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바람에도 봄이 함께 오듯, 우리가 걷는 걸음걸음서 ‘생명의 가치’ 피어날 것입니다”

봄을 시샘하는 동장군이 위세를 부린 1일. 중산간의 악명 높은 안개가 에워싼 제주4.3평화공원은 습기찬 바람으로 차디찼다.

역사적인 상징성을 지닌 제주4.3평화공원에서 도법스님(전북 지리산 실상사 회주)과 ‘생명평화운동 수행자’들이 100일의 걸음을 시작했다.

2003년 꾸려진 후 생명평화운동을 꾸준히 지속해 온 NGO 생명평화결사(운영위원장 김경일 성공회 신부)와 한국 불교 개혁의 상징적 인물인 도법스님 그리고 생명평화 일꾼인 등불들이 한반도에 ‘생명과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전국 '생명평화탁발순례'에 나섰다. 지난 2004년 4월 시작해 3년간 탁발순례에 나선지 7년 만이다.

2004년 당시 우리나라 전 국토를 탁발 순례했을 때도 이들은 제주를 시작점으로 삼았다.

그만큼 이들에게 제주는 '평화의 상징' 같은 곳이다.

도법스님은 “생명의 가치를 생각하지 못하고 무지에 의해, 이념 광풍에 의해 생명이 무참히 살해 당한 현장이 제주다. 그리고 이곳(제주4.3평화공원)은 아픔을 치유하고 그 아픔을 밑거름으로 생명과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고 빛날 수 있게 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2004년에도 4.3의 진원지인 관덕정에서 순례를 시작해 4.3학살터인 제주국제공항(정뜨르비행장), 백조일손지묘를 찾았다.

도법스님은 “늦었지만 어리석었던 것들에서 눈을 뜨고 다시 한번 인간과 생명의 가치를 직시하고 존중되고 빛나게 해야 한다. 우리 삶이 평화롭게 꽃피도록 ‘삶의 혁명’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추운 바람 속에서도 봄이 오듯 순례자들이 걷는 걸음걸음에서 생명의 가치가 피어날 것”이라며 “순례자들은 생명의 염원을 가득 부여안고 밝고 당당하게 가달라”고 했다.

장정언 제주4.3재단 이사장도 “생명평화탁발순례가 평화의 성지인 제주4.3공원에서 시작돼 기쁘고 감동”이라며 “제주를 벗어나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로 참으로 따뜻한 평화가 퍼지길 기원한다”고 답했다.

권술용 생명평화탁발순례 단장은 이번 ‘100일 순례’가 “100년을 내다보는 순례”라고 밝혔다. 그는 “‘100년 순례’에 앞서 그 계기를 만들기 위해 시작하는 ‘100일 순례’”라며 “생명평화의 새로운 세기를 꿈꾸며 100년의 시간을 두고 생명평화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 단장은 “사대강을 복원하는 일을 준비하고 구제역에 대해서도 가슴 아픈 잘못을 뉘우치는 길이 될 것”이라며 “이번 순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좋은 화두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날 첫 걸음에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함께 했다. 저녁에는 순례단이 강정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지난 2004년 제주순례 때 화두 중 하나가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강정마을 주민들이 변함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데 대해 순례단은 안타까워 했다.

김경일 신부는 “고향을 잃게 된 강정마을 주민들에겐 죄송한 마음이다. 제주도민들이 또 다시 총구 앞에 서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가장 상징적인 제주에서 임진각, DMZ까지 걸어가며 평화의 기원을 다시 심으려 한다. 순례가 끝날 즈음엔 평화가 온전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걸음한걸음 걷겠다”고 말했다.

천주교제주교구 평화특위 임문철 신부도 출정에 앞서 “한반도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다. 이때 종교인의 소임이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소임을 다 하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앉아있기 보다는 일깨우자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며 “희망을 가지고 무엇보다 생명을 사랑하는 도민들이 이땅에서부터 따스한 봄볕 시작되는 생명문화가 북쪽으로 한걸음씩 걸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순례는 7일까지 일주일간 이어간다. 제주를 시작으로 부산 울산 경남 전남.광주 전북 대구 등지를 돌아 DMZ, 인천지역에서 순례를 마무리 하고 ‘100년 순례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