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만큼 탈콤한 인심, 허탕친 나를 위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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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의 제주기행] 하례1리 호촌봉수터, 노란 귤로 뒤덮였네

▲ 예촌망 바다에서 바라본 예촌망이다. 오름이 얕아서 오름 주변에서는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 장태욱

서귀포 하효동 해안에 최근 들어 그 비경이 알려져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쇠소깍이 있다. 그리고 쇠고깍의 동쪽에는 해발 68미터의 야트막한 오름 하나가 숨겨져 있다. 오름 정상이 그다지 높지 않은데다 주변 나무들에 가려 오름이 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이 오름을 호촌봉(狐村峰)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예촌망이라고 한다.

호촌은 예촌의 옛 지명이고, '망'이란 봉수가 있는 오름에 붙는 이름이다. 이 봉수는 1454년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에 '호아촌봉수(狐兒村峰燧)'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이원진 목사가 발간한 탐라지(1653)에 호촌봉수로 기록되었다. 호촌봉이 소재한 '하례리'의 마을 이름이 호아촌, 호촌, 예촌, 하례리 등으로 변해왔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

▲ 진입로 진입로가 매우 좁다. 그런데 오름 주변에는 이 오름과 관련하여 아무런 안내문도 붙어있지 않다. ⓒ 장태욱

이 봉수는 서쪽으로는 자배봉수와, 동쪽으로는 삼매봉봉수와 서로 신호를 연결했다. 다른 봉수와 마찬가지로 6명의 별장과 12명의 봉군들이 배치되어 6개의 번으로 나눠 보초를 섰다. 한 개 번에 별장 1명, 봉군 2명이 배치되고, 이들은 6일에 한번, 한 달에 5회 당직을 서는 형태였다. 

예촌망은 바로 남쪽에는 지귀도를, 남서쪽에는 숲섬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예촌망에 오르면 서귀포시 해안의 아름다운 경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기대로 오래 전부터 이 오름을 방문할 마음을 품고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근처를 지날 일이 있어서 예촌망에 올라보기로 했다. 예촌망이 소재한 하례리 해안에서 마을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어 예촌망 진입로를 찾았다. 진입로는 하례 초등학교 서쪽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300미터쯤 거리에 있다.

▲ 과수원 예촌망에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오름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귤나무 사이에 만들어진 길을 걸어야 한다. ⓒ 장태욱

옛 기록에 여러 차례 이름이 올라있는 역사유적지임에도, 예촌망의 진입로에는 입구표시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가다보니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있던 한 농부를 만났다.

"예촌망에 오르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이쪽 과수원이 예촌망입니다. 사유지라서 지금은 전부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어요,"

이럴 수가! 농부는 이 오름이 사유지라서 오래전에 과수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과거 이 오름 정상에 있었던 봉수대는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한 5년 전쯤 관청에서 현장을 조사한다고 다녀간 적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 후론 다녀간 사람이 없어요. 과수원에 볼게 뭐가 있겠어요?"

농부의 말을 듣고 나니 실망이 여간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오름 정상만이라도 밟아보기로 했다.

▲ 허철진씨 가족들 이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허철진씨 가족들이 귤을 수확하고 있었다. ⓒ 장태욱

과수원 대문이 열려있기에 대문을 지나 과수원 안쪽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일을 하는 모양이었다. 귤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름 정상에 이르자 귤을 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허철진씨와 그의 부모님들이다. 허씨네는 친척 소유로 되어있는 이 농장의 일부를 임차해서 3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바다를 좀 들여다보려 했지만 과수원 방풍림으로 빼곡히 둘러싸여 있어서 바다는 내다 볼 수조차 없었다.

제주도 어디를 가나 귤나무에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과수원 둘레로 방풍림을 심어놓았다. 특히 해안가의 경우는 태풍에 직접 노출되는 데다 해풍에 염분의 피해까지 당할 우려가 있으니 과수원에 방풍림을 조성하는 것은 필수 사항이다.

"저 동쪽 모퉁이에 무덤이 있어요. 그 무덤 앞 돌담에 서면 바다가 조금 보입니다."

허씨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보니 방풍수 사이로 멀리 마을과 섬이 보였다. 하지만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실망으로 되돌아왔다.

▲ 바다 예촌망 정상에서 바라본 해안가의 전경이다. 과수원 둘레를 따라 방풍수를 심어놨기 때문에 바다를 제대로 볼수 없었다. ⓒ 장태욱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옛날엔 이 오름을 '풀봉'이라 불렀어요. 4.3사건 때는 주민들이 이 오름 꼭대기에서 보초를 섰다고도 합니다. 과수원이 조성되기 전에는 전부 소나무 밭이었지요."

허씨 어머니의 증언이다. 소나무 밭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과수원 둘레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예촌망의 과거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기하고 나자 관심은 지금-여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와 귤나무로 쏠렸다. 허씨가 건네는 귤 하나를 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혔다. 남쪽이라 따사로운 햇살과 난류의 영향으로 이곳의 기후는 귤을 재배하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게다가 오름 정상이라 물 빠짐도 좋으니 제주 최고의 귤이 생산될 수밖에.

▲ 허철진씨와 허씨의 어머니 이 오름에 대해 필자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줬다.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귤을 싸주기도 했다. ⓒ 장태욱

"재작년 도내에서 생산된 귤이 평균 당도 9브릭스 미만을 밑돌 때도 제가 딴 귤은 10브릭스가 넘었어요. 밭에 경사가 지기 때문에 일하기는 불편한데도, 일단 귤을 수확만 하면 상인들이 서로 사가려고 다툽니다. 가격도 주변시세보다 1관에 300원쯤 더 얹어줍니다."

호촌봉수의 자취를 느껴보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필자에게 귤 한 봉지를 건네는 허씨 가족의 따뜻한 인심이 큰 위로가 되었다. 돌아오면서 보니 햇살이 꼭 귤이 익기에 알맞은 만치 따사로운 날이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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