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장
"첫 단추 잘못 꿴 생각은 않고 멀쩡한 옷 다시 구멍 내려나?"

  제주도 고위당국자가 강정 해군기지 보상액을 두고 면적으로 보면 8700억원도 많이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 미군기지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주도가 정부를 상대로 땅장사를 한 것인가. 부동산 중개인이 “옆집보다 집값 잘 받았으니 수수료나 넉넉하게 내놓으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이런 비교는 어떤가. 최근 나온 YF쏘나타의 개발비는 4년간 4500억이었다. 8700억원 중에 10년에 걸쳐 국비로 낼 보상규모가 4700억원이니 강정의 가치는 신차 한 대 개발비인 셈이다.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끝난 뒤 도정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밀어붙이고 있다. 도민통합추진위원회와 제주지방변호사회 등에서 정부에 대해 ‘지원특별법’을 제정할 것과, 그것이 수용될 때까지 도는 행정행위를 중단하고, 도의회는 심의를 보류할 것을 요구했지만 즉각 거절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1일 열린 제주도 직원정례조회에서 간부들을 내세워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데 대한 비난 여론을 겨냥해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다.

그 자리에서 환경 담당 과장은 “특히 심의과정에서 해군기지 반대단체 관계자들이 방청과정에서 많은 부분에 있어 법질서를 위반한 내용이 있었지만 그분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해서 그대로 진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전례없이 휴일 저녁에 열린 환경영향평가심의가 회의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항의 표시로 애국가를 부른 것을 두고 ‘법질서 위반이었지만 그냥 두었다’는 말이다. 

초등학생들도 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의 권력은 소통을 통해 행사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설득하고 합의에 이르는 데서 완성된다. 애초에 일방적으로 마을총회를 열고, 그 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못할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밀어붙인 것은 누구인가. 도정은 지금까지 도민과 성실하게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 제주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내팽개친 채 분명하지도 않은 보상액수를 들이대며 밀어붙였다.

정례조회 말미에 김태환 지사는 “해군기지 특별법 요구 여론의 경우, 경주, 평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김 지사가 말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란 무엇인가. 평택은 강정처럼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받은 바 없고, 경주의 방폐장은 주민갈등의 원인이 된 강정 해군지기와 달리 주민들의 합의에 의해 유치되었다는, 그 사실 말고 우리가 모르는 다른 점이 무엇인지 김 지사는 말해야 한다. 그래야 소통이 된다.

해군이 제주에 새로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발표한 것이 1993년 12월, 이미 16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는 제주의 군사기지 필요성이나 타당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고, 도정은 주민합의를 이끌어내고 난 뒤 정부와 경제적 보상 등을 논의했어야 함에도 이런 과정들이 모두 생략되고 말았다. 강정사람들을 내쫓고,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해군기지를 제주에 만들어야 하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고 도민들을 설득했어야 한다. 모르면 묻고 가야 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통해야 한다. 21세기의 리더십은 연대를 전제로 한 소통이다.
 
2007년 해군 참모총장이 도내 언론인과 사회단체장, 해군기지 후보지역 마을 이장 등에게 편지를 보내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주남방해역은 해저자원을 둘러싼 주변국들간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 경계획정으로 해양영토분쟁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수출입 물동량의 99.7% 이상이 오고가는 핵심 해상 수송로로서 국가경제의 사활적 운명이 걸려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제주연안을 지키고, 물동량을 지키기 위해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난 달 19일, 소말리아 해역에서 청해부대 소속 대조영함이 해적들로부터 외국 상선들과 피랍된 외국인을 구출했다. 청해부대로 선 벌써 8번째 공훈이라고 한다. 지금도 해군은 멀고먼 아프리카 해역도 지키고 있는데, 제주해역을 지키기 위해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강정 마을에서 출퇴근하고, 환경부지사를 새로 임명하고, 특보들을 두었다. 연내에 해군기지 관련 행정절차를 이행할 것이라면서 시한을 정해 놓았다. ‘졸속’ 비난을 무릅쓴 채 도의회 상정일자에 맞추느라 환경영향평가심의를 무리하게 진행한다. 그야 말로 밀어붙이기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놓고 단추구멍이 모자란다고 멀쩡한 옷에다 또 구멍을 내는 꼴이다. 단추구멍을 제대로 못 맞추었으면 풀고 다시 꿰어야 한다.

▲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장
서두를 일이 아니다. 경주에 방폐장이 가기까지 19년이 걸렸다. 주민들의 합의를 거쳐 자발적인 결정으로 해결하는 데 그렇게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동안에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마찬가지다. 16년 동안 제주에 해군기지가 없어 생긴 ‘국가경제의 사활적 문제’나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은 무엇이었는가. 그런데 왜 서두르는가. 누가, 왜 연내에 다 해치워야 한다고 시한을 정하는가.

우리에게는 아직도 대답이 필요한 질문들이 너무 많다. 제주도와 해군은 지금이라도 제주에 왜 해군기지가 필요한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왜 그것이 강정에 있어야 하는지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도민들과 소통해야 한다. 소통은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그래야 제주의 주인인 제주도민들의 자존이 지켜진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규정한 헌법이 지켜진다. 도민에게 길을 물어라.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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