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기 추모 공연, 전국 곳곳서 모인 추모객 눈길

김영갑이 사랑했던 바람은 여전히 셌다. 오름에 부는 바람은 눌러쓴 모자를 채 갈 정도였다.

곱슬머리를 날리며 노래 부르던 이춘호 씨도 “노래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갑 형의 바람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이 공연은 특별하다”고 덧붙였다.

30일 김영갑이 사랑했던 제주 오름 위에서 5주기 추모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은 故 김영갑 작가의 기일인 29일, 제주도립교향악단과 함께해 대규모 인파가 몰린 공식 추모 공연에 이은 것이었다. 

김영갑은 젊은 시절 제주에 매료돼 내려온 뒤 중산간을 수평적 구도 안에 담아 세인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귀포시 표선면 삼달리에 직접 가꿔온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그의 사후 후배 박훈일 관장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 매달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김영갑의 작업 현장을 찾아가는 답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렸다.

참가자들 중에는 선배 작가의 예술혼을 흠모하는 사진작가들도 있었지만 사진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그의 작품에 매료돼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대부분 서울, 대전 심지어 호주 등 섬 밖에서 알음알음 모였다는 점이다.

▲ 김영갑 作, 무지개가 걸린 아끈다랑쉬오름

▲ 아끈다랑쉬오름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이날의 오름은 ‘아끈다랑쉬’(작은월랑봉, 송당리에서 수산리 가는 길에 위치). 김영갑의 작품에선 무지개가 걸린 모습으로 남아있다. 흔치않은 이 완벽한 순간을 위해 김영갑은 수일의 인고의 시간을 견뎠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끈다랑쉬오름의 서쪽으로는 다랑쉬오름(‘아끈’은 ‘버금’의 제주어다)이 남쪽으로는 용눈이오름이 보인다. 이 세 오름은 김영갑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오름들이다.

이른바 ‘김영갑 오름’으로 불리는 용눈이오름은 이번 공연의 일순위 장소로 꼽혔지만 최근 구제역 여파로 통제돼 이뤄지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아끈다랑쉬오름 역시 새벽별이 걸리는 시간에도 오르자고 했을 정도로 좋아했던 오름이라고 박훈일 관장은 회상했다.

이곳에 서면 멀리 바닷가와 삼달리의 풍력발전기가 차례로 보이고 오름들이 움솟아 있다. 그 가운데로 돌담으로 구획된 초록색 밭과 무덤들이 군데군데다. 아끈다랑쉬오름에는 억새들이 뒤덮여 있어 김영갑의 황금색 바람을 눈앞에 보여줬다. 박훈일 관장은 이곳에 올 때마다 “노루를 만난다”고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온 탓인지 그 영롱한 눈동자를 볼 일은 없었다. 대신에 눈물이 날 정도로 거센 바람이 정상에 있었다. 이 바람을 안고서 혼신의 작품활동을 보여준 김영갑이었기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제주의 바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정상은 커다란 분화구 모양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그중 가장 높은 정상 부위의 비교적 평탄한 곳에 이동식 스피커와 마이크가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평화로운 풍경에 분위기를 더했다.

기타를 맨 이춘호 씨는 15년 전 김영갑 작가와 취재기자와 인터뷰이 관계로 만났다고 말했다. “당시 김영갑 씨를 취재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왔을 때 그 통통했던 얼굴을 기억해요.(김영갑의 마지막은 루게릭병으로 뼈만 앙상했다. 이를 염두에 둔 말.) 오늘 바람이 앙칼지게 세네요. 김영갑 선생님, 아니 ‘형님’ 성격 그대로 아닌가요. 그 칼칼진 성격 말이죠.(허허)” 그는 섬집아기로 시작해 과꽃 등 동요들을 이었다. 그는 10년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기타를 맨 노래쟁이로 변신해 있었다.

김영갑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루게릭병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도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수평적 구도에 대한 세간의 비판도 있었다. 그가 파노라마 카메라로 잡은 수평적 구도가 ‘제주 풍경’이 아니라는 의견 등이었다. 어찌됐든 그의 작품은 제주를 낯설게 다시 보게 만들었고, 그래서 감동을 주고 있다. 작품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15년전 김영갑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는 이춘호 씨는 30일 아끈다랑쉬오름에서 김영갑 5주기 기념 공연을 열고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5주기 공연으로 술 대신 노래를 올린다는 이춘호 씨도 “김영갑에게 빚져 있다”고 말했다. 어떤 빚이냐는 질문에 “그의 치열함에 더 다가가지 못하고 나태한 빚”이란다.

심지어 48년생의 강하정(경기도 평촌) 씨도 “나이는 어리지만 그는 나의 선배”라고 말했다. “조물주가 창조한 것들의 참의미를 간파하고 이를 작품으로 옮긴 것은 내가 도달하지 못할 경지”라는 것이 이유였다.

강 씨는 오름을 오르자마자 김영갑의 현장에 와 있는 듯 그 감동을 만끽하는 행복한 미소를 한껏 지었다. 그는 “여기다 2박3일간 텐트를 쳐야겠다”고 말했다. “적어도 48시간 동안 시간을 오래 두고 시시각각 변하는 해의 고도, 별이 오르는 것들을 봐야 김영갑의 작업 과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김영갑이 사람들에게 남긴 것은 치열함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담은 ‘수평적 삶’이었다. 이는 평등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경쟁하며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에 비교되는 자연과 함께 벗하며 사는 것이다.

▲ 시낭송가 이유선 씨가 김영갑 작가를 위한 헌시를 낭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김영갑의 주변인들도 그대로였다.  미술사를 전공한 김은정 씨는 5년전 제주에 아무것 없이 내려와 1년 전부터 두모악에서 학예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버리고 내려올 수 있었던 그에게 용기있다고 말했더니 옆에 있던 삼달리 청년 탈루(필명)가 덧붙인다. “원래 안 가지고 두 손 가벼운 사람들이 움직이기도 잘하는 거에요.” 천안이 고향인 그 역시 수년전 제주에 내려와 김영갑이 죽기 전부터 갤러리 일을 도우며 삼달리에 지내고 있었다.

공연은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로 이어졌다. 바람처럼 오름을 오르내리던 김영갑을 연상케 했다.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있네
때가돼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함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있나
비야 네가 알고있나
무엇이 이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제주의소리>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박훈일 관장이 30일 아끈다랑쉬오름 추모 공연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매만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아끈다랑쉬오름에 오르고 있는 추모객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변 오름들. 왼쪽 첫 번째 오름이 김영갑이 가장 사랑했다는 '용눈이오름'.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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