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중국 최고 지성과 격정토론 발간

“1949년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흔들리면서 등장한 말이다. 그야말로 중국의 부상,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로 더욱 확고해진 중국의 위상을 웅변해준다.

“요즘 중국, 왜 그럴까?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 합동군사훈련까지 최근의 외교안보 이슈를 둘러싸고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가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책임을 묻고자 했던 우리의 외교적 노력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중국이라는 장벽에 의해 막혀버렸다. 2004년 동북공정 문제가 제기된 이후 한국에서는 ‘반중 감정’이, 중국에서는 ‘반한 감정’이 기세를 떨쳤는데, 여기에 이번 사태는 기름을 부은 것과 같아서 한국과 중국 모두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중국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중 사이에 예전에 없는 한냉전선이 흐르는 상황에서 비록 최근의 사태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진 않지만 “요즘 중국, 도대체 왜 그럴까?” 하는 의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해줄 수 있을 중국을 읽는 책이 나왔다.

제주출신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2009년 가을 중국 베이징대학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머무는 동안 중국 외교안보의 흐름을 주도해왔고 또 앞으로 이끌어갈 중국 국제정치학계의 주요 인사들과 나눈 진솔한 대담을 실은 <중국의 내일을 묻다>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해 발간 됐다.

‘중국 최고 지성과의 격정토론’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당대 중국 최고 지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대국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구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지금까지 중국전문서적이라는 책 대부분이 미국이나, 일본의 시각에서 그들의 눈 높이에 맞춰져 쓰여졌다면 이 책은 “중국의 시각에서 중국을 봄(以中國 觀中國)”으로써 중국에 대한 편견을 뒤집고 새로운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저자와 대담을 나눈 한 전문가는 “오늘 내가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적이 거의 없는데……”라는 고백처럼 이 책에는 중국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진솔한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에게서 깊은 속내를 듣기란 매운 어려운 실정에서 중국 지성과의 인터뷰 내용이 무삭제 된 채 실렸다.

중국이란 위협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국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는 중국을 과거와 같이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국가의 중국 전문가나 언론인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중국을 평가한다. 이들은 중국을 ‘조금 나은 북한(a better North Korea)’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친야칭 외교학원 상무부원장의 지적은 중국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난다.

그러나 21세기 중국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과거 우리가 알던 교조적이고 닫힌 사회가 아니라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는 정책에 조언하고 참여하는 중국 학계의 브레인 역할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중국의 시각, 곧 중국 학자들의 눈을 통해서 보다 심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반증한다. 물론 동북공정 등 몇몇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여전히 하나의 목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한계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한 가지 잣대만으로 중국을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입장에서 중국을 파악하지 못한 채 서구의 프리즘을 통해서만 중국을 인식한다면 스스로 중국이란 위협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돈은 중국에서 벌고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한국의 ‘이중적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난에서도 벗어나기 힘듦을 역설한다.

중국굴기 시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됐다. 제1부에서는 ‘대국의 길’이라는 주제를 놓고 당대 중국의 최고 논객들, 곧 ‘화평굴기론’을 제창한 정비젠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상무부교장, 중국 내 현실주의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 옌쉐퉁 칭화대학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천하세계론’으로 새롭게 뜨고 있는 자오팅양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그리고 점차 대세가 되고 있는 ‘책임대국론’의 왕이저우 베이징대학 교수와 대담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과의 대담은 내외부적으로 중국굴기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공산당이 표방해온 ‘도광양회(韜光養晦, 실력이 있으되 드러내지 않는다)’로부터 탈피해 춘추전국시대 백가쟁명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듯한 중국 지식인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경쟁력 상승에 기초한 화평굴기를 대국굴기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 그런데도 화평굴기를 위협적 행보로 받아들인다면 필경 거기에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본다.”는 정비젠의 말이나 “굴기라는 측면에는 동의하지만 화평이라는 용어는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민족 또는 국족(國族) 부흥이다. 평화라고 하는 대목에 지나치게 방점을 둘 필요는 없다.”는 옌쉐퉁의 말은 일견 상반되어 보이나 중국의 겉과 속을 고루 살피기 위해서 모두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일 것이다.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소국’: 더 이상 한.중 관계를 대등하게 보지 않는 중국

이 책의 제2부는 중국의 대외 전략을 다루고 있다. 왕지쓰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원장과는 대미 정책을, 양보장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일본연구소 소장과는 대일 정책을, 장샤오밍 베이징대학 교수와는 대 주변국 정책을, 그리고 장윈링 중국사회과학원 국제학부 주임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정책을 논하고 있다. 또 중국의 국가안보 전략과 관련해서는 베이징대학의 3인방인 주펑, 왕융, 자다오중 교수로부터 각각 군사, 경제, 자원안보론을 듣고 있다. 제2부의 대담을 통해 찾을 수 있는 핵심은 중국이 외교안보의 초점을 미국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가장 큰 위협도 미국이고, 가장 중요한 협력 대상도 미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에 따라 미국 없는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환영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오히려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3부에서는 한반도를 중점적으로 논하고 있다. 북.중 관계에 대해선 중국 내에서 가장 강경파로 알려진 장롄구이 중앙당교 교수와 온건파인 김경일 베이징대학 교수 간 ‘강온 대담’을 통해 규명하고자 하였고,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치바오량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교수와, 또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해서는 리빈 칭화대학 교수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제3부의 대담을 통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면서도 대북 제재에는 소극적이며 북한의 체제 붕괴를 부정적으로 보는 중국, 또 한국이 아무리 미국과의 양자 동맹을 강조해도 주요한 전략적 사안에는 중.미 간 협의와 합의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중국 등 한반도를 바라보는 중국의 기본시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한.중 관계를 더 이상 대등한 관계로 보지 않는,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소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데, 이는 앞으로 우리가 부딪쳐야 할 중국의 미래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정독을 요구한다.

중국의 대외 전략 및 한반도 전략과 관련해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정책적 레버리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책적 지렛대는 무엇인가? 바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 중국, 미국, 일본, 한국 중 북한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만약 중국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중국의 우세가 어디에 있겠는가? 전혀 없다. … 한국은 북한이 자신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더욱 많은 대북 원조를 제공해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동포애 때문이 아니라 한국 자신의 이익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한국 자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왕지쓰의 말은 중국의 속내를 솔직히 내비치고 있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4부는 거대 중국의 미래 구상과 안팎의 도전을 다루고 있다. 국제 안보질서 구상에 대해서는 친야칭 외교학원 상무부원장, 국제 경제질서 구상에 대해서는 장위옌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 및 정치연구소 소장, 안팎의 도전에 대해서는 진찬룽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그리고 21세기 한.중 관계의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는 자칭궈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과의 대담을 싣고 있다. 여기서는 G2 체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 외에도 지역, 계층, 세대 간 양극화나 민주화의 내적 압력, 민족주의 분출 등 내외부적으로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중국의 향후 국제사회에 대한 태도는 다음 두 가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중국 내부 문제의 개선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 세계가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중국은 비교적 온화한 모습을 보일 것이고, 아니라면 매우 분노하는 중국이 될 것이다.”라는 진창룽의 말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이제 중국의 미래를 묻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묻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저자의 말과 같이 중국은 이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우리의 평화와 생존, 그리고 번영에 사활적 변수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 중국의 미래를 묻는 질문은 곧 우리의 미래를 묻는 질문과 닿아 있다. 중국을 바로 알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도 담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중국의 외교안보 사조와 정책을 완벽하게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냉정하고 긴 안목에서 중국을 알고 이해하며 선린 관계를 쌓아갈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이 책은 그런 지혜를 도모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디딤돌이 돼줄 것이다. 중국굴기에 따른 당면 과제들과 그것을 넘어선 미래에 대해 당대 중국 최고 지성들이 들려주는 진솔한 의견들은 우리가 중국을 바로 알고(知中)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잘 활용(用中)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 문정인 연세대 교수
저자인 문정인 교수는 오현고와 연세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연세대학으로 부임하기 전 미국 켄터키대학과 윌리엄스대학, 그리고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등에서 12여 년간 교수로 봉직하였다. 이후 연세대학 국제학대학원과 통일연구원 원장, 그리고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과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한 바 있다. 한국평화학회 회장과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회원,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의 미래한국아젠다위원회 위원장과 중국 개혁개방포럼의 국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과 2007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한 유일한 학자로서,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중동은 물론 북한에 이르기까지 그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인적 연계망을 가진 ‘국제적 마당발’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겸임교수로도 있다. The United States and Northeast Asia, Arms Control on the Korean Peninsula 등 40여 권의 국.영문 저서와 편저가 있으며, World Politics,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등 세계적인 저명 학술지와 각종 논문집에 250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영문 계간지 Global Asia의 편집인이자 10여 개의 국제 저명 학술지(SSCI 등재)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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