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중립’-속내는 ‘혁신적대안’…김 지사도 도민에게 '책임전가'

지난 9일 청와대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를 방문한 김태환 지사가 이틀 만에 말문을 열었다.

그것도 예정에 없던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단호하면서도 간곡한 어조로 공무원들에게 계층구조개편과 관련해 도민홍보에 전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청와대에서 김병준 정책실장을 만나고 돌아 온 김 지사의 최대 현안은 역시 ‘계층구조개편’이었다. 

김 지사가 이날 긴급 간부회의에서 전한 요지는 이렇다.

▲ 특별자치도에 대한 대통령의 추진의지는 확고하다
▲ 그러나 정부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를 수용할 역량이 있는지 걱정하고 있다
▲ 자치역량은 계층구조개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늠될 것이다
▲ 계층구조개편이 제대로 안되면 국제자유도시마저 암담하다

‘대통령은 제주도에 대해 특별한 권한(특별자치도)을 주려고 하고 있는데 제주도민들의 역량이 문제이다. 그 역량을 가늠하는 것은 계층구조 개편에 달려있다. 계층구조개편이 제대로 안되면 국제자유도시마저 힘들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특별자치도의 관건은 ‘계층구조개편’에 있음에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비록 진부한 논란이긴 하지만 계층구조개편이 특별자치도의 ‘전제조건이냐’ ‘아니냐’에서 역시 사실상 ‘전제조건’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 계층구조개편 결국은 특별자지도의 ‘전제조건’

그동안 계층구조개편이 특별자치도의 전제조건이 아님을 누차 강조해 왔던 김 지사도 기존 자신의 발언을 의식한 듯 “계층구조 개편이 특별자치도의 조건은 아니나…”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으나 지사의 발언을 종합하면 결국은 계층구조 개편을 해야만 특별자치도로 갈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단순히 김 지사 개인의 발언으로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김 지사는 지난 7일(토요일) 윤성식 정부혁신균형발전위원장과 전화 통화 후 9일(월요일) 오전 예정에 없던 청와대를 방문, 김병준 실장을 만났고 그 이후 이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결국은 김병준 정책실장 즉 청와대의 뜻으로 해석돼도 무방할 듯하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이 제주도민들을 상당히 부담스럽게 하고 있으며, 또 어떤 면에서는 도민들에게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실질적인 압박이라는 점이다. 또 청와대와 제주도가 결국 지금까지 이중 제스처를 취해왔다는 점도 도민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지금까지 청와대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 그리고 행정자치부는 “계층구조개편은 특별자치도의 전제조건이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또 “계층구조개편 선택은 결국 도민들의 몫이며 정부는 도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밝혀왔다.

# 계층구조개편 압박의 핵심은 김병준 정책실장

김태환 지사 취임 직후 ‘전제조건’ 논란에 휩싸였던 특별자치도와 계층구조 개편은 정부의 이 같은 발언에 따라 분리 추진돼 왔으나 정부,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김병준 정책실장은 수 차례 계층구조개편을 빨리 단행할 것을 요구해 왔다. 

김 실장은 지금도 계층구조개편과 관련해 제주도로부터 1일 동향을 보고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제조건’ 논란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했던 특별자치도(대통령의 표현은 ‘자치도’) 추진이 어려워지자 겉으로는 ‘전제조건’을 철회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계속 압박해 왔다는 사실은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김병준 정책실장은 윤성식 위원장에 앞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을 맡았던 인물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10월 31일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특별자치도 문제를 거론한 후 이에 대한 기본구상을 마련한 장본인이자, 참여정부의 핵심과제인 지방분권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2010년을 목표로 광역자치단체를 없애고 기초단체를 인구 100만명 단위의 광역도시로 재편하다는 구상도 사실은 김병준 작품이라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김병준 실장이 드러내 놓고 말은 하지 않고 있으나 그가 바라는 계층구조개편안은 제주도와 4개 시군을 하나로 통합하는 ‘혁신적 대안’으로 제주도민들이 점진적 대안이 아닌 혁신적 대안을 선택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 청와대, 혁신적대안 선택할 것 사실상 요구

김태환 지사의 발언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 이는 쉽게 드러난다.

▲ 자치역량은 계층구조개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늠될 것이다
▲ 계층구조개편이 ‘제대로’ 안되면 국제자유도시마저 암담하다

계층구조개편은 당연히 하되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 ‘제대로’ 안되면 어렵다는 대목, 즉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점진적대안과 혁신적대안을 놓고 선택하게 될 상황에서 사실상 ‘혁신적대안’을 지목한 것이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 이르면 청와대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 행자부,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다고 부인도 하지 않는다.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를 견지할 뿐이다. 

여기에서 제주도와 제주도민의 고민을 시작된다.

만에 하나 계층구조개편 여론조사 결과 ‘인지도’가 낮아 김 지사가 주민투표 실시 용단을 내리는데 주저하거나, 투표를 실시하더라도 참여율이 저조해 개함(유권자의 1/3이 참여해야 함)을 못할 경우, 또 개함을 하더라도 혁신적대안이 아닌 점진적대안이 선택될 경우 그야말로 제주도는 안팎으로부터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장 중앙정부는 제주도민들을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게 되고, 특별자치도 추진도 삐걱거릴 수 있을 수 있게 된다. 이쯤 되면 도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 “청와대·김태환 지사, 계층구조개편 속내를 차라리 드러내라”

그러나 청와대, 좀 더 확실히 말하면 김병준 정책실장은 이 같은 현실에서 한발 불러서 있다. 자신은 결코 총대를 메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앞장서 해결 할 테면 하고, 싫으면 관두라’는 퉁명스러움이다.

상황은 김태환 지사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받고, 이를 또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입으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김태환 지사는 ‘점진적대안’과 ‘혁신적대안’에서 철저한 ‘중립’만을 견지할 뿐이다.

청와대와 김병준 정책실장, 행정자치부, 그리고 김태환 지사까지 모든 ‘책임’을 결국 도민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은 이중의 태도를 취하면서 도민들에게 그 중 한 면을 선택하라며 도민혼란만을 부추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공(功)’은 따먹되 ‘과(過)’는 지지 않겠다는 정치인 특유의 발 안 담그기 전략이 내제돼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진정 그들의 제주도의 미래와 제주도민들을 위한다면 떳떳이 커밍아웃을 하라.

“우리는 혁신적대안을 원한다. 도민들은 혁신적대안을 선택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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