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올해의 인물’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

▲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제주의소리>가 뽑은 '2010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전국 걷기 열풍의 진원지로 제주를 알렸고, 세계 유명 트레일 속에 '제주올레'의 이름을 당당히 내걸게 했다. '빠름'을 추구하는 세상에 '꼬닥꼬닥' 사는 법을 먹히게 했다. 그러나 정작 제주올레길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그러나 2011년 제주올레의 더 큰 발전을 바라는 격려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제주의소리

이 여자, 인생에서 찾지 못한 화두를 길에서 찾는 여자다. 그러다가 결국 길을 내는 여자가 됐다. 이젠 ‘길’ 없인, 그것도 ‘공그리(콘크리트) 없는 길’ 없인 못사는 여자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53)이다.

<제주의소리>가 올 한해 제주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많은 뉴스메이커들 중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을 '201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서 이사장은 지난 3년여간 ‘제주올레 길’을 통해 전국적인 걷기 열풍을 일으키고, 제주를 한국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도보여행 붐의 진원지로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문화란 것이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전이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주올레 만큼은 절해고도의 제주 섬에서 출발해 전국으로 열풍을 불러일으킨 매우 보기 드문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는 지난 2007년 제주올레길 1코스를 처음 개장한 이후 21코스를 내기까지 만 3년간 놀멍 쉬멍 걸으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느리게 사는 삶을 길 위에서 설파해온, ‘조용한 혁명’을 일으켜 왔다. 무엇보다 ‘빨리빨리’ 세상에 ‘꼬닥꼬닥’(느릿느릿이란 뜻의 제주어)을 먹히게 한 주인공이고, 특히 지난 11월 제주에서 '2010 월드 트레일 컨퍼런스(World Trail Conference 2010)'를 주최해 제주올레를 세계에 알리는 디딤돌을 놓기도 했다.

아이러니 한 건, 길 위에서 느림의 전도사가 된 그도 사실 한때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빠름’을 추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워커홀릭(workaholic)이었다는 사실이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창간 멤버인 그는 여성최초의 정치부장과 여성최초의 편집장이란 명함을 달았고, 인터넷 일간신문 ‘오마이뉴스’의 편집국장 자리를 사표내고 제주로 귀향하던 지난 2007년까지 약 20여 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남은 건 ‘마녀’ ‘왕마담’ 등 까칠한 별명들이다.

마감을 하도 쪼아대니 ‘마녀’가 됐고, 머리 뚜껑이 뻑하면 잘 열린다 해서 ‘왕뚜껑’이 되기도 했다. 일 중독자였던 그녀의 치열한 모습에 후배기자들이 붙여준 애칭이지만 이젠 돌이켜보면 기계처럼 살기만 하고 자신의 영혼은 피폐하게 했던 시절이라고 스스로 고해성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누구보다 느림과 여유를 즐기려는 서 이사장의 개과천선(?)엔 촌뜨기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제주의 ‘JEJU DNA’가 그녀의 몸속에 흐르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녀의 과거는 이렇다. 1957년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고성리 출생. 그 후 서귀포 매일시장(현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의 노점상 딸로, 그리고 그 후엔 식료품 가게 ‘서명숙 상회’ 딸로, 사람냄새 나는 서귀포 시장통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신성여고에 진학하면서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로 유학(?)길에 올랐고 더 넓은 제주도를 가슴에 품게 됐다. 대학 예비고사를 치러 고려대 교육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에 점점 물들어갔다. 그렇게 속도의 삶에 찌든 타향살이 30년을 보내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과 네팔 등을 도보여행 한 후 2007년 잘나가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길을 내는 여자’로  제주도로 돌아와 보란 듯이 ‘제주올레’를 전 국민에 각인시켰다.

다음은 <제주의소리>가 선정한 ‘2010 올해의 인물’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과의 인터뷰 요지다. 자신과 제주올레를 향해 스스로 채찍을 들기도 했고, 근거 없는 비난에 대해선 안타까움도 표했다. 

▲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 지난 10월 추자도 올레길 개장행사때 추자도를 걷다 문득 '찰칵'  ⓒ제주의소리

- 2010년 제주올레의 명암이 있을 것 같다.

= 제주올레에 대해 다들 성공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성공은 아직 절반에 불과하다. 갑작스런 열풍으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찾으면서 대중적인 코스에서는 환경훼손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트레킹 매너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단체 관광객까지 찾는 일부 코스에서는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고, 올레 길을 관광상품으로만 인식하는 일부 관료들이 우리가 애써 찾은 자연의 흙길을 막대한 예산을 들여 포장하거나 인위적으로 단장하는 어처구니없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반성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 (사)제주올레와 서명숙 이사장에게 2010년은 어떤 해였나?

=제주올레 길이 지난 3년간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지만 특히 올해는 정말 많은 ‘과분한’ 사랑을 받은 해였고, 전국 지자체에서 100여개가 넘는 ‘길’을 내면서 국내 걷기 열풍의 진원지로서 올레 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집중되는 해였을 뿐 아니라, 세계 유명 트레일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제주올레를 세계인들에게 처음 알리는 뜻 깊은 해였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과분한 관심과 조명을 받은 해였지만 제주올레 사무국 내부적으로는 열악한 재정탓에 쥐꼬리만 한 박봉에도 오직 보람과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는 10명의 상근자들에겐 주변 상황과 피할 수 없는 요청에 귀 기울이다보니 밀려드는 일감과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일정으로 혹독한 한 해였다. 올레 길을 걷는 분들께는 제주의 자연과 제주의 진면목을 느끼게 함으로서 너무나 행복했다거나, 올레길에서 치유를 받았다는 등의 많은 격려를 받았지만 정작 나 자신과 올레 사무국 식구들은 일에 치여 길을 걸어볼 여유가 거의 없었던 해였다. 개인적으로는 영혼이 쫓아오질 못하는 한해였고, 스스로의 철학을 배반한 해이기도 했다.
 
- 속도전에 대한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느린 삶을 지향한 제주올레가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모순’은 아닌가?

= 너무 숨 가쁘게 올레 코스를 내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수긍한다. 아직 올레 길을 내지 못한 제주도의 약 1/4 구간의 마을주민들께는 정말 죄송스럽지만 내년엔 코스 개장 휴식년이랄지, 이런 것을 고민하고 있다. 안되면 최소한 상반기 만이라도 코스 개장을 늦추려고 한다.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고,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혹사시키는 것 같아 나부터도 우선 행복하지 않다. 대신 내년엔 기존 코스를 좀 더 제주답게, 제주다움을 살려내는 일에 에너지를 쏟겠다. 일부 마을에선 기존 코스에 아스팔트 길이 너무 많다면서 마을주민들이 울력을 해서라도 코스를 보완하는데 동참하겠다는 곳도 있다.

그러나 ‘제주올레’를 향한 근거 없는 질시와 과장된 지적에 대해선 분명하게 해명하고 싶다. 그간 제주도의 대부분 개발사업들이 대규모 자연훼손을 동반한 개발들로서 지역주민들에게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한 프로젝트 일색이었지만, 제주올레가 길을 내는 것은 기존 관광지처럼 개발과 파괴의 속도전이 아니지 않나. 물론 올레 길을 내는 것으로 인해 환경훼손이 제로라고 할 수 없지만 거대한 개발로부터 제주의 속살을 지켜내는 방어막 역할을 하고 싶은 ‘대안적’ 사업으로 봐달라. 곶자왈을 직접 걸으면서 곶자왈의 소중함과 가치를 느끼게 하고, 제주의 오름과 해안을 걸으면서 제주자연을 지켜내기 위한 공감대를 넓혀 가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제주가 유네스코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직접 걷게 하고 체험하면서 ‘이래서 트리플 크라운을 받았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여행가 한비야 씨가 최근 곶자왈 올레 길을 걸은 후 제주를 살리는 이같은 소중한 허파가 있는 줄 몰랐다며 곶자왈을 살리는데 자신의 인세 일부를 고정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주민소득과 연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올레 길의 취지다. 올레 길이 지나는 마을에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이 생겨나고, 여관이나 모텔이 올레꾼들이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로 변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행자도 마을도 서로 만족하면서 윈윈하는 '착한 여행', '공정여행'의 패러다임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떠오르는 분들이 있나?

= 우선 올 한해 제주올래를 향해 보여준 올레꾼들의 무한한 사랑과 올레 봉사자들의 헌신에 감사드린다. 특히 올레길에서 만난 올레꾼들에게 후덕한 인심과 친절을 베푼 무수한 익명의 도민들, 바닷가의 해녀들, 밭에 나온 농민, 택시.버스기사분들에 대한 칭찬 이야기가 제주올레 홈페이지를 수놓으면서 더 큰 여흥과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느꼈다. 역시 제주올레길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요소는 제주사람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인 것을. 결국 여행은 풍광보다는 사람의 여운이 더 짙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지난 여름 스위스에서 한달을 걷고 막 돌아온 직후 올레길 21코스 개장행사에서 만난 제주도 노부부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그때 나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감로수 같은 격려를 던져준 노부부의 이야기다. 제주도 토박이인 노부부가 제게 ‘올레길이 아니었으면 제주도에 살면서도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지를 느끼지 못할뻔 했다’는 것이다. 세계 여행도 자주 해봤지만 이처럼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제주도가 이렇게 멋있고 소중한 곳인줄 새삼 알게 돼 제주도를 재발견했다고. 세계트레일 행사때 많은 외국인들이 던진 그 어떤 찬사보다도 난 그 노부부의 감사의 인사가 더 기쁘다. 제주사람이 제주를 재발견하게 됐다는 사실이 그 어떤 것보다 올레지기가 된 나 자신에게 ‘아~ 이 일을 하기 참 잘했구나’ 하는 보람과 확신을 갖게 했다.

아무튼 2010년을 보내면서 제주올레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공항안내를 맡거나 차량봉사를 한다거나, 그 밖에 교육봉사, 재능기부 등 제주올레 각 분야에서 순수 자원봉사를 맡고 계신 분들에게 더욱 감사드린다. 그래서 조촐하지만 제주올레 자원봉사자들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로 오늘(29일) 저녁 7시 서귀포 풍림콘도에서 ‘올레 땡큐 파티’라는 소박한 잔치를 준비했다. 내년 2011년에도 제주올레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치유의 올레길을 가꾸도록 하겠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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