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제주생활 30년, 팔순을 맞아 개인전 준비하는 변시지 화백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혼자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지탱할 수 없는 고독감에 몸부림치는 인간상을 황토빛 변시지의 그림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섬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지낸 섬사람들의 무기력증이 고독이 되고 그리고 그것이 인간본성에 깊이 깔린 절대고독과 닿아 있음을 두 노작가는 시와 그림을 통해 말하고 있음이다.

▲ 1991년 광풍회 출품작 '까마귀 울 때'.
울분이라도 토해내듯 거친 선으로 그려낸 조랑말과 초가, 작열하는 태양,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 같은 파도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 모두가 하나의 황토빛 색채 속에서 녹아 마침내 한 덩어리가 된 그 그림이 변시지의 ‘제주화’이다.

너무나 제주적인 소재들이고 낯익은 풍광임에도 불구하고 변시지의 그림은 특별하다. 화려한 천연색의 풍경은 화가의 손을 거쳐 누릿한 황토빛으로 탈바꿈하고 반짝이는 햇살과 바람은 거친 파도로 화폭에 담긴다.

그림 속에서 지팡이를 짚고 쓰러질 듯한 초가집 앞에 서있는 구부정한 노인은 영락없이 화가를 닮았다.

▲ 작품 앞에서 한 컷.ⓒ김진희
그가 황토빛 제주풍광을 그려 온지 올해로 30년, 어릴 적 일본으로 건너가 서울을 거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와 ‘제주화’라는 독특한 화풍을 일구어낸 선생은 올해 팔순을 맞이하여 고향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그는 전통적 아카데미즘적 화풍으로 일본의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광풍회에 최연소 대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등단을 하였다. 그러던 그가 지금의 추상적이며 수묵화적인 일련의 독특한 '제주화'로 변모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 아니 제주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철저하게 지켰던 작가의 고집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가 태어난 고향 제주의 빛과 흙과 바람과 물이 그를 이끌었는지도….

▲ 까마귀는 선생님에겐 유년의 추억과 같다. '돌담위의 까마귀'
- 안녕하셨어요? 선생님. 요즘 몸은 어떠세요?
벌써 80이야. 나이가 들어가니……. (좋아하시던 술도 많이 못하신다며 웃으신다.)

- 올해 개인전을 가지신다고 들었는데요.
올해가 80살이고 고향 정착 후 30년이 되는 해여서 그간 제주에서 그렸던 작품들을 모아 기당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질 생각이네. 회고전의 성격은 아니고….

- 선생님께서 30년 동안 작업하시면서 남 다른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지금은 세계화 시대지. 우리나라도 세계를 향한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해.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건 안 된다고.
내 작품을 처음 선보일 때 다들 '제주의 풍경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칭찬을 했지만 너무 생소한 그림이라 어떻게 봐야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그만큼 나는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완성한 거지.
결국 세계화란 새로운 이념,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내는 것인데 가장 제주적인 내 그림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었지.
제주에만 있는, 가장 제주적인 것을 개발해놔야 관광객들도 제주를 다시 찾고 싶어 하지 않겠나?

- 고향인 제주에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1975년 제주대학교에 강의를 계기로 6살 때 떠난 고향을 다시 찾게 되었지.
일본 생활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가슴속의 꿈틀거림을 이기지 못해 한국으로 건너와, 전후의 서울생활에 만족을 못했던 터라 제주의 이 같은 부름이 남달랐고….
가족들의 반대 속에서도 제주의 생활은 시작되었고, 그간 일본에서 화풍과 서울의 비원파 시절의 화풍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생각하고 창작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있었지.

▲ 비원파 시절의 작품 '애연정'.
- 비원파 화풍에서 제주화로 바뀌게 됐을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비원파 기법으로 제주를 그리기 시작했었지. 그런데 작품이 겉으로는 제주의 모습인데 내가 담아내고 싶은 제주의 본모습이 아니었어. 많이 힘들었지. 가족들과도 떨어져야 살아야 했고, 비원풍의 그림을 사주던 일본화랑과도 화풍이 바뀌면서 거래도 끊어져서 경제적으로도 더 어려웠지, 생각대로 그림은 안 되고…. 그런데 이런 모든 걸 다 버리고 나서야 제대로 제주의 풍토와 정서가 나의 그림에 밑바탕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제주화'의 시작이 되었지.

- 선생님은 비원파 시절 원래 섬세하게 색채를 즐겨 썼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주화'는 거친 황토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왜 그런 건가요?
원래의 제주는 온갖 천연의 색으로 가득한 곳이다. 동양의 하와이라 불릴 만큼 .
봄이면 노랑의 유채가 군무를 이루고 분홍빛의 벚꽃이 흩날리고 여름엔 짙은 초록이 온 섬을 감싸고, 가을엔 노란 귤이 가득하고…. 그런데 이런 삼라만상의 천연색들이 궁극에는 누런 황토빛으로 변하더라 말이지. 강렬한 태양아래서 흰빛이 희다 못해 눈이 부셔서 노랗게 보이는 것처럼…. 거기서부터 토속적인 느낌이 나는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지.
사계절 빛깔이 주는 현란한 색채의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시간의 변화 뒤에도 항상 남아있는 것들을 그리려고 하였지.

▲ 1991년 作 '생존'.
- 이 같은 황색조의 단색톤 기법은 제주도의 자연이 선생님에게 또 다른 자연을 깊이 체득한데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작품속의 검은 선은 마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데요?
서양의 문화는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 위에 사람이 있고 동양의 문화는'자연과 어떻게 하면 순응하는가?'에 있다. 펜과 붓의 차이도 그런 거야. 펜은 가늘고 늘 일정하지만 붓은 그렇지 않아. 펜은 정밀한 묘사가 가능하지만 붓은 추상적이지. 가늘어졌다가 굵어지기도 하고, 묽어졌다가 진해지기도 하고…. 또, 내가 사용하는 검은 색은 동양의 생활 철학에서 나왔다고 보면 되는데 동양 사람들이 머리도 검고 눈동자도 검잖아? 가장 동양적이며 가장 편하게 접하고 받아들이는 색이 흑색이라고 할 수 있지.

- 네.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그림속의 소재는 항상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과 초가집 하나, 말 한 마리, 그리고 바다가 갈매기와 바닷새와 쓰러져 가는 초가, 바람 혹은 태양, 폭풍이나 태풍으로 쓰러질 듯한 바닷가 주변의 초가와 무너질 듯한 돌담, 조랑말 등이 있잖아요? 왠지 쓸쓸하고 고독해 보여요.
내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제주는 원래 척박한 자연환경에 어렵게 생활하던 때였어. 물론 한국의 전반적인 사정이 그랬겠지만 제주는 자연의 영향까지 있었으니까. 바람이 한번 불면 밭에 뿌렸던 씨가 다 날아가 버려서 농사도 망치고, 바다에 나가 고기 잡던 사람들도 많이 죽기도 하고…. 그런 걸 보고 소재로 삼았으니 조금은 쓸쓸하고 고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거 같은데. '제주민'에 있는 한이랄까 그런 걸 그리려고 했었지.
그리고 원래 작품이라는 게 작가의 손에 의해 창조되니 나의 모습도 들어가 있겠지.

▲ 변시지 선생님께서 최연소로 광풍회 최고상을 받았던 작품 '베레모의 여인'.
44년만의 귀향….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던 고국…. 오랜 시간 자신만의 그림을 찾기 위한 고행의 시간들…. 고향에서 새로운 미를 발견한 변시지.

변시지는 전통적 문인화가 보여주는 선비적인 세계, 그와 동시에 인간과 우주 자연의 어떤 합일적인 세계, 이러한 것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로컬리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범세계인의 가슴으로 스며들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팔순을 맞는 원로화가임에도 8월 전시를 앞두고 열심히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정히 정열적이다.

▲ 웃으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순수한 느낌이 묻어난다.ⓒ김진희
제주를 그리는 화가 변시지. 선생님은 외국의 예술 감상 인터넷 사이트나 미술교육 사이트에 이름을 올린 몇 안 되는 한국 화가중의 한 사람이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를 소개하는 바로 그 자리… 그 대가들 사이에 변시지는 한국의 화가로 소개되어 있다.

제주를 빛내신 작가, 제주를 대표하는 작가, 세계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시며 한국을 빛내는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갈채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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