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이승만-드래퍼차관 비망록…미군, 해방직후부터 제주에 군사기지 건설 야욕

▲ 이승만이 제주도에 미군 기지를 영구적으로 설치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한 이승만-드레퍼 미 육군차관 회담 비망록 ⓒ 제주4.3사건 자료집
일본 제국주의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제주에 공군지지를 건설한데 이어, 1949년 중공군으로부터 격퇴를 당해 패망 직전에 있던 장개석 국민당 총통 역시 제주에 공군과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이승만 정부와 접촉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본지가 정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에 앞서 미군이 제주도를 전략요충지로 삼으려 했으며, 이승만은 정부수립 이전인 1948년 3월말 드래퍼 미 육군성 차관과 만나 "제주도에 미군의 영구기지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되고 있다.

이는 193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 중국이 동북아의 패권 장악을 위해 제주도를 자신들의 군사적 거점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제주도는 언제든지 미·중·러·일 동북아 4강의 군사각축장으로 변모될 수 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제주도가 이들 4강과 함께 남북, 즉 소위 ‘동북아 6국 세력’을 아우르는 평화의 전초지기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민들의 선택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 정착에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같은 점은 특히 최근 정부의 화순항 군사기지 건설 시도와 맞물리면서 제주도의 지정학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제주의 소리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지난 2001년 발간한 ‘제주4.3사건 자료집’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1948년 3월 28일 이승만이 방한 중인 미 육군 드래퍼 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제주도를 미군의 영구기지로 제공할 뜻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미육군이 4월 10일지로 미정부에 보고한 ‘드래퍼(Draper) 차관과 이승만간의 회담 비망록’에 따르면 이승만은 조선호텔에서 드래퍼 차관을 만나 “한국 국민은 미국이 한국을 위해 해 온 것들을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면서 “제2차 세계대전부터 생활조건이 그다지 향상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전쟁으로 인한 범세계적인 혼란의 결과이며, 만약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더 나빠졌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적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국민의 희망은 미국으로부터의 도움이며, 한국은 한국에서 소련을 몰아낼 수 있도록 미국의 원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 후 “미국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고자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말을 들었다”고 언급하면서 “한국 정부가 수립되면 한국인들은 매우 기꺼이 미국이 제주도에 영구적인 기지를 설치하도록 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 것으로 작성돼 있다.

이 미국보고서는 제주도가 동북아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오래 전부터 주목받아 왔으며, 미국이 오래 전부터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에 앞서 1946년 10월 21일 AP통신은 뉴욕발 기사를 통해 “조선 제주도는 장차 서부 태평양지구에 있어서의 ‘지브롤터(지중해의 전략요충지)’화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해 당시 제주는 물론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AP통신은 “제주도가 금일과 같은 장거리 폭격기 시기에 있어서 그 군사적 중요성을 띄우고 있음은 이 기지로부터 동양 각 요지에 이르는 거리를 일별하면 능히 해독할 수 있다”면서 “일본 사세보까지 150마일, 동경까지 750마일, 대만까지는 700마일, 대련까지 470마일, 상해까지 325마일, 해삼위(블라디보스톡)까지 720마일, 마닐라까지 1400마일, 하바로프스크까지 1000마일, 보르네오까지는 200마일”이라고 제주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설명한 후 “일본이 중일전쟁에서 최초 도양(渡洋) 폭격을 한 것도 제주도로부터 결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이 이 같은 보도를 하자 당시 중앙언론은 “제주도를 미군기지화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각 언론사마다 제주에 기자를 보내 제주민심을 전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다.

독립신보는 그해 12월 18일자 기사를 통해 “제주도는 동양의 지브롤터와 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미국은 이 제주도를 군사기지화 한다는 이러한 용서 못할 소식이 세계에 떠돌아 초점이 되고 있다”면서 “일본이 축출된 후 미군이 들어오자 또 다시 이 섬을 군사기지화 한다는 소리에 ‘그게 무슨 가당치 않은 소리냐’며 섬 사람들이 두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며 당시 제주도민들의 반발을 기사화 했다.

자유신문은 12월 20일자 ‘요지(要地)인 까닭에 도는 풍설- 일제시대는 중요 기지였으나 지금은 평화향(鄕)’이라는 제목의 답사기를 통해 “조선굴지의 한라고봉을 중심으로 주위가 600여리쯤 되는 제주도는 군사적으로 볼 때 전 동양적으로 귀중한 요새지”이라고 소개하면서 “일제는 이 곳을 불침항모(不侵航母)라 칭하고 비행장을 위해 여러 가지 군사시설을 설치하고, 강대한 기지를 만들었는데 미군이 다시 군사기지를 설치한 흔적은 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자유신문은 이어 “일제 때 만든 군사기지를 돌아보며 현대의 군사기지를 만드는데는 장구한 시일이 필요치 않음을 생각할 때 문제는 현재에 있지 않고 오직 장래에 있구나 한다”면서 “만일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자주독립국가를 하루빨리 건설해 이 곳의 자랑할 풍물을 가지고 ‘세계의 관광지’로 만들지 않으면 미친 개 눈에는 똥덩이만 보이는 격으로 호전(好戰)하는 무리의 눈에는 요새로만 보이기 쉬운 까닭이다”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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