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레인보우] 산천단에 '바람카페' 문 연 이담…"인생이 여행"

▲ 유튜브에서 배운 솜씨로 오므라이스를 만들고 있는 '바람카페' 주인장 이담 그리고 그 남자의 부엌.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7년째 제주 여행 중이에요” 그는 좀 동화같은 데가 있었다.

여행중이라던 이담이 최근 산천단에 카페를 차렸다고 했다. 산천단은 신성하다고 여기는 수백년 된 곰솔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사람들은 새로운 목사가 오면 한라산 신령께 제사를 지내곤 했었다. 험난한 길이었다. 조선시대 이약동 목사가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산천단에 제단을 마련했다. 그 뒤 신령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곳에 가보면 오랜 세월을 이겨낸 나무가 아등바등 살고 있는 인간을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다. 겸손해짐을 느낀다.

바로 그 옆 언덕에 자리잡은 ‘바람 카페’는 산천단에 제사지내던 옛 제주사람들의 ‘바람’을 담았다. WIND(바람)이면서 WISH(바람)이기도 하다.

▲ 맑은 공기가 카페 가득 들어온다. 카페에 난 창 사이로 수백년된 곰솔이 시원스레 보인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이담이 카페를 차렸다는 얘기를 듣고선 ‘여행자가 자기 공간을 마련했다고? 여행이 끝난 건가?’란 의문이 들었다. 이담은 “인생이 여행인데, 멈추다니요”라고 했다. 인생을 곧 여행이란 태도로 살고 있는 그의 열려있는 공간은 여행자들에게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제는 내가 찾아다니기 보다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공간 역시 그를 쏙 빼닮았다. 액세서리 없이 가벼운 테이블과 의자 몇개, 단체를 위한 소파와 식탁 한 세트가 전부. 테이블 옆 창틀에 꽂혀있는 책은 거의 다 여행책들이었다. 제주의 맛집을 소개하는 한 책엔 이담이 바로 전에 파워블로거로 유명한 아이디 ‘마주로’와 함께 운영했던 ‘카페 소설’도 소개돼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이담(李潭, 45)’은 이종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잡지사 기자생활을 했다. 한때 벤처회사도 다녔다. 그러다 회사가 망하자 그에게는 디지털카메라와 노트북 만이 남았다. 몸에 지닌 게 없어 떠날 수 있었던 이담은 제주도로 왔다. 그게 2004년이다.

원래 연못이란 뜻의 '담'은 그가 어렸을 때 집안에서만 부르던 이름이다. 제주로 내려와 제주돌담을 만나 다시 '담'이란 이름을 찾았다. 이젠 그의 본명을 부르는 이들보단 '이담'이란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담은 가벼운 몸으로 제주를 누볐다. 그러다 보니 제주의 바람에 물들었다. 성긴 돌담은 꼭 필요한 만큼 담 안을 보호하고 바람은 언제든 통과시켰다. ‘제주형 소통’이었다. 이름에 운명이 있다면 그는 제주에서 ‘돌담의 정체성’을 찾았다.

▲ 오므라이스와 '바람카페'의 특제 샐러드가 나왔는데,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제주서 블로거로 제주의 속살을 소개하는 데 열심이었고, 애월 한담에 여행자센터를 개설해 여행 컨설턴트도 했다. 제주시 중앙로의 카페 소설과 제주관광신문도 거쳤다. 현재 제주에 거주하는 젊은 문화인들과 ‘성판악포럼’을 이끌고 있다. 그의 정체성은 ‘제주 여행자’다.

“제주에 내려와서 처음 몇 달간은 재미 없었어요. 낮엔 좋아도 밤엔 다닐 데가 없었고 섬이 주는 외로움도 있었죠. 하지만 곧 항상 똑같지 않은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특히 날씨요. 사진작가 김영갑이 같은 곳에서 몇날을 지냈다고 하는 데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주여행자들이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고…

카페 소설 때부터 마담 겸 요리사로 활약했던 그의 솜씨가 발휘됐다. 점심메뉴로 개발된 바람카페 특제 야채 샐러드와 오므라이스가 절로 ‘음음’하는 요란한 감탄을 자아냈다. 바람카페는 파스타와 까르보나라, 오므라이스가 주 메뉴다. 언제 요리를 배웠을까. “유튜브가 요리 스승이에요” 요리하는 남자 이담은 “누구나 할 수 있다”며 바람카페만의 비법을 너무 쉽게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의 장기는 무엇보다 핸드드립 커피다. 커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서 그에 맞는 핸드드립법으로 최상의 맛을 찾아낸다. 커피의 고향인 에티오피아에서 온 하라 롱베이를 ‘원시적인 맛이 나는 곳에어 왔다’고 소개하며 물방울 드립인 고노드립(kono drip)으로 드립했다. “매끈매끈한 맛이 나올 거에요” 하루 열 잔은 마신다는 그가 또 입맛을 다시며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가체프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술 보다 커피가 좋은 이유’로 “싸움이 아닌 토론이 되기 때문”으로 꼽았다. “어떤 책에서 그랬어요. 커피의 문화가 꽃피는 곳이 그 시대의 권력을 쥐었다고요. 프랑스 혁명이 커피가 있는 살롱에서 시작됐듯이요.”

바람카페가 사람들 사이의 교류, 만남의 장이 됐으면 한다는 이담은 8월 중순의 정식 오픈과 함께 작은 문화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바람카페 앞의 작은 테라스. 이곳을 다녀간 홍대 밴드팀이 이곳서 뭔가 하고 싶어 몸을 긁적였다고… 가칭 ‘바람 음악회’다.

“테라스 위로 밤나무하고 비자나무가 드리워져 있는데, 가을에는 우산 쓰고 앉아있으면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거에요” 역시 동화같은 남자다.

▲ 이담은 바람카페를 찾은 손님에게 커피를 갈도록 시켰다. 무례하진 않았다. 대신 커피 가는 향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지금의 바람카페는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집주인에게 고깃집, 닭집, 작업실 등으로 쓰겠다며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모두 ‘no’였다. 돈은 이유가 되지 않았다. 이담은 “코드가 맞았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과 처지가 같은 육지사람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눈다고 했다. “맘이 통하는 게 있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나이들어 오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거든요. 이 공간이 제주사람이든 육지에서 오는 사람이든 다들 모여 소통의 마당으로 자리잡는 게 바람이에요”

제주도 곳곳에 '바람카페2', '바람카페3'를 만들고 싶다는 이담. 그는 아직도 새로운 여행을 꿈꾸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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