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의 간격과 소통, 그리고 사람

시간

총 252시간에 이르는 여행 시간 동안 122시간을 기차와 버스에서 보냈다. 베이징 서역에서 시안역까지 11시간, 시안에서 투루판까지 32시간, 투루판-우르무치-쿠처까지 버스로 17시간, 그리고 둔황을 가기 위해 쿠처에서 유위안역까지 27시간, 둔황에서 시안까지 24시간, 시안에서 다시 베이징까지 11시간. 꼬박 5일에 해당하는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셈이다.

기차 안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동안 창밖으로는 텐산(天山 )의 설봉이 솟았고, 황하가 흘렀으며, 끝없는 지평선이 한동안 계속되기도 하였다. 지평선 끝에 이어진 산맥너머로 노을이 졌고, 사막 위로 달이 떠올랐으며 아득하게 별이 박혔다. 수많은 간이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내리고 또 기차에 올랐다. 기차의 시간은 목적지를 향해가는 시간이 아니라, 매순간 그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목적지를 향한 기다림의 시간인 것이다. 그것이 시간 개념을 일시나마 바꿔놓았다.

   

▲총 252시간에 이르는 여행 시간 동안 122시간을 기차와 버스에서 보냈다. 기차를 타는 동안 창밖  지평선 끝 산맥너머로 노을이 졌고, 텐산(天山 )의 설봉이 솟았다. ⓒ허상수

여행 말미,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우리는 다시 시안에 이르렀다. 저녁 기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일행은 인근 사찰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움직이는 시간을 좀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난 다른 4명의 일행과 떨어져 시안역 인근 pc방을 찾아 시간을 보낸 후, 오후 2시쯤 다시 역으로 나왔다. 일행과 만나기로 한 5시까지는 3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3시간 ... 좀처럼 길게 느껴지질 않는다. 27시간, 32시간의 기다림에 비해, 3시간은 마치 찰나같은 느낌이다. 달라진 시간의 감각은 담배 10개피쯤 해치워야 할 동안에, 그저 3개피 정도로 채우게 한다. 서있다가 배회하다 다시 제자리로 와 눕기도 할 시간의 길이인데, 한 곳에 걸터 앉아 나를 안정되게 가꾼다. 일상에서 3시간의 기다림이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 될법한데. 시간은 그렇게 다르게 나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3시간은 느리게, 천천히 살리라 결단하고서야 견뎌낼 수 있음직한 간격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잠깐 머무는 여백이 되고 있다.

투루판이나 우르무치 같은 신장지구의 도시들에서 시간은 더욱 다르게 다가온다. 중국은 한국 시간에 비해 정확히 1시간 늦은 시차라고 하지만, 이 곳에서는 실제 3시간이 늦다. 우리시간으로 밤 9시에, 이 곳의 하늘은 노을을 준비할 따름이다. 이른바 ‘베이징 타임’이 적용돼 기차시간 같은 것은 1시간 늦은 시간으로 정해지지만, 이 곳 사람들의 생활에는 실제 3시간의 시차가 쓰인다고 한다. 이 곳 사람들은 베이징 타임으로 일찍 일을 시작해 저녁에 끝내고서도 왠지 다시 생활의 시간으로 두 세시간을 더 보내야 할 것 같다. 다르게 적용되는 시간의 길이로 하여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은 분명 가난한 이들일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이미 저녁을 끝내고 밤의 평온에 들어간 고향의 일상을 떠올리며, 따가운 오후 햇살 속에 힘겨워하자니 어쩐지 설움이 다가온다.

소통

“$@#%#$^& ~ 쏼라 쏼라”

“아니, 기차에서 내리라고? 왜요? 난 시안으로 가야해!” 

“*&&@$^# ! %@!$@#$ !!”

“오케이! 그래 알았어요. 그런데 난 못내려. 뭐가 잘못됐어요.?”

“헤이! 헤이! ^%$&^& 쏼라!”

“난 여행중이고, 시안에서 친구를 만나야해. 그러니 계속 기차를 탈 다른 방법을 알려줘요!”

“ %^@$#% !!!”

“ ... ...  !!!!”

(* 중국어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참 무식하게 보이겠다. 죄송한 장면이기도 하다. 양해바라길. 그냥 생각대로 드러내는 여행 감상문이니까.)

서로가 서로의 말을 할 뿐이다. 상대는 중국말, 혹은 위구르말로, 나는 한국말로. 그냥 떠든다. 서로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냥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쏟아낼 뿐이다.

나는 영어실력이 젬병이다. 그런데 관광지 이외의 실크로드 여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보다 더하다. ‘탱큐’나 ‘하우 머치?’같은 가장 기초적인 영어도 통용이 안된다. 사는 정도에 따라 교육기회의 정도도 철저히 달리갈 수 밖에 없는 14억 중국인민의 한 단상이리라.

낯선 곳에서의 소통이란 굳이 설명을 안붙이더라도 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은 어떤 건지 알것이다. 소통은 언어 이상의 표현이고 언어를 넘는 사람의 만남이다. 영어도 젬병이고, 중국어는 더더욱 깡통인 내가 베이징에서 시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것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 그 소통의 힘이란 낯선 곳에 혼자 있을때 더욱 강해진다.

나는 실크로드 여행 첫 날부터 혼자가 되었다. 아니 나만이 아니었다. 일행 중 허상수 교수는 아예 낙오자가 되어 버렸다. 박은석씨는 범법자로 몰릴뻔 했다. 베이징 역에서 미리 예매했던 기차표가 잘못돼 우리는 다시 표를 구해야 했는데, 새로 구한 그 기차표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어렵게 구한 표는 5명의 우리 일행을 서로 다른 기차로, 혹은 같은 기차라도 서로 다른 칸에 머물게 했다. (기차 안에서 다른 칸으로의 이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허상수 교수는 베이징 역에서 각자 헤어져 기차를 타기로 했는데, 기차를 못 탄 것이다. 알고 보니 허교수의 표는 어린이용 표였던 것이다. ( 때문에 나머지 4명은 다음 날 아침, 만나기로 한 시안역에서 2시간 가량 허교수를 찾아 헤매야 했다. 허교수는 여행 첫날밤부터 베이징 역에서 신문지를 덮고 노숙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박은석씨는 새로 구한 표가 위조표임이 드러나서 기차 안에서 공안(公安)으로부터 심문을 당해야 했다. 우연히도 중국어를 잘하는 다른 외국인의 도움으로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고 했다.

▲기차안 풍경. 발디딜틈 조차 없는 기차에서 사람들은 2~30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정이 계속되었다. ⓒ허상수

내가 가진 표에도 역시 문제가 발생했다. 알고 보니 목적지가 시안이 아닌, 중간의 도시로 돼 있었던 것이다. 기차가 출발할 때 난 동승한 중국의 어느 가족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나누며 침대칸에 기분 좋게 누워 있었다. 그런데 2시간쯤 되었을까? 갑자기 승무원이 오더니 나보고 내리라는 것이다! 이런 날벼락이!

좌석표나 입석표는 검표만 하고 말지만, 침대칸의 경우 승차시간 동안 기차표를 별도의 카드와 바꿔주는데, 이를 관리하던 승무원이 내가 내릴 역을 통보해 준 것이다. 나는 표가 잘못되었음을, 나의 실수이긴 하지만 시안이 목적지이고 그 곳까지 가야 함을 가능한한 손짓과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설명했다.
겨우 기차에서 퇴출될 뻔한 위기를 모면했지만, 나는 이른바 3등칸(입석칸)으로 쫓겨 나고 말았다. 완전히 천국에서 지옥으로라는 표현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난 다시 검표원에게 오로지 손짓과 표정을 통해 사정을 설명해야 했고, 비로소 목적지 ‘시안(西安)’이 찍힌 새로운 표를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서야 받을 수 있었다.

▲밤기차안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은 말과 표정, 몸짓은 물론 수첩에 그림까지 그려넣는 노력이 필요했다. ⓒ고유기

그렇게 시작된 첫 날의 기차여행은 한편으로 ‘사람’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다시금 일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누구나 여행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면, 어디든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디든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세상의 사람들은 ‘나’와 다르지 않음을 말이다.

어쨌든, 난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발디딜 틈 없는 기차의 입석칸 한쪽 구석에서 쪼그려  기대고 앉아 10시간 가까운 중국의 첫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내 즐거운 경험이 되었는데, 시안에 도착할 무렵 선물을 주고 받을 정도까지 발전한 중국인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캔 겅’, ‘까오용’, ‘졍기엥핑’, ‘료우우완’ ... 이들은 북경에서 시안으로 가는 그 혼돈과도 같은 기차칸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내가 외국인 신분인줄 알아채고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의 곁눈질로 다가오던 그들이 곧 말문이 트이면서 즐거운 친구가 된 것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기차칸 화장실 문 앞 바닥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승객들이 화장실을 출입할때마다 난 일어서서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화장실 문은 열고 닫음이 원활치 않은 상태였다)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그들은 매번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말을 걸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아예 “아임 레스트룸 매니저(I'm restroom manager) !”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였다.

시안역에 다다를 무렵 이번에는 내가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보던 잡지를 찢어서 볼일(?)에 쓰라고 권하기도 하고, 이를 본 누군가는 저쪽 사람들 틈에서 챙겨뒀던 화장지를 내밀어주기도 했다. 또한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화장실 입구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을 막고 서서 내가 나올때 까지 보호(?)를 자임해 주기도 했다.

시안역에 이르러, 모두가 짐을 챙기고 내릴 준비를 하던 시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가방, 혹은 보따리에서 뭔가를 하나씩 꺼내더니 이내 선물이라고 나에게 내민다. 누구는 자기가 쓰던 커다란 부채를, 또 누구는 휴대용 ‘맥가이버 칼’을, 또 두 여성친구는 여러 모양의 열쇠고리를 내밀며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난 그들에게 준비해간 예쁜 펜과 담배등을 답례로 건넸다.

하마터면 쫓겨날 뻔 했고, 다시 입석칸 바닥에 떠밀려 놓이게 된 대륙의 밤기차가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 난 이미 그 사람들 틈에서 마치 오래된 것 같은 우정을 나누는 행복까지 누린 것이다.

이 경험은 내게 생소한 여행지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앗아갔고, ‘다른 풍경’의 다르지 않는 세상과 만나게 했다. 여행 중의 우연한 사건으로 소중한 기억을 일찌감치 얻게 된 것이다. 오직 소통이 힘이다! (계속)

▲북경에서 시안역으로 가는 밤기차안에서 만난 이들이 내게 준 선물들. 큰 부채에 각자 자신의 이름을 써넣으며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거라는 말까지 보태주었다.
 ⓒ고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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