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 사장, 제주포럼C 공동대표

며칠 전 그 뉴스를 들으며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갔을까? 임금은 제대로 받아 갔을까?”
궁금증은 끝이 없었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어떤 뉴스도 그들의 행방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예전에는 진주조개 잡이가 주업이던 해안마을이 개발되면서 그곳으로 몰려든 외국인 건축노동자들이다. 한겨울에도 30도가 넘는 나라의 고층빌딩 건축현장은 말 그대로 열악했다. 그래도 고국에는 없는 일자리가 그곳엔 있었다.

그들이 지은 호텔과 사무실이 곳곳에 들어서자 땅값이 올랐다. 그들의 숙소는 점점 더 변두리로 밀려났다. 출퇴근 때는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집세는 오르고 식사는 더 형편없어졌다. 그나마 가족들에게 단 몇 푼이라도 보낼 수 있는 처지를 다행으로 여겼다. 그들이 있던 곳은 21세기의 성공모델, 두바이였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발상이 가능한가!”라는 감탄이 세계를 덮었다. 해변에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를 만들고 세계 최고층 최고급의 7성호텔 '버즈 두바이'와 초호화 아파트, 요트장을 지었다. 내륙보다는 해변이 더 인기가 있어 비싸게 분양이 되니까 그렇게 만들었단다.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열사의 나라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인공 스키장과 쇼핑센터가 들어섰다. 팜 주메이라는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도 아파트를 샀다고 광고했다.
베컴은 부와 건강과 근육질의 젊음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명사가 아닌가. 각국에서 베컴과 같은 유명인사와 이웃한 아파트에 살게 된다는 설렘을 안고 그 지역의 고급아파트로 몰려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곳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성공은 보장되어 있었다.

두바이의 지도자들은 원유수출에만 의존해서는 경제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과감하게 규제를 개혁하고 개방정책을 폈다. 국가를 물류, 금융, 관광의 허브로 만들고자 했다. 전제적 지도자의 권력과 리더십, 참신한 발상과 과단성은 상상을 현실로 바꾸어갔다.
두바이의 지리적 위치와 지형, 기후에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이라 여겨졌다. 세계 각지의 투자자들이 돈뿐만이 아니라 찬사까지 싸들고 몰려들었다. 두바이의 지도자는 성공한 지도자의 모델이 되었고, 그의 상상력과 전략은 세계인이 본 받아야 할 덕목이 되었다.

그러다가 터졌다. 두바이의 모라토리엄. 이제 사막의 기적은 미국 금융대란 여파에 무너진 모래성이 되었다. 외부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부동산시장은 전 세계적인 부동산 경기 추락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경기한파는 주력 산업인 물류, 금융, 관광이 맥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두바이의 성공을 보며 바다를 끼고 있는 땅들은 "우리도 두바이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 인천 송도, 전북 새만금, 그리고 제주도.
모두 물류, 금융, 관광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주문을 걸었다. 주민들을 소개시키고 조상묘도 이장시켜 대지를 넓게 정비하고, 외자를 유치해서 고층빌딩을 지으면, 관광객이 몰려들고, 투자가 투자를 낳고, 상품은 쌓일 사이도 없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갈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왕의 지도력 대신에 ‘경제’의 위력을 내세우고, 상상력 대신에 벤치마킹으로 밀어붙였다. “두바이를 배워야 한다.”

지금 두바이의 노동자들을 걱정하는 것은 짐작되는 그들의 처지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며 다른 의견은 잘라버리고, 제왕처럼 권력을 휘두르면서 오로지 삽질만이 경제성장의 길인 줄 아는 지도자와 같은 땅에 사는 우리의 처지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한라산이 최고의 랜드마크인 줄 모르고 50층, 60층 빌딩이 제주의 랜드마크여야 한다고 믿는 정책이 무섭기 때문이다. 

▲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 사장, 제주포럼C 공동대표
이제라도 우리의 처지를 살펴야 한다. 규제 풀고 외부자본 유치해서 대단위 단지 만들고 초대형 건물 짓고, 그러면 사람·자본·상품이 밀려들 것이라는 환상, 모래땅인 두바이에서도 하는데, 산 좋고 물 맑은 우리 땅에서는 왜 못하느냐는 우격다짐. 이 강변에 숨은 오류를 보아야 한다. 머리 아픈 갑순이에게 좋은 약이 어떻게 배고픈 을생이에게도 좋을 것인가. 밖에서 끌어오는 돈은 많을수록 좋다는 거대자본 유치의 허울을 깨달아야 한다. 돈은 영어보다 훨씬 빨리 세계화되어 한 곳에서 구멍이 나면 모두가 그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미 두 번이나 겪지 않았는가. 우리가 가진 좋은 산 맑은 물의 가치를 모르고 엉뚱하게 ‘삽질’하는 것,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지금은 실패의 모델에서 벤치마킹을 해야 할 때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의 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