민들은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 발짝 내리쬘 때마다 등에 땀이 흘러내렸다.

이번 순례 대열 가운데서 군데군데 어린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금은 강정에 살지 않으면서도 고향이 강정마을이라는 이유로 아빠와 함께 고행에 참여한 이승민(초5) 어린이는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순례대에 합류했다. 순례에 참가한 이유를 물었더니, "강정마을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의 고향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소원대로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윤수, 예원 남매 윤수는 9세, 예원이는 7세다. 할아버지와 함께 순례에 동참했다. ⓒ 장태욱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온 김윤수(9세), 김예원(7세) 남매도 있었다. 오랜 순례 길에 지쳐서 투정을 부릴 만도 한데, 손으로 브이(V)자 사인을 보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오전 11시경 순례대는 표선 사거리에 도착했다. 순례대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강동균 회장을 태운 유세차가 유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표선사거리에 여정을 풀고 유세를 지켜봤다.

 

"지금 김태환 소환대상자는 주민의 심판을 받기를 거부하고, 공무원과 관변단체들을 동원하여 주민들에게 투표 거부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표선읍민 여러분들은 8월 26일 주민투표에 참여하셔서 김태환 지사를 심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제주도민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유세 마이크를 잡은 강동균 마을회장의 목소리에 더욱 자신감이 스며 있었다. 유세가 끝나자 주민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점심을 먹기로 예정된 풍천초등학교로 향했다.

▲ 표선 사거리 이곳에서 주민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유세를 들었다. ⓒ 장태욱
 

표선 사거리에서 풍천초등학교까지 이르는 중간에 표선 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진다.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뙤약볕에 물놀이는커녕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는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만 주민들 표정에서 불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표선해수욕장을 지나니 길가에 주택이나 상가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편도 2차선 도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이곳은 자동차들이 이전보다 더 빠르게 지나갔다. 자동차 운전자를 제외하고는 순례단을 바라보는 이가 없었다.

▲ 점심식사 풍천초등학교 교정에서 점심을 먹는 모습이다. ⓒ 장태욱
 

풍천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해보니 부녀회에서 벌써 점심을 준비해놓고 순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미리 준비한 파란 천막 덮개를 깔고 앉았다. 오이냉국에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가 점심 메뉴였는데,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밥을 먹었다.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주민들도 있었다. 

"여긴 뭣 하러 왔어. 빨리 안가? 여기가 어디라고…."

식사가 한참 진행 중인 갑자기 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방문자가 주민들에게 다가 오는 것을 보고 정영희 여성위원장이 고함을 지른 것이다. 알고 보니 서귀포 시청 소속 공무원들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위로하겠다며 음료수와 귤을 사들고 찾아온 것이다. 식사를 하다가 갑자가 닥친 사태를 눈치 챈 주민들이 이들에게 한마디씩 거들었다.

"우린 그런 거 안 먹어도 좋으니 가져가쇼.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유분수지. 우리 마을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게 누군지 모르쇼. 당신들은 오로지 김태환에게 충성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니 더 이상 우리를 찾아오지 말란 말이요."

▲ 의 서귀포시청 공무원들이 물과 귤을 들고 주민들을 찾아오자 정영희 여성위원장이 거칠게 항의해서 돌려보냈다. ⓒ 장태욱
 

결국 그 공무원들을 들고 온 것들을 도로 차에 싣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식사를 마친 주민들은 오후 세시까지 휴식을 취한 후 당일 숙소인 성산포 성당을 향해 길을 떠났다.

덧붙이는 글 | 8월 26일 제주에서는 김태환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됩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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