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함덕리, 한백흥.송정옥 선생 ‘희생’기린 비석 21일 제막

▲ 제주 조천만세운동 등 항일운동을 주도했지만 4.3사건 당시 무고하게 숨진 故 한백흥 선생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21일 함덕리에 제막된다. 이번 기념비는 한백흥 선생과 함께 4.3당시 함덕리 청년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으려 했던 마을유지 송정옥 씨의 희생도 함께 기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지역 항일운동의 상징인 조천만세운동의 주역임에도 제주4.3사건에 너무도 황망히 희생돼 진정한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했던 한 항일운동가의 기념비가 희생 60여년 만에 마을 후손들에 의해 세워질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주인공은 해방직후인 1947년 초대 함덕리장으로 임명됐던 故 한백흥(1897~1948) 선생.(<제주의소리> 2007년 4월4일 ‘일제때 항일하면 뭐해! 4.3때 죽었는데…’ 보도)

▲ 제주 조천만세운동 등 항일운동을 주도했지만 4.3사건 당시 무고하게 숨진 故 한백흥 선생 ⓒ제주의소리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이장 고두철)는 오는 21일 오전10시 마을에서(함덕의원 앞) ‘의사(義士) 한백흥.송정옥 기념비’ 제막식을 갖는다고 19일 밝혔다.

4.3당시 함덕리장이었던 한백흥 선생과 마을유지였던 송정옥 선생이 토벌대로부터 무고하게 학살당할 위기에 처했던 마을청년들을 구하기 위해 토벌대의 만행을 만류하다 함께 희생된 것이 60여년 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함덕리민들은 정성을 모아 마을 젊은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아내려 했던 두 분의 의로운 희생을 기리기 위해 최근 기념비를 마을에 세워 제막을 앞두고 있다. 

특히 한백흥 선생은 1919년 기미년 3월1일 서울에서의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봇물 터지듯 일어났던 만세운동이 제주에까지 전해지자 그 해 3월21일 조천.신촌.신흥.함덕 등에서 주민1500여명을 규합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한백흥 선생은 약관의 나이로 3월24일까지 네 차례나 연속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일제경찰에 붙잡혔고, 그해 4월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칙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4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현재 조천항일기념관에도 ‘조천 3.1만세운동의 주역들’로 10명의 지역인사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데 한백흥 선생도 그 중 한명이다.

그러나 4.3사건이 발발한 1948년 당시 토벌대에게 어이없는 이유로 희생됐다는 이유 때문에 선생의 독립유공 공적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번번히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항일운동의 주역임에도 4.3희생자라는 신분이 ‘덫’이 된 셈이다.

▲ 함덕리민 일동은 한백흥.송정옥 두 분의 의로운 희생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오는 21일 마을 현지에서 기념비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故 한백흥 선생의 유족(손자)인 한형범 씨(63.제주도사회복지사협회장)는 제막식을 앞두고 <제주의소리>와 통화에서 “아직도 독립유공자로서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할아버지께서 편안히 눈감지 못하고 계실 것 같아 가슴 아프다”면서도 “그러나 함덕리민들이 할아버지와 송정옥 선생의 의로운 희생을 기려 기념비를 제막한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머지않은 날에 독립유공자 훈장을 할아버지 영전에 바칠 날이 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함덕리민 일동은 21일 제막하는 기념비에 마을 초대리장 한백흥 선생과 마을유지 송정옥 선생이 지난 1948년(무자년) 11월 4.3의 광풍(狂風)이 몰아치던 시기, 마을 젊은이들이 토벌대의 무고한 학살에 희생될 위기에 처하자 신원을 보증하겠다며 처형을 만류하다 토벌대로부터 마을청년들과 함께 무참히 주검이 된 두 분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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