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주년 3.1절, 일본서 유일 혈육 조카딸 왔으나 '직계' 아니란 이유로 받지 못해

삼일운동 86주년, 해방 60주년을 맞은 2005년 3월1일. 특히 올해 삼일절은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들이 대규모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돼 더욱 뜻깊은 날이 됐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에 추서된 것을 비롯해 제주도 사회주의 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끈 '강창보 선생'이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 혁우동맹원으로 해녀항일투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강관순.김순종.김성오 선생이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 등이 '독립운동가'로 추서됐다.

이날 오전 10시 조천읍체육관에서는 삼일절 기념행사와 더불어 이들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들의 유족들에게 정식 포장 수여식이 있었다.

하지만 포장 수여식에는 기묘한 광경이 벌여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한편에서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단에서 포상을 받은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객석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독립운동가로 정부 포상을 받을 분은 총 5명. 이날 기념식에서는 사회주의 계열 강관순 선생과 민족주의 계열 김여석 선생 2명만 포상이 전수됐다. 김순종.김성오 선생은 유족이 사는 부산시에서 전수받았다.

기념식 사회자는 강창보 선생의 유족은 일본에 있기 때문에 직접 가서 포상을 수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창보 선생의 유족은 이날 현장에 있었다. 강창보 선생의 유일한 혈육이라고 할 수 있는 조카딸인 강영원씨(66)가 행사장 객석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강창보 선생은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옥사했으며, 강 선생의 부인과 아들도 해방 이후 사망했다. 또  유일한 형제로 강창보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사인 '제주도 3걸인 중 1인, 강창보 선생 투쟁사'를 쓴 동생 강창거 선생<사회주의 계열로 항일운동을 벌이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대전형무소에서 2년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도 지난해 11월 이 세상을 떠나 그의 외동딸인 원영씨가 고 강창보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셈이었다.

그러나 행자부령에는 포장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본인과 배우자, 호주상족자로 제한돼 있어 영원씨는 이날 현장에서 포장을 받을 수 없었다.

강원영씨는 행사가 끝난 후 제주의 소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을 전했다.

강씨는 "큰 아버지의 항일운동이 60년 동안 기다린 보람끝에 국가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기쁘다"면서도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포상을 직접 받지 못해 화가 나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강씨는 "아버지로부터 큰 아버지의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오늘 행사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며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포상을 전수받을 수 있기 때문에 참을 수 있다"고 서운함을 달랬다.

강창보 선생의 제자이자 사회주의 운동으로 20여년간 옥고를 치른 고성화 선생(89)은 "강창보 선생은 제주도 항일운동의 최고봉이자 사회주의 운동에서 최고 권위자"라며 "정부에서 포상 전수를 결정하고도 현장에서 수여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보훈지청 관계자는 "상훈법과 행자부령에는 포장을 수여받을 수 있는 사람은 본인과 배우자, 호주상속자로 돼 있다"며 "강창보 선생 유족의 경우 조카딸로 방계이기 때문에 행자부에서 검토를 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어제 갑자기 보훈지청으로 찾아와 포장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지만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우리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강창보 선생(1902~1945)은 1920년대 민족해방을 위해 '사회주의'에 투신, 1925년 사상 단체인 '신인회'를 구성하고, 혁우동맹, 해녀항일 투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강 선생은 해방을 불과 8개월 앞둔 1945년 1월7일 대전형무소에서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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