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소통이다 ④] 안도현의 추천한 김창의 대표

김창의 대표 안도현의 <연어>를 추천한 김창의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 장태욱

김창의 대표가 추천한 안도현의 <연어>를 읽었다. 이전에도 김 대표는 <페다고지>,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미학에세이> 등 본인이 읽던 책들을 필자에게 빌려주며 독서 권하기를 여러 차례 했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책의 여백에 메모를 했던 흔적들에서 그의 꼼꼼한 독서 습관을 엿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꽤 유명한 증권회사에서 펀드매니저로 활동하면서 고수입을 올리기도 했었는데, 10여 년 전 문득 하던 일에 염증을 느끼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도 해보고,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분야에 투자도 해봤는데 번번이 '쓴맛'을 봤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제주산 친환경 농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제주안심밥상'을 운영하고 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20대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커피숍에서 김 대표와 만났다. 각자 커피 한 잔과 딸기주스 한 잔씩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서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버렸다. 김 대표와 <연어>에 대해 나눈 대화의 내용을 정리했다.

- 작가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 '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강물냄새를 통해 무엇을 전하려고 했을까요?

"연어가 강물에서 생활하는 기간은 전 생애 중 아주 짧은 기간이에요. 그럼에도 강물이란   연어에게 본능을 심어주고 자극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강물냄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봅니다. 사람이 어릴 적 부모의 품에서 자란 기간이 평생 기억에 남아서 그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봐요."    

- 주인공인 은빛연어의 색깔이 동료 연어들과 다르기도 하고, 성격도 매우 개성이 있습니다. 호기심도 많고 꿈도 많아서 자꾸 돌출행동을 하기도 하는데요, 연어가 집단이동을 하는 동안 자신이 속한 무리에게 해를 끼칠 우려도 있다고 봅니다.

"이야기 시작에서부터 은빛연어는 물수리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은빛연어를 지켜주려는 누나가 목숨을 잃기도 하죠. 나중에는 불곰의 공격을 받는데, 이때는 눈맑은연어가 보호해줍니다. 은빛연어의 독특한 몸 색깔이나 모험심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자의식이 강한 자들에게 주어진 업보라고 봅니다. 무리를 이끌고 가는 큰턱연어는 모든 연어들을 자신의 체제 안에 복종시키려하는 경향이 강한데요, 은빛연어의 돌출 행동은 이런 질서에 저항하는 과정이에요."

본문 삽화 <연어>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데, 1996년 초판이 인쇄된 이후 110쇄를 넘길 정도로 꾸준히 판매된 책이다. 작품 군데군데 삽화가 들어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장태욱

- 은빛연어가 초록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강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인데요, 강은 연어에게 '배경'이 된다고 했습니다.

"강과 연어의 이동방향이 서로 정반대이기 때문에 갈등하는 사이로 볼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강이 흐르는 이유가 연어가 거슬러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잖아요. 내 삶이 다른 사람에게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어요.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말하려는 거라고 봐요."

- 초록강은 은빛연어에게 "강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14년 전 쓴 작품인데 오늘날에 더 큰 메시지를 전한다고 봅니다.

"연어는 대양을 가로질러 수 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이동한 끝에 강 입구에 도착하고, 그 이후로 폭포를 뛰어넘고 몸이 찢기는 얕은 물가를 지나 강 상류로 거슬러 오릅니다. 그리고 상류의 차가운 물속에 알을 낳고 숭고한 일생을 마감합니다. 연어의 일생은 강을 거슬러 올라 알을 낳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강과 숲으로부터 부를 착취하려는 데서 불행이 시작되는 겁니다.

주변 숲이 파괴되자 토사가 강으로 흘러내려 수중생태계가 교란되고 결과적으로 강물 수온이 상승했습니다. 탐욕스런 자본은 강바닥을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연어로부터 산란터를 빼앗고 있어요. 최근에는 정부가 4대강사업을 통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이 생태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오만한 사고에서 시작된 겁니다. 계속해서 인류가 자연을 착취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머지않은 날에 자신들이 되돌려 받을 겁니다."

- 은빛연어는 무지개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고 매우 흥분하지만 눈맑은연어는 무지개를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도 합니다. 이상을 품고 사는 것이 어리석은 삶이라고 하는 의미일까요?

"꿈을 꾸는 것은 존재를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고난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연어가 알을 낳는 부분이 절정이자 종말로 그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상의 덧없음을 말하려는 의도보다는 현실의 삶이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며,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이상이 허무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봅니다."

- 폭포를 오르기 직전에 빼빼마른연어와 은빛연어의 갈등이 부각되는데요, 빼빼마른연어는 과학자 연어로서 목숨을 바쳐가며 연어들을 위해 편하고 안전한 통로를 찾아줍니다. 하지만 은빛연어는 "연어들에게는 연어들의 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 과학자가 발견한 길과 연어들의 길이 상호 배치되는 걸까요?   

"빼빼마른연어가 목숨을 바쳐 찾아낸 통로는 사람들이 연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설물인데요, 연어들에게 안전하고 편한 길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연어가 연어이게 하는 것은 폭포를 뛰어넘는 순간 다가오는 고통과 환희의 체험입니다. 은빛연어가 안락한 통로를 지나자는 의견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태도에서 편이와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 세태를 향해 울리는 경종을 읽을 수 있어요."

김창의 대표 <연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설명하고 있다. ⓒ 장태욱

- 은빛연어는 사람들을 '낚싯대를 든 인간'과 '카메라를 든 인간'으로 분류합니다. 연어들에게 낚싯대를 들고 있는 인간이란 매우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라는 것은 알겠는데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인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칭하는 걸까요?

"작품에서 연어를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옆에서 보는 이들이라고 했지요. 자연을 지배하려하지 않고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자연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이들이지요. 얼마 전에 수경스님이 편지 한통과 함께 자취를 감추셨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자연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번뇌를 감당하지 못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어는 이런 사람들을 '카메라를 든 인간'이라고 상징적으로 부르고 있어요."

- 작품은 연어들의 산란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연어의 일생이 산란과 함께 끝나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요, 작가는 이 장면을 '가장 장엄하고 가장 슬픈 풍경'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연상했습니다. 예수가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한 것처럼 연어들도 새로운 생명들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시종일관 작품에 흐르는 주제는 만물이 서로 떨어져있지 않다는 겁니다. 강물과 언어가 둘이 아니고, 고통과 환희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삶고 죽음 또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나 인연설 등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새벽이 되어버렸는데, 말을 너무 많이 했는지 허기가 졌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분식집에서 한 줄씩 나눠먹은 김밥이 참으로 별미였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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