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레인보우-마을밴드] (1) 제주도 유일 여성 마을밴드 '남원사람들'

최신 트렌드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TV 오락 프로그램들은 앞다퉈 ‘밴드’에 열광했다. ‘오빠밴드’ ‘남자의 자격’ ‘무한도전’이 연이어 밴드를 결성하고 ‘감동’을 전했다. TV를 보던 찌질한 사회인들에게도 어느새 록은 ‘청춘’이요, 무대는 ‘해방구’라는 ‘로망’이 되살아났다. 이는 곧바로 ‘아마추어 밴드’ 붐으로 이어졌다.

제주에선 훨씬 흥미로운 밴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심 속 넥타이 맨 직장인 밴드에 비견될 농사짓는 농부들의 ‘마을밴드’가 농촌마을에 생겨났다. 곡괭이 들고, 전정가위 쥐던 손에는 기타와 드럼 스틱이 들렸다. 연습실은 비닐하우스, 밴드 이름은 마을 이름을 따 ’00 밴드’다.

그 삼인방. 남원밴드, 월평밴드, 가시리밴드에게 <제주의소리>가 인터뷰를 청했다. _편집자

 


 

▲ '남원사람들' 연습실 모습.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전명숙(42) 씨는 “삶에 찌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광어양식장에서 힘들게 일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간 곳은 ‘스위트 홈’이 아니었다. 또다른 일 공간의 연장선이었다.

”나는 엄마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취미 가질 시간에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 하고 밥 했다. 그러다 문득 나이 40을 넘겼다. 그녀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 강박증’이었다.

김은실(43) 씨는 자장면집과 슈퍼마켓을 바쁘게 오가며 아이들을 바이올린,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음악에 대한 동경이 강했던 김 씨는 아이들만은 악기를 마음껏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악기 쥐는 법을 몰랐다.

모두 ‘엄마여서’ 였다.

이들의 삶 한가운데 ‘밴드’가 들어섰다. 이름하여 남원 여성주민들로 결성된 ‘남원사람들’이다.

▲ 김은실(왼쪽), 전명숙 씨.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남원사람들이 처음부터 여성밴드였던 건 아니다. 납원읍 주민자치위원회 문화강좌로 시작했었던 것이 강의가 끝난 뒤에도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밴드’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남녀 혼성이었으나 지금은 여성들만이 남았다. ‘바쁜 생활’은 ‘밴드에 대한 로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멤버들 역시 ‘생활’에 쫓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멤버 교체가 잦은 것은 ‘마을밴드’들의 공통된 상황이다.

“한창 기타 연주에 몰입하고 있다가도 전화 와서, ‘감귤 한 푸대 얼마우꽈?’ 물으면, ‘그거 2만원마씨’ 답하고 다시 연주하고 그러잖아요(웃음).” 자장면집에 슈퍼마켓까지 운영하는 김은실 씨는 감귤 농사도 짓는다. 남원은 제주도 감귤의 25%를 생산하는 본산지이다.

밴드에서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는 멤버도 이날 감귤 따느라 바빠 연습에 참여하지 못했다. “요즘 감귤밭에 일손이 한창 부족할 때라서... 일손 빌어 쓰는 날에는 주인이 빠질 수 없거든요”(김미영)

나이는 가장 어린 축에 속하지만 멤버들 연락책과 스케줄 관리를 담당하며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김미영(39) 씨는 감귤농사를 짓는 가정주부다. “너무 늦기 전에 뭔가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었죠. 그러다 읍에서 밴드 강좌가 있다고 해서 두달만에 그만두고 ‘얼씨구나’ 등록했어요.” 김 씨는 드럼을 맡고 있다.

▲ 김미영 씨.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김은실 씨.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전명숙 씨.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음악에 도취돼 연습을 하다가도 감귤, 광어, 자장면 같은 일상들이 여지없이 이들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지만, 거꾸로 밴드음악이 현실에 끼어들기도 한다.

김은실 씨는 자장면집을 1시까지 운영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특히 밤 10시부터 1시까지는 손님도 별로 없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기타를 튕긴다. 이런 그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기타맨’이란 별명까지 지어줬다.

“제가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거든요. 이 기타가(기타를 매만지며) 밴드 들어왔을 때부터만졌던 기타예요.”

창단 1년여가 된 지금까지 ‘남원사람들’은 총 세 번 무대에 올랐다. ‘양호진의 음악이야기’에 이어 납원읍 대표 마을축제인 ‘남원읍 감귤 꽃 축제’, ‘설문대문화의날 행사’였다.

아줌마들의 첫 무대는 캄캄했다.

“떨렸죠. 생각 없이 무대뿐이었고...”
“뭘 실수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했다는 기분만 있었어요.”
“아줌마들이어서 호응은 좋았어요(웃음)”

두 번째 무대에선 연주가 들리기 시작했고, 세 번째 무대를 내려오면서는 다음 무대를 꿈꿨다.

이젠 제법 마을에서도 소문이 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 섭외 문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남원읍의 얼굴이 되고 있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일주일에 한 번 ‘남원사람들’과 만나 지도를 하고 있는 강창열 씨는 열정만큼 혹독한 선생님이다. '남원사람들'에겐 밴드정신을 불어넣는 '정신적 지주'이다. 

“1년을 넘게 같이 해온 사람들이에요. 그동안 많이 어른스러워졌어요. 적어도 음악에 대한 생각에서만큼은 말이죠. 남원사람들이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무대를 가릴 건 가리자는 생각이에요. 행사를 오르는 것만이 아니라 충분히 노력해서 우리가 고생했다는 것을 보여주자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차츰 ‘남원사람들’만의 밴드 정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들에겐 목표가 있다. 정기연주회도 하고, 남의 창작곡을 카피(따라하기.copy)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제주민요를 현대 리듬에 실어 제주를 대표하는 마을밴드가 되고자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금요일 연습시간이 되길 기다려요. 오늘은 또 뭘 배울까 설레요.”

아이들 뒤만 바라보던 은실 씨, 양식장 비릿내에 찌들어있던 명숙 씨, 도전에 더이상 늦어선 안된다는 미영 씨는 '밴드'와 함께 '설레임'을 얻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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