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동훈 제주도의회 행정장치위원장

▲ 장동훈 위원장.ⓒ제주의소리
명절을 맞아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놋그릇 제기(祭器)를 깨끗하게 닦아 놓도록 일렀습니다. 그릇이 얼룩졌다가는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며느리는 신경을 곤두세워 윤이 번쩍일 정도로 깔끔하게 닦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행주가 아니라, 걸레로 닦았다는 사실은 저자신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깨끗하게’라는 말 속에는 더럽게 보이지 않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위생적으로 라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연휴기간이 짧거나 경제사정상 고향을 찾지 못한다는 쓸쓸한 소식입니다. 반면, 연휴를 이용하여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부류들도 많다고 합니다. 호텔 측에서는 당연히 명절 차례상을 차려주는 이벤트를 마련하여 고객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추석이라고 하면 풍작에 감사하며 갓 수확한 곡식과 과일을 조상에게 바쳐 제를 지내고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모여 다양한 놀이를 즐기는 날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여유도 없이 허겁지겁 살아야 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즐겁기는 고사하고 온갖 일거리에 치일 것을 지레 걱정하는 나머지 두통에 시달리는 등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마치 귀찮은 연례행사처럼 치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추석이 유교적 풍습이나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할 일만도 아닙니다. 중국이나 일본 등 동양은 물론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풍습이 있습니다.

과거 농경사회 속에서 잉태되었던 추석의 풍속도가 온전한 문화로 자리 잡아 나가기란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명절상 차림도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고, 주문만 하면 척척 배달까지 해줍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손가락만 보고 달은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본질(달)은 망각하고 현상(손가락)이나 형식에만 집착한다는 따끔한 충고가 배어 있습니다.

홍동백서니 좌포우혜의 틀에 매몰될 필요는 없습니다. ‘현고학생부군 신위’가 아니라, ‘아버님 신위’이면 어떻습니까? 예로부터 가례(家禮)라고 하여 그 집안 나름대로의 절차나 질서에 의해 정성껏 맞이하면 됩니다. 다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일가친척을 만나 정을 느끼고, 이웃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추석을 한층 너그럽고 풍요롭게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추석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우리네 이웃들의 행복도 함께 두둥실 떠올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장동훈·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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