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제주지역 촛불추모제' 현장

▲ 촛불추모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제주지역 촛불 추모제'가 9월 19일 저녁에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열렸다. ⓒ 장태욱 용산참사

9월 19일 저녁 7시부터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는 시민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제주지역 촛불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4일 수원역 광장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촛불추모제를 펼친 이래, 지방에서는 7번 째로 열린 추모제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에서 유족대표가 참여하여 자신들이 지난 1월 20일 겪은 참상과 그 이후 국가로부터 받은 수모를 증언하기도 했다. 이날 유족을 대표해서 제주를 찾은 사람은 경찰 특공대가 현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고 이상렬씨의 아들이자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의 형인 이성민(45세)씨다.

▲ 유족대표 이성민씨 고 이상렬씨의 아들이자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의 형인 이성민씨가 유족을 대표해서 제주를 방문했다. ⓒ 장태욱
 

이씨는 마이크를 잡고 "용산 재개발 구역은 우리가 30년이 넘게 살아온 삶의 기반인데, 어느 날 아파트가 들어선다면서 우리에게 상가를 비우라고 하기에 철거민들은 생존권을 요구하기 위해 망루를 치게 된 것"이며, "보수언론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보상금을 노린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또 "우리 아버지는 30년 동안 한 장소에서만 장사를 해오신 분이고, 집에 돌아올 때는 매일 아내와 손자에게 줄려고 붕어빵을 손에 들고 오시던 분"이라고 말한 뒤, 정부가 조금만 신경을 써서 아파트를 짓고 남는 부지에 조그만 가건물 하나만 지어주면 철거민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요구는 목살한 채로 아버지와 같은 분들을 떼잡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며 정부와 보수언론에 대해 그간 쌓인 분노를 터트렸다.

그리고 이씨는 "당시 불에 탄 시신들을 부검한 의사들의 소견서를 보면 대부분 손목이나 손가락 절단, 두개골파손 등으로 나타났다"며 "이를 보면 경찰 특공대가 농성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 5인의 영정 용산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다섯 명의 영정이 현장에 전시되었다. ⓒ 장태욱

이씨는 검찰의 수사기록에 대해서도 "총 1만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기록 중 공개되지 않은 3천 페이지 분량에는 용역과 경찰 간 오간 대화 내용이나, 특공대의 증언 등이 포함되어 있다"며, "이 부분을 공개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시 참사의 원인을 은폐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법원이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도 검찰이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검찰과 경찰이 진실을 덮은 상태로 나머지 재판을 진행해서 철거민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의 발언이 끝나자 제주여성농민회 한경례 위원장이 추모시 '정의의 이름으로 너흴 용서치 않으리라(김경훈 작)'를 낭송했다.

▲ 한경례 위원장 제주여성농민회 한경례 위원장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시를 낭송했다. ⓒ 장태욱
 

생목숨 다섯이나 앗아가고 유족들의 절박한 외침마저 뭉개버리는
인간의 탈을 쓴 야만의 짐승들에게,
나는 횃불의 호흡으로 분명하게 말한다.

"너희들이 저지를 불의를 용서치 않으리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는 이들의 것을 빼앗아 배를 더 불리고 있는
얼굴가죽 개가죽 같은 놈들에게,
나는 광장의 외침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너희들이 저지를 불의를 우리가 응징하리라"                  …

▲ 임기환씨 촛불추모제 사회를 맡은 임기환씨 ⓒ 장태욱
 

한경례 위원장의 시낭송이 끝나자 노래패 청춘의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청춘 단원들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눈물을 감추지 못해 공연을 관람하던 시민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임기환씨는 촛불문화제를 마치면서 시민들을 향해 "추석 전에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치러질 수 있도록, 추석 전에 유족들이 천막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철거민들 생존을 위한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희생자들에 대한 정부의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대해서 싸우자"고 당부했다.

촛불추모제를 마친 시민들은 희생자 5명의 영정 앞에 차례로 헌화하고 돌아갔다.

▲ 헌화 촛불추모제를 마친 시민들은 고인들의 연정에 헌화하고 돌아갔다. ⓒ 장태욱

용산참사 이후

1월 20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경찰 1인(김남훈 경사)과 철거민 5인(한대성, 이성수, 양회성, 이상림, 윤용헌) 등 총 6명이다. 철거민 중 이상림, 양회성씨는 용산 주민이고, 나머지 3인은 용산 철거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투쟁에 동참한 전철련 조합원들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이틀만인 1월 22일에 검찰은 철거민들 중에 마지막까지 망루에 있던 5명을 구속했다. 이들 중 3명에게는 경찰 1명을 숨지게 한 책임을 물어 특수공무방해치사 등의 혐의를, 또 다른 2명에게는 경찰을 다치게 한 책임을 물어 특수공무방해치상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에는 농성을 주도한 혐의를 적용해서 이충연(37)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을 추가로 구속했다. 이충연 위원장은 용산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고 이상렬씨의 아들로, 현장에서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싸늘한 주검을 지키고 있었다. 검찰은 사태의 책임을 물어 철거민들을 구속하면서도,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구속된 6명을 포함해 총 9명의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인데, 수사기록 공개를 주장하는 변호인 측과 이를 거부하는 검찰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재판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당시 희생을 당한 철거민들의 시신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순천향대 병원에 보관되어 있고, 유족들은 8개월째 합숙생활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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