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29)] "제주를 둘러싸고 있는 '물의 유연함'을 배워야"

“제주가 발전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발전도 있지만 ‘자립’한다는 뜻도 있다. ‘자립’이란 제주의 발상으로 세계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정착과 지역발전 연구에 천착해온 강형기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서귀포시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린 스물아홉 번째 ‘서귀포시글로벌아카데미’ 강단에 섰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강 교수는 요즘 회자되는 ‘발전’은 “발전이 뭔지도 모르고 말하는 발전”이며 “지역 발전을 말하면서 ‘개발’쪽으로만 생각을 끌고 간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그 일례로 “제주 땅값 오르면 제주가 발전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답했다.

“농토가 5만원 하던 게 20만원 하면 발전일까? 제주 갈치나 옥돔, 오분자기 값이 오르면 ‘제주의 자립’에 도움이 된다. 노동의 대가로써, 내 행동이 가격을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어장값이 뛰고 땅값이 뛰는 것을 ‘지역 자원의 상품화’라 하는 데 이는 지역사람을 예속의 상태로 몰아간다. 아무리 노동을 해도 나는 어장을 못산다. 지역 노동상품의 값이 오르면 내 삶이 가격을 결정하지만 지역 땅값이 오르면 가격이 내 삶을 결정한다. 이는 자립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제주 땅값이 오른다는 것은 제주 사람이 발전에서 도태된다는 것이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이와 함께 땅의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환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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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영어로 ‘Develope’인데 뜻에 하나는 ‘개발’도 있고 하나는 ‘발전’도 있다. 그런데 지역 발전을 말하면 전부 ‘개발’쪽으로 생각을 끌고 간다. 말할 때도 ‘내가 저 어장, 오름, 올레길을 개발해야지’ 말한다. 그런데 남녀 관계를 개발하나? 아니다. 발전하는 것이다. 또 사건도 발전한다. 남녀관계나 사건은 그것이 주체다. 반면 어장, 올레는 대상, 개체로 본다. 지역 사람들이 지역을 발전시킨다면서 지역을 대상으로 여겨온 것이다.”

강 교수는 지역이 발전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발전은 그 주체성이 높아가는 것”이다.

“정부에서 뭐 해주겠다 한다. 보조금 끌어오고 외부 기업유치도 좋다. 하지만 제주 사람이 통제할 수 있고 행복에 도움되는 쪽에서 해야한다. 주체는 없이 객체만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또한 제주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건 중 하나로 ‘생태적 건전성’을 제안했다. 생태적 건전성이란 ‘지속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몇 번 해보고 끝내려는 것은 발전이 아니다. 제주가 발전한다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세대간에 공평해야 한다. 제주는 누가 물려줬나? 조상으로부터가 아닌 후손으로부터 빌려쓰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세대로 갈수록 더 풍요하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발전이다.”

또 강 교수는 “발전은 풍토적으로 건전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 도시의 발전 원동력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자연자원과 접근성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자연자원 보다도 그 지역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손을 잡고 어떻게 나가느냐가 더 중요해 졌다. 그 지역사람들이 ‘수혜자로서의 주민’에서 ‘책임지는 주민’으로 성숙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그는 제주인들에 대한 진심어린 우려와 충고로 폐쇄성을 들었다. 이는 제주뿐 아니라 작은 지역에서도 나타는 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발전이란 좋은 생각을 내놓으면 그 생각이 받아들여지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보다 해결하는 데 드는 힘이 더 많이 쓰여야 한다. 지역보다 대도시 가보면 좋은 생각 받아들이기 쉽다. 예를들어 서울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좋은 말을 하면 좋다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들을 모아서 일하면 된다. 하지만 좁은 곳은 정적이다. 그 안이 좋냐 나쁘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싫으면 안된다, 그 사람정도면 괜찮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골로 올수록 좋은 말이 침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돼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제주다.”

제주에 ‘관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3T'가 필요한데 테크놀로지(Technology), 탤런트(Talent)와 똘레랑스(Tolerance)다. 이 중 제주에 필요한 것이 마지막 T인 ‘똘레랑스’라고 지적했다.

반면 강교수는 또다른 가능성을 제주를 찾을 때마다 발견하곤 한다.

강 교수는 88년에 첫 제주강연을 한 이래 현재까지 50여차례 강연을 할 정도로 제주를 자주 방문했다. 제주에 당도할 때마다 그는 “제주 사람은 사방(四方)에 엄청난 선생을 끼고 있구나” 한다. 선생이란, 바다를 이른다.

“섬에 사는 사람은 바다가 자기를 제한하는 철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물이란 엄청난 선생이다. 물은 모든 그릇에 담기는 즉시 그 그릇의 주인이 된다. 어떻게 그럴까? 유연하기 때문이다. 물은 흘러흘러 가장 넓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어떻게 가장 넓은 곳의 주인이 될까? 물은 낮은 곳을 향한다. 물은 겸손하니까, 낮은 곳을 향하는 겸손함이 가장 넓은 곳을 자리잡게 해주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한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 찬 다음에 흐른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물의 겸손함과 기다릴 줄 아는 태도는 개인의 덕목일 뿐 아니라 도시 경영 리더십이 추구해야할 점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이든 도시든 유연해지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늙는다’.

특히 강 교수는 좋은 리더란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견디게 하는 사람이 아닌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 산에 소나무가 있는 데 한 소나무는 굉장히 추워한다. 춥다는 걸 알고 ‘나는 견뎌야지. 이 추위를 견뎌야지’하고 인고의 시간으로 버틴다. 반면 다른 소나무는 똑같은데 춥지는 않다. 추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봄을 기다린다. 조금 있으면 꽃이 피고, 새가 오겠구나 한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간경영과 도시경영’은 매한가지라는 게 강 교수의 일관된 생각이다. 그러면서 도시경영의 나침반인 인간경영을 배우기 위해 ‘논어’를 자주 빌어온다. 서귀포시 시민들에게도 강 교수는 제주를 바로 보기 위한 공자의 가르침을 전한다.

“논어, 맹자 보면 강을 본 사람은 큰 강을 본 사람한테 자랑말고 큰 강을 본 사람은 바다를 본 사람에게 자랑말라고 했다. 공자도 동산에 올라보니 노나라가 작고, 태산에 올라가니 천하가 작았다. 그러면서 세상 견문을 보고나서 너희 동네를 말하라고 했다. 제주 관점서 제주를 보면 제주가 보이지 않는다. 제주를 바로 보려면 제주 바깥서 봐야한다. 내가 나를 알려면 내 기준이 아닌 여러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봐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자신을 경영하나 도시를 경영하나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유연해지지 못하듯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강 교수는 “도시도 나이가 있다. 도시가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늙는다.”고 강조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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