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대출로 점포를 잃게 된 서귀포 상설시장 상인들

서귀포 '아케이드상가' 서귀포시 중심부에는 오래 전부터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아케이드상가'라는 이름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며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고 있다. ⓒ 장태욱 재래시장

서귀포시 서귀동 일대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재래시장이 넓게 형성돼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내 곳곳에 할인매장이 들어서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귀포시 일대 주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이 시장에서 거래했었다.

2000년대에 들어 대형 할인매장이 대세를 점한 이후에도 서귀포시에서는 이 재래시장의 거리를 정비하고 비와 바람을 가릴 수 있도록 지붕을 설치한 후 '아케이드상가'라는 이름을 붙여 시장 활성화를 도모해왔다.

개인별 상가와 노점상이 혼재된 이 '아케이드상가' 중심에는 '서귀포 상설시장'이라는 이름의 복합 상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서귀포 상설시장'은 한 건물 안에 수십 개의 점포가 자리 잡고 있어서 서귀포시 근대 상업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상설시장의 상인들이 수십 년간 장사를 해온 생활터전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서귀포상설시장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윤모씨가 주식회사의 주주들인 상인들의 동의도 없이 상가 건물과 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은 후 부채를 상환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일이다.

상가는 법원 경매에 붙여졌고, 결국 감정가의 20%도 미치지 못하는 헐값에 낙찰되어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오래 전에 자비로 점포를 구입해서 삶을 지탱해온 상인들에게는 실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이미 법원에서 상인들에게 상가를 낙찰자에게 인도하라는 '인도명령'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두 차례에 걸쳐 강제집행 예고장이 날아온 상태다. 많은 상인들은 주변의 다른 점포를 얻어서 이전을 끝낸 상태이고, 몇몇 상인들만이 남아서 낙찰자에게 상설시장 상가를 다시 본인들에게 되팔아줄 것을 호소하는 처지다.

▲ 고수영씨를 만나 상설시장 대출사기 사건의 진상에 대해 들었다. ⓒ 장태욱

상설시장의 지하 점포에서 주방용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고수영씨를 만났다. 고씨는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모은행의 지점장으로 재직했다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은행에서 명예퇴직한 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퇴직금과 본인 소유 과수원을 처분한 돈을 합해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상인들의 처지를 자세히 알기 위해 고씨와 대화를 나눴다.

- 이 장사를 시작하는 데 얼마나 투자했나.

"당시 점포 구입에 3억 원, 제품 구입에 4억 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큰돈을 투자하면서도 우리 부부 노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 대출사고는 언제 발생했나?

"2004년 9월의 일이다. 당시 상가의 대표이사였던 윤모씨와 사무를 담당하던 한모씨가 이 상가의 대지와 건물을 담보로 '서울중앙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잠적하면서 발단이 된 일이다."

- 상인들은 점포를 자비로 구입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대표가 상가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나?

"건물 내부의 점포들이 벽으로 서로 구획되지 않은 상황이라 점포주들이 자신의 점포를 개별등기하는 것은 법으로 불가하다. 단, 상가 전체에 대해 점포주들은 자신이 구입한 점포의 면적에 비례해서 지분등기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상설시장의 상인들은 '서귀포상설시장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상가를 법인 명의로 등기하고, 상인들은 주식회사의 주주가 되는 형식으로 운영해왔다. 그런데 대표이사 윤모씨와 직원 한모씨가 이를 교묘히 이용해서 은행에서 편법 대출을 받은 것이다."

- 이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우리가 고소해서 이들은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이외에도 상인들 중 이들과 내통한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대출받은 돈으로 자신들과 공모한 상인의 점포를 매입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나중에 발각되어 성사되지는 못했다."

- 주주들의 동의도 없이 대표 1인이 회사 소유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받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도 그게 억울해서 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대표이사의 경영권 행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식으로 판결했다. 일반 시중은행이었다면 은행에서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하기 때문에 대출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심사가 허술한 은행으로 찾아간 것이다."

- 결국 이들이 은행 부채를 상황하지 않아서 건물이 경매 처분된 걸로 알고 있다. 언제 일인가?

"2009년 2월에 부산 소재 투자전문회사에 낙찰되었다. 이 상가의 토지와 건물의 감정가액이 70억 원 정도인데, 당시 낙찰가가 12억5천여만 원이었다."

- 애초에 상인들이 등기를 소홀히 하기도 했도,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렇게 감정가액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까지 내려가는 동안 경매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오는 과정에 상인들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생각이 된다.

"상인들이 법적인 지식이 부족한 점도 있고, 재래시장이 갈수록 침체되니까 상인들이 의욕이 떨어진 면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공개입찰이 열리기 전에 상인들이 모여 입찰에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당시 우리가 결정한 응찰가액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바람에 낙찰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 상인들 내에도 저들과 공모한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 주인이 떠난 점포 서귀포 상설시장의 상인들이 대출사기를 당해 점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최근에 많은 상인들이 점포를 비워주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났다. ⓒ 장태욱

- 시장을 둘러보니 이미 많은 상인들이 점포를 비우고 떠났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법원에서는 상가를 낙찰자에게 인도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두 차례에 걸쳐 강제집행 예고장이 날아왔다. 언제 강제집행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상인들 중 다수가 점포를 비워준 상황이다. 60여 명이던 상설시장 주식회사의 주주들 중 현재 14명만이 남아서 상가의 새 주인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 낙찰자 측에서는 뭘 요구하고 있나?

"처음에는 우리가 낙찰가 12억5천만 원에 등기 및 소송비용 일체와 3억 원 정도를 더해서 재매입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런데 낙찰자 측에서는 토지 감정가액(54억)의 절반인 27억 정도를 요구하고 있다. 27억에 재매입할 의사가 없다면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조건이다."

- 낙찰자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고 재매입한 후 다시 민간에 분양해서 비용을 충당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은가?

"재정여건상 자력으로는 어렵다. 게다가 재래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 후에 점포를 분양받을 상인들이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상인들은 3월 중에 3차로 강제집행 예고장이 날아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법원에서는 한편으로는 낙찰자가 요구한 강제집행신청을 받아들여 집행절차를 밟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낙찰자와 상인 간의 협상을 권고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협상은 쉽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처지다.

경매를 통해 서귀포 상설시장 상가를 매입한 투자회사 대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대표의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재래시장이 가뜩이나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설 대목에 갈 곳을 찾지 못한 상인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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