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 무지의 베일을 통한 선택이 도덕적

이집트 증권거래소가 내일 다시 문을 연다. 시민봉기가 시작된 지 이틀 뒤인 1월 27일 무려 16%나 하락한 시점에서 거래소가 문을 닫은 지 3주만이다.

카이로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21살의 대학생 모하메드 압둘라는 시위에 참가했던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위 때문에 이집트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걱정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분은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정부와 기업이 이집트에 만연한 족벌주의에서 벗어나 필요한 인재를 요소에 등용한다면 나라와 경제가 모두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합통신)

파이낸셜 타임즈는 1월 30일자 사설에서 '미국과 유럽이 중동원유의 원활한 공급과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중동의 권력자들을 돈과 무기로 지원해 왔는데 이집트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고 했다. 지난 30년간 중동에서 민주화의 움직임이 일었을 때 미국과 유럽은 '아랍 예외'(Arab exception), 즉 중동지역에서만은 민주주의보다 안정이 우선이라는 인식 하에 이를 못 본 체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2월 5일 머리 기사를 통해 서방의 아랍 예외 정책이 중동인의 서방에 대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데 기여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전제 군주들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반 서방, 반 이스라엘 세력들에 의해 중동의 평화가 깨질 것이라는 협박이 먹혀들었던 것일까. 이번 이집트 사태의 경우에도 아랍 예외가 적용될 뻔 했다.

물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호스니 무바라크는 "내가 물러나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민주화가 공중 납치(hijack)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백악관 내부에 약간의 흔들림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이 이집트 민중의 손을 들어 준 것은 다행이다.

아랍 예외(Arab exception)의 종식

미국은 이제까지 미국의 중동정책의 협조자였던 무바라크를 잃은 대신 중동에서의 도덕적 권위를 오랜만에 회복했다. 이것으로 미국은 중동에서의 새로운 협조자를 얻게 될 것이다.

이집트 혁명의 주체는 인터넷 세대다. 서방이 가장 경계하는 이집트의 야권, 무슬림 형제단도 주역은 자기들이 아니라 젊은 민중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이 조금이라도 친미로 선회한다면 미국에게 이것보다 큰 소득은 없을 것이다.

50년대 이후 국제정치의 무대에서는 '도덕적 상대주의'가 횡행해왔다. 이란의 1953년 친위 쿠데타에 영국과 미국의 정보부가 개입한 것도, 그 이후 팔레비 국왕을 맹목적으로 지원해 이란의 1979년 반 서방 혁명을 초래한 것도 도덕적 상대주의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편이 누군가를 묻는 대신 누가 옳은가를 물었다.

미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는 도덕이 상대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근거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이론을 제시했다.

자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강자인지 약자인지, 자신의 인종, 종교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상정하고 사회계약을 맺을 때 가장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너도 나도 블로거가 되고, 시민기자가 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세상에서야말로 개개인들은 무지의 베일에 싸여 있다. 나는 나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현장에 처해 있는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고민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이해관계는 배제된다.

무지의 베일을 통한 선택은 도덕적이다. 이집트인이 원했던 민주와 자유가 소셜 네트워크의 세계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튀니지의 대졸 청년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사건이 이집트 젊은이들의 봉기를 일깨웠다면 이제 이집트의 상황은 중동 다른 나라들의 젊은 세대들을 일깨울 것이다.

무지의 베일을 통한 선택이 도덕적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세계노동기구 자료에 의하면 2009년 청년 실업률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이 각각 23.7% 및 23.4%로 세계 1위와 2위를 나란히 점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불붙기 쉬운 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소셜 네트워킹의 세계는 이집트와 이집트 이후의 중동의 발전을 주목할 것이다. 높은 교육수준과 이번 일로 더욱 드높아진 국민적 자존심을 가지게 된 이집트부터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앞당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젊은 대학생 압둘라의 희망처럼 새로 문을 여는 증권거래소에도 훈훈한 봄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기사는 내일신문(http://www.naeil.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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