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올레길에 누가 살고 있을까?
청보리 올레길에 누가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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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0-1 가파도올레 ②] 청보리올레-개엄주리코지-하동마을

▲ 가파도 ⓒ 김강임

▲ 가파도 청보리밭 올레 가파도 ⓒ 김강임

언덕길도 비탈길도 없는 초원은 온통 파랗다. 여느 들녘 같으면 노랗게 곡식이 익어갈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가파도 들녘은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듯했다. 태풍을 감지하는 섬이다 보니, 이 섬에서 자라는 것들은 대부분 키 작은 것들. 세찬 바람과 싸워야 하고 태풍과 맞대응해야 하기에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사람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몸을 움츠리고 걷지 않는가?

▲ 가파도 콩밭 가파도 ⓒ 김강임

청보리 올레길은 고구마밭 지평선

길 옆에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키 작은 야생화들, 그리고 낮은 돌담, 조금은 운치있는 길이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담은 비집고 올라온 고구마 넝쿨은 바람따라 서로 얼굴을 비벼대고 있었다. 얽히고설켜 자유롭게 뻗어가며 사는 식물들... 그리 넓지 않은 섬이 고구마 밭이고, 자투리 땅이 콩밭이다 보니, 가파도에는 고구마 밭 지평선이 펼쳐졌다.

지평선 끄트머리에 매달린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모슬봉을 배경으로 아무리 카메라 셔터를 눌러봐도 허한 마음을 채우지 못함을 어쩌랴.

▲ 여문 콩 가파도 올레 ⓒ 김강임

자세를 낮추는 가파도 식물들

수확을 앞두고 제법 여물이 통통해진 메주콩. 콩밭 끄트머리에 보일락 말락하는 가지런한 돌담. 가파도에서는 곡식들의 이파리가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했을까.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은 겨울이면 청보리 씨앗을 뿌리고 긴 겨울의 여백을 채우는지도 모르겠다.

가파로 91번길, 가파초소 옆에 서 있으려니 상동마을 지붕이 푸름의 외로움을 달랜다. 초록과 연두색 물감을 차례대로 뿌려놓은 듯한 지평선을 너머,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가파도 올레를 걷다 보니 너무나 심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과의 대화다. 심심할 때 불러보는 내 이름, 심심할 때 생각나는 사람들, 심심해서 보이는 꽃들, 그리고 바다 하늘, 나는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이 왜 심심한 섬으로 떠나려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큰옷짓물을 지나 개엄주리코지에 접어들면서야 시간이 궁금해졌다. 도심에서 1시간은 아주 많은 사건과 사고, 고뇌가 따른다. 하지만 심심한 섬에서의 1시간은 정지 상태였다. 그저 가파도 올레를 걷다보면 길이 모두 바다와 통하니 바다만 바라보면 된다.

▲ 자전거 하이킹 가파도 ⓒ 김강임

자전거 바퀴도 느리게 돌아가는 가파도 올레

가파도 개엄주리 코지에 바람이 불었다. 정자 주변에 모여 있는 강태공들은 한라산만 낚아댔다. 오후 1시 20분, 하동마을로 통하는 해안도로를 걸었다. 켜켜히 바닷돌로 쌓아올린 돌담이 꽤나 높았다. 그 아래 해안도로를 중년의 여인이 자전거 패달을 밟고 달린다. 느리게 느리게 아주 느리게 돌아가는 자전거의 페달, 그리고 자전거 바퀴, 가파도에서는 자전거 바퀴마저 느리게 돌아가더라.

▲ 가파도 묘지 ⓒ 김강임

한라산에서 부는 바람이 갯바위에 부딪혔다. 다시 파도가 일기 시작하더니 하얀 물거품이 치솟는다.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는 나지막한 언덕의 묘지들, 가파도에 태어나서 가파도에 묻힌 사람들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 제단 가파도 신앙지 ⓒ 김강임

▲ 고망난 물 고망난 물 ⓒ 김강임

동글동글한 돌로 담을 쌓고 제단을 만든 마을제단을 지나니 가파도 하동마을 남브르코지 등대가 보인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2개의 등대를 바라보는 고망물. 대부분의 섬에는 솟아나는 샘물이 없다던데, 유독 가파도 고망물은 주민들의 식수를 해결하고 빨래터로 사용하기도 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 청보리 올레길 가파도 올레길 ⓒ 김강임

심심한 섬에서 무얼하지?

"좀 빨리 걸읍시다."

걸음을 재촉하는 남편의 말이 정수리에 꽂힌다. 심심하게 걸으며 자신을 낮추자고 떠나온 섬인데 왜 저리도 발길을 재촉하는 것일까.

"2시 20분 배를 타야지요?"

그러고 보니 남편을 길을 걸으며 이 섬을 빠져 나갈 궁리만 했나 보다.

"늦으며 4시 배로 떠납시다."

게으름을 피는 내 행동과 말이 거슬렸는지 갑자기 남편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럼, 앞으로 2시간 동안이나 이섬에서 무엇을 하려고요?"

"맞다. 2시간 동안 심심한 섬에서 무얼하지?"

우린 갑자기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가파도 새마을회관에서 노인회관, 통물로 향하는 올레길을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오후 2시 10분 가파도 상동항 선착장에는 2시간 전, 같은 배를 타고 들어온 올레꾼들의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오후 2시 20분, 작은 배는 물결치는 대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른 고구마밭 지평선이 잠기더니 송악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 가파도올레 가파도 올레 
ⓒ 김강임  가파도  

가파도에서 가장 큰 나무는 아마 가파초등학교 종려나무가 아닌가 싶었다. 가파초등학교 옆으로 난 황톳길은 봄에 작은 섬을 넘실대는 청보리축제 올레길로 통했다. 황토색에는 왠지 인간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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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소리>

<김강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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