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은 지금 32] 강정마을을 소재로 석사논문 발표한 이보라씨

강정마을 해군기지 투쟁을 소재로 한 것으로는 최초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지난 7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이보라씨는 <제주도 내 '군사기지 유치'담론을 통해 본 평화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 청구논문을 제출하여,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의 인준을 받았다.

심사위원에 김은실 지도교수, 조순경 교수와 더불어 <88만원 세대>, <촌놈들의 제국주의>로 잘 알려진 우석훈 교수가 포함되어 눈길을 끌었다.

필자가 이보라씨를 만난 건 지난 강정마을 주민들이 주민소환투표를 앞두고 도보순례로 제주도 전역을 누비던 8월 18일 저녁이다. 자신의 논문이 심사를 통과하고 인쇄되어 나오자 이씨가 이를 들고 직접 주민들을 찾아왔을 때다. 당시 그는 주민들과 함께 순례에 참여하기도 하고, 천주교 금릉공소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도 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영감을 받고 강정마을에 내려올 생각을 했어요. 평소에 우석훈 선생님을 뵌 적도 있고 해서 논문심사를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어요."

이씨의 문제제기도 우석훈의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내용을 인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군사기지를 건설할 때 국가가 취하는 '군사적 폭력'이 과거처럼 물리적인 힘으로 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빼앗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에 군사기지를 '발전의 촉매'로 제기하고 주민들 스스로가 군사기지를 '유치'하게 하는 (비가시적 폭력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씨는 논문을 쓰기 위해 2008년 6월에 강정마을을 처음 찾아왔고,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마을에 숙소를 정해 3개월은 주민들과 함께 생활도 했다고 한다. 가을에는 귤을 수확하는 농민들과 함께 일을 하기도 했고,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 회의에 참여하여 회의 과정을 기록하는 서기의 일을 감당하기도 했다.

"초창기에 연구자(이씨 본인)는 찬성-반대측을 모두 인터뷰하기 위해 그 경계에 서 있고자 했지만, 주민들 모두가 찬성과 반대를 이름표처럼 달게 된 상황에서의 경계란 어디에도 없는 장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연구자 입장에서 주민들은 '주요 정보자'였기 때문에 언어와 관습을 모르는 것의 책임은 모두 연구자 자신에게 있었고, 때문에 현지에서 살기 시작하자마자 제주어를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논문 13쪽)

▲ 이보라씨 지난 8월 18일 이보라씨가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주민들을 찾아왔다.
ⓒ 장태욱

이씨는 해군이 '욕망을 생산하는 방식'을 동원할 수 있는 배경을 강정마을이 처한 환경에서 찾고 있다.

강정마을은 앞바다 범섬에 천염기념물이 있는 연산호 군락지가 있고, 유네스코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드물게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강정천이 있는데, 이곳에는 은어와 원앙새가 터를 잡고 서식한다.

하지만 이 마을이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인해 유원지지구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고, 그 때문에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 여태 '저개발' 상태에 놓여 있다. 이씨는 저개발과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초기에 주민들로 하여금 '마을에 군사기지가 들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기대는 국방부의 "전에 없던 기지를 만들겠다"는 달콤한 유혹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군사기지가 제기한 '마을발전'에 대한 담론은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균열과 모순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모순은 서서히 주민들에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 강정마을 해안가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로 발표한 강정마을 해안가에는 많은 주민들이 비닐하우스를 짓고 원예에 종사하고 있다. 이 곳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대부분 해군기지에 반대한다. ⓒ 장태욱
2007년 4월 26일 주민 86명이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일사천리로 해군기지 유치안을 통과시킨 일, 다음 날 전(前)마을회장을 비롯한 마을 주요 구성원들이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마을회의에 모인 인원은 86명에서 150명으로 부풀려지는 일 등을 통해 대다수 주민들은 당시까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자신들이 마주 대할 폭력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주민들이 '가장 큰 폭력'의 존재를 경험하게 된 계기는 6월 19일에 해군기지 안건을 놓고 실시하기로 예정된 마을주민투표가 "찬성측 주민들(해녀들)이 기표소를 부수고 투표함을 탈취"해 감으로써 무산되는 일이 벌어지면서다.

당시 마을 총회에는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700명 정도의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는 당시 사건으로 인해 해군기지 유치에 찬성하던 대부분 주민들이 반대로 돌아섰고 마을공동체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적 폭력은 그런 (궨당과 갑장 등 전통적인)관계를 붕괴시켰고, 더불어 그 관계를 맺고 있는 '자신'도 붕괴시켰다. 그리고 '누구의 궨당, 누구의 갑장'과도 같이 이웃을 설명하는 방식은 이제 '찬성'과 '반대'라는 이름표를 붙이게 되었다. … 이로써 자취가 감춰진 폭력에 의해서 주민들은 분열되고, 군사적 폭력은 자신의 존재를 감출수록 더욱 강력하게 작동하게 되는 역설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논문 67쪽)

시간이 지나면서 해군기지에 대한 찬성-반대는 점차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양상을 띠었다. 해군기지에 대한 찬성측과 반대측이 상대방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 도보순례 강정마을 군사기지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의 핵심은 군이 '드러나지 않는 폭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이 들어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 폭력에 대항하기가 더 어렵다. ⓒ 장태욱
그리고 이씨는 본질적인 군사적 폭력은 드러나지 않은 채 주민들끼리 상대방을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향해 도덕적 비난을 하게끔 하는 이 대목을 "강정마을에서 일어나는 군사적 폭력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런 와중에 강정해안가에 서식하는 연산호 군락이 해군기지 문제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군인들은 애초 "20회 이상 바다 속을 조사했으나 산호는 고사하고 모두 모래뿐"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군인들보다 바다 속 지리에 밝은 해녀들은 군인들로 하여금 "연산호 군락이 존재함을 인정"하게 하였다. 군인들의 폭력적 실체가 주민들에게 서서히 그리고 뚜렷하게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씨는 군사기지 문제에서 폭력의 실제는 이전의 것과 확연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강정마을의 경우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게 하고, 주민들을 서로 분열시키는 '주민 동원형'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특정한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생산되고 작동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이라는 것과, 그 일상을 구축하는 '군사적 폭력'이라는 것은 다시 정의되어야 하며, 그것은 특정한 시·공간에 근거한 경험을 통한 것일 수밖에 없다."(논문 112)

그리고 진정한 평화운동은 그런 구체적 시간과 공간에 실재하는 폭력과 마주 대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폭력이 실재하는 '현장'에서의 활동만이 진정한 평화운동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본 연구는 피스로드맵이나 평화체제론과 같이 큰 그림은 있으되 '지금-이곳'에서 할 수 있는 실천적인 물음을 막는 방식의 운동, 또 평화를 갈등관리나 마음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운동에 대해, 구체적인 현장을 통해 사유하지 않는 '평화'개념은 곧 상층 중심 담론으로 독점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논문 113)

이씨는 논문에서 '현장 평화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필자에게 과거 자신이 그런 태도를 취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하고 평화운동 한답시고 서울에서 사무실에서 활동하면서 가끔 분쟁이 있는 지방현장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사무실에 앉아 토론도 하고 성명서도 발표했고요. 그런데 강정마을을 다녀간 이후로는 참 느낀 게 많거든요. 특히, 평화운동을 하려면 현장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실제적 폭력과 대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평화운동은 모두 거짓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씨는 필자와 대화하는 가운데 '현장'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러 분야에서 땀흘리는 활동가들이 귀담아 들을 이야기라 생각이 들었다.

지면 한계로 다 소개하지 못했지만, 논문은 풍부한 자료와 마을 주민들의 생생한 육성에 기초를 두고, 갈등의 진행과정에서 발생했던 쟁점 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서술하고 있다. 눈문에 실린 객관적 자료만으로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투쟁을 이해하는데 텍스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만하다. 뜻있는 단체나 출판인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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