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 "'4전 5기'의 신화는 순간에 몰두했기에 가능"
권투선수 홍수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복싱의 전설, 전 복싱 세계챔피언 홍수환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서귀포시가 주최하는 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 스물세 번째 강연자로 초청받아 지난 18일 서귀포시 평생학습센터 강단에 섰다.

서귀포 강의에서 홍수환은 ‘서귀포의 아들’ 양용은의 PGA 우승 얘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그는 양용은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양용은 선수와 골프를 쳤던 적이 있어요. 대회 우승이 가능할까..하더라고요. 대체 무슨 소리냐 그랬어요. 골프가 복싱처럼 매 맞는 운동도 아니고, 체중 뺄 일도 없지 않느냐. 나도 했는데 왜 못하냐고 했어요. 그랬던 양용은 선수가 세계 무대에서 우승한 거예요.”

 

▲ 홍수환 전 복싱 세계챔피언 ⓒ이미리 기자

홍수환은 양용은 선수의 우승 소식에 자신의 ‘4전 5기’의 젊은 날이 겹쳐 감회가 새로운 듯 했다. 특히 홍수환 선수가 홀어머니 밑에서 ‘헝그리’ 운동인 복싱으로 세계챔피언이 됐던 것처럼, 양용은 선수도 골프장 볼보이를 하며 쌓은 실력으로 PGA 우승을 거머쥔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키웠는데 그 아들이 PGA 우승을 했다. 한 번 우승하기도 힘든 프로경기에서 두 번이나 이긴 것이다. 양용은은 자기가 좋은 하는 것에 미친 결과, 우승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는 것이다.”

홍수환의 한방은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7년 카라스키야를 맞은 홍수환은 누구나 패배를 예상하는 선수였고, 반면 카라스키야는 11전 11KO승의 전적으로 ‘지옥의 악마’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사실 홍수환은 패배가 결정된 선수였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그랬다. 하지만 홍수환 본인은 달랐다. 누구나 무적 카리스키야의 희생양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홍수환 자신만은 ‘모든 준비가 끝났고 문만 열려봐라’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홍수환은 당시 상대 선수에 대한 정보 입수조차 어려웠던 시기 남산 순환도로를 거쳐 남산에서 야외음악당까지 오르는 계단에서 연습했다. 그 연습 과정에서 몸과 정신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고 홍 선수(선수라고 불러주길 바랐다)는 회고했다.

▲ 홍수환 전 복싱 세계챔피언 ⓒ이미리 기자
“남산 계단을 야외음악당에서 탑까지 한 번도 쉬지않고 올라가면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목표를 주었어요. 하지만 되질 않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안되겠다고 말했더니 ”안 되는 게 어딨어. 니가 두리번 거렸기 때문에 안된거야. 계단만 보고 뛰어봐“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계단만 보고 뛰었더니 어느 순간 계단이 안 보이더라고요. 탑 꼭대기까지 뛴 겁니다. 그 때 깨달았어요. 뛰다가 얼마나 왔을까 생각하며 앞이나 뒤를 쳐다봤을 때, 더더욱 지칠 수 있다는 걸요. 그때 그때 순간에 충실한 것이 나를 챔피언을 만든 것이었어요.”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죽기 살기로 링 위의 순간을 맞이할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었다. 카리스키야는 홍수환을 얕잡아보며 3KO의 룰도 바꿔가며 무제한 KO로 홍수환에게 기회를 주는 척했다. 하지만 홍수환은 카리스키야든 누구든 상대방은 상관 없었다. 그는 연습해 왔던 대로 그 순간에 충실할 뿐이었다.

홍 선수는 선생님에게 “선생님, 내가 이 시합 죽더라도 타월 던지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진다는 생각조차 하지 마라”라고 응대했다.

링 위의 홍 선수는 남산 계단을 뛰듯 매 라운드에 충실하기 위해 라운드 판을 보지도 않고 임했다. 몇 라운드가 지나갔고 얼마나 남았는지 안다면 더 지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이것이 프로정신이라고 전했다.

“몇 라운드가 남았는지 알고 들어가면 더 지친다. 이것은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노는 것이 프로인 것과 마찬가지다. 일할 때 놀다가 놀 때 일할 걱정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 스물 세번째 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가 홍수환의 '누구에게 한방은 있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이미리 기자

매 라운드, 매 계단을 치고 맞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모든 경기가 끝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챔피언’으로 불리고 있었다.

“홍수환이 권투를 잘 해서 카리스키야를 이겼을 것 같나요?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한방이 있다’는 얘기는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카리스키야는 나를 네 번이나 다운 시킨 후에 코너에 들어갔을 때 꺼진 불이라고 다시 보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꺼진 불 속에 조그만 불이 있었어요.”

3라운드를 내리 다운된 홍수환에게 선생님은 “1회전만 더 뛰고 말자”고 말했다. 홍 선수는 마지막 라운드를 향해 죽을 힘으로 나왔다.

▲ 홍수환 전 복싱 세계챔피언 ⓒ이미리 기자
“카리스키야는 가볍게 나왔죠. 나는 죽을 각오로 나왔고요. 카리스키야는 마이너스 정신으로 나오고, 나는 플러스 정신으로 나온 거예요. 마지막 라운드, 펀치가 제대로 들어 맞았어요. 그리고 카리스키야가 쓰러졌죠. 카라야스키의 몇 초의 안도 때문에 네 번이나 다운됐던 홍수환이 이긴 겁니다.”

그는 이 장면에서 ‘겸손’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잘 나갈 때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이 장면에 들어있어요. 카라야스키가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뻔했어요. 하지만 시합날에 가서 무제한 다운으로 왜 시랍 룰을 바꿉니까. 세 번 다운이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시합 당일 룰을 바꿨죠. 이는 선수 보호차원에서도 전무후무한 사례입니다.”

▲ 지난 18일 서귀포시 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된 스물세 번째 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에 참석한 수강자. ⓒ이미리 기자

 

그는 다시 양용은 선수의 얘기를 꺼냈다.

“양용은 선수가 볼 나르기를 하다가 PGA 챔피온이 됐습니다. 저보다 더 힘들었던 삶이었죠. 뭐가 유산이고, 뭐가 재산입니까? 바로 ‘가난’과 ‘어려움’이야 말로 한 생명을 더 큰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진정한 재산입니다. 홍수환이 기억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라야스키를 쉽게 이겼다면 나를 기억하겠습니까. 네 번 쓰러졌을 때 TV를 다 껐는데 다시 켜니까 이겼어요. 지고 있다가 이겨서 잊혀지지 않는 겁니다."

잊혀지지 않는 선수. 홍수환이 바로 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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