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기 칼럼] 환경을 '자산'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우려

집 골목을 나서며 노랗게 피어있는 국화를 보고 여전히 가을임을 새삼 생각한다. 페이스 북에서 만난 어떤 분은 “제주도의 밤은 여전히 푸른지요.”하고 인사를 건네온다. 이웃이 가꿔놓은 골목길의 노란 국화와 멀리서 제주의 인상에 빗대어 물어오는 안부를 접하고서 느닷없이 잠복해 있던 걱정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환경 자산’이란 말이 최근 유행할 조짐을 보인다. 올해 제주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면서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고 호들갑이더니, 직후 ‘환경자산’이란 타이틀을 단 세미나, 토론회가 이어졌다. 제주의 환경이 무엇의 자산이 된다는 것인가?

 제주에는 별명이 많다. ‘특별자치도’나 ‘국제자유도시’야 그렇다 치더라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람사습지보호지역’, ‘세계지질공원’까지. 모두 제주의 자연환경이 얻은 이름들이다. 그리고 지금 또 ‘세계 7대경관’이라는 별명을 얻기 위해 나서고 있다. 그 자체야 뭐라 할 수 없다. 문제는 앞의 ‘자산’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제주의 자연환경이 토건업자들의 개발이윤의 대상을 넘어 아예 경제전략 차원으로 노골화되고 있는듯 보인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자산’이지 실은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 불편하다.

 환경이 경제의 바탕이 된다면 좋은 일이 아니냐 물을 수도 있다. 공감한다. 그런데 그 바탕이 되는 제주환경의 실상을 상기해 보면, 걱정부터 앞서는 걸 어쩌랴. 비단, 나만의 걱정 만은 아닌듯 싶다. 며칠 전, 어느 신문의 사설도 이에 대한 염려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은 것이 불과 한달여 전인데, 후속대책은 찾아볼 수 없고 ‘7대 경관’이란 또 다른 타이틀을 위해 거금을 펑펑 쓰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이 신문은 7대경관 선정노력을 두고 ‘상업적 이벤트에 행정력 올인’이라는 긴급기사를 머릿기사로 싣기도 했다.

 2002년에 제주가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을때만 해도 기대가 있었다. 오랫동안의 개발-보전 논란을 종식시키고, 환경과 경제를 통합하는 쪽으로 정책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기회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지역의 농업과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었고, 토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막상 지정이 되고 나서는, 이름만 남았을 뿐 정책당국은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 필자도 위원으로 참여했던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위원회’라는 것도 만들었지만, 회의가 열렸던 것은 딱 한 번으로 기억한다.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인 서귀포 앞바다 범섬 바로 코 앞에 해군기지 건설로 6만평이라는 제주 사상 초유의 바다매립이 벌어질 판이면, 한 번쯤 모여서 고민이라도 교환할 수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으로부터 5년 후 제주는 또 세계자연유산이라는 더 큰 이름을 얻었지만, 지금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커지고 있다. 검은오름 입구에 대형 주차장부터 만들고, 대규모 국제행사 치르기에 바빴다. 습지보호지역으로로 지정된 곳으로부터 채 1km도 안떨어진 곳에 골프장 허가를 내준 것이 불과 4년전의 일이다. 곶자왈 공유화재단까지 만들어 보전운동을 벌이면서도, 수림이 울창한 생태3등급지의 30%를 어떤 기준도 없이 개발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조례는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 전, 올레코스 중에서도 각광받던 호젓한 바닷가 오솔길이 행정의 잘못으로 망가졌다며 언론이 연일 질타에 나섰다. 그러나 이것은 단상에 불과하다. 먹돌해안으로 아름답던 탑동바다의 매립문제까지 재론하지 않더라도, 제주 곳곳의 해안에 놓여진 해안도로와 하루가 멀다하게 생겨나는 우회도로들, 산업도로라 불리다 비로소 진짜 ‘산업도로’가 돼 버린 지금의 '평화로'를 비롯해 끊일 줄 모르는 도로확장, 주택문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알 수 없고 도시 외곽만 넓혀가는 정체불명의 택지개발정책과 우후죽순 생겨나는 옥외광고판, 고층건물 논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실상앞에서 환경의 가치창출을 얘기하려면 먼저 있어야 할 것은 '반성'이다. 그런데, 아예 제주 환경을, ‘이용’을 위한 ‘자산’으로 어떻게 ‘효율’화 할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 지금 본격화되는 것이다.
 일찍이 제주도 환경정책의 실제는 ‘선보전 후개발’이니 ‘지속가능한 발전’이니 하는 담론과  늘 따로였다. 그에 비추어 지금 ‘환경 자산’운운 이야말로 그 실제가 급기야 담론까지 통합하며 경제권력화 하려는 양상으로 나아가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오래전부터 제주의 환경정책을 사실상 관장해 온 도청의 한 간부는 어느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주환경자산의 효율적인 이용이란 한마디로 환경자산의 가치창출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기본이 있고, 제주에서만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환경자원(자연, 고유문화, 환경과 사람)의 가치를 체계화하고 프로그램화, 지속가능한 보전체계를 구축하여 지역주민과 세계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것이 제주형 환경가치 창출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얼핏 이제 진짜로 환경을 제대로 보전해서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로 인정받고 경제적 발전도 가져올 수 있도록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책으로 나가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믿을수가 없다.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믿게 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곶자왈 개발을 무원칙하게 허용하는 제도를 바로잡고, 해안과 중산간의 규제를 엄격히 전환함은 물론, 개발 면죄부만 주는 것으로 모자라 비리의 커넥션만 양산한 채 방치돼 온 환경평가제도를 사전개발 규제장치로서 제대로 기능하도록 확 바꿔야 한다. 도청의 환경정책 담당자는 세미나 장이나 국제브랜드 유치하는 해외 출장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개발논리의 이기에 맞서 환경현장에서 꼼꼼하고도 강력한 보전시스템을 어떻게 짜낼까 하는 고심의 들판에 자주 서야 한다.

 지금의 도정이 '선보전 후개발'의 원칙을 선언했지만, 100일이 넘도록 걸맞는 조치는 없다. 그 선언에 신뢰를 보태려면, 무엇보다 그 동안 누적돼 제기되어 온 과제들과 보다 선진적인 보전관리를 위한 즉각적인 검토와 조치에 먼저 임해야 했다. 그런 배경조차 없이 지금 얘기되는 환경자산의 가치창출이란 지금까지의 경우에 더해 그야말로 '환경을 돈되게 하는 일'에 본격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꼴이다.

 환경가치를 발전과 연계하겠다는 말을 가지고 경제권력화라 얘기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치가 보호되고 마땅히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할 제주의 수많은 주요한 경관지, 생태계 장소들이 이미 사유화되었다. 제주발전이란 미명하에 말이다. 그것의 이득은 어떻게 배분되는지 헤아릴 길 없고, 자연스러웠던 주민들의 발걸음은 통제된 채, 그 때마다 경제효과 수천억 운운하는 행정논리가 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기업특혜 개발을 합리화 해 왔다. 그 때마다 팔려나간 토지, 경관자원, 생태계자원의 상품화가 더 가속화된다면 제주의 자립적 발전이란 요원할 뿐이다. 이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란 자본특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집적된 권력의 근거로만 의미 있어 보인다.

▲ 고유기 ⓒ제주의소리
내용적으론 과거 개발모순을 더욱 첨예화시킬 뿐인 국제자유도시 정책에 맞서야 할 환경논리가 이른바 '국제브랜드 따기'를 넘어 발전과 연계한 자산개념으로 맞춰지고 있다면, 이는 바로 그 환경의 가치를 무너뜨려 온 개발담론, 자본권력과 조용히 손잡으려는 시도가 될 수 밖에 없다. 거꾸로, 환경을 경제논리와 연결해보고 싶다면, 그 첫 시도는 무너진 경관, 매립된 바다, 포장되고 확장된 도로를 복원하는 '복원 토건'이라도 먼저 고민해 보는 것이 어떨까? 제주의 행정이 앞장선다면, 녹생성장을 모토로 내건 지금 정부하에서 설득력도 있고, 도민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호응을 얻을텐데 말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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