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장감시와 함께 곶자왈 보전 위한 근본책 논의 필요

곶자왈이 신음하고 있다. 지난 6월 한 60대에 의해 2월~3월에 걸쳐 30~50년생 나무 2,900여그루가 파헤쳐지고, 280여톤의 폐·고사목이 불법매립돼 충격을 주더니, 이달 초에는 바로 그 곶자왈내에서 용암석 수백톤이 불법 도채 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곶자왈의 훼손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자, 제주도지사, 남제주군수, 개발센터 이사장 할 것 없이 사과성명을 내고 후속조치를 약속하고 나섰다. 그 내용도 민·관 환경감시단 운영, 신고보상금제 실시, 순찰감시원 채용, 심지어 감시카메라 설치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겠다는 모양새다. 제주도는 조만간 환경단체들을 모아놓고 훼손실태 조사와 민관감시단 운영을 논의할 계획임을 알려오기도 했다.

뒷북 울리는 ‘단속행정’의 한계

문제는 사후약방문격의 이러한 조치들이 주로 현장감시에만 치중함으로써, 정작 곶자왈 보전을 위한 근본책 논의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주도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생태계보전등급 상향 조정’등이 포함돼 있지만, 이는 지난 몇 년간 환경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제주도가 외면해 왔다는 점에서 실제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또한 각종 감시대책도 즉흥적인 ‘단속행정’의 한계만을 또 다시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제대로 된 감시를 위해서라면, 별도의 조례제정이나 ‘제주도환경기본조례’ 같은 기존 조례내 근거마련으로 일상적이고 효과적인 감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감시체계의 제도화’논의로 진행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을 상시감시원으로 위촉하고, 이들이 실제 지역의 환경파수꾼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환경단체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행정이 나서서 지원하는, 즉 지역주민-환경단체-행정의 삼각감시체제의 제도화를 통해 ‘감시의 질’을 확보하는 한편, 이러한 시스템이 비단 곶자왈에 국한됨 없이 지역환경보전을 위해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환경훼손 - 단속·처벌’ 이라는 상투적 순환구조를 넘어선 곶자왈의 가치를 제대로 조명하고 제주도민 누구나가 곶자왈의 가치를 깊이 새기고 소중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치의 확산’정책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의 제도적 보전책이 시급히 선행되어야 한다.

GIS(지리정보시스템) 등급 상향조정이 우선 추진되어야

지금의 곶자왈은 사실상 개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지난 2003년 4월 고시된 현행 GIS(지리정보시스템) 상에서 곶자왈은 지하수 등급 2등급으로 위치지어졌기 때문이다. 현행 GIS 지하수 2등급은 생활하수 발생시설을 설치할 경우 어떤 개발도 사실상 가능케 하고 있으며, 취락이 형성된 경우에는 별도의 처리시설 없이도 30평 규모의 주택신축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 2001년 한라산 리조트 개발로 문제가 됐던 교래곶자왈의 경우도 식물생태계가 평지형 낙엽활엽수림대로 보전가치가 높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시됐고, 지하수 2등급지가 78%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개발예정지로 둔갑한 채 또 다시 사업추진이 이뤄지는 실정이다. 몇해 전 논란이 됐던 세화·송당사업지구의 경우도 이미 97년 “중산간지역 종합조사”에서 지하수 오염 지수가 높게 평가되는 지역으로 분류되어 지질의 투수성 계수가 높고, 이로 인한 빗물의 침투 속도가 매우 빠른 곳으로 개발을 억제해야 할 지역으로 보고하고 있고, 대규모 곶자왈 지역과 숨골지역이 분포할 뿐 아니라, 용암동굴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 뒤늦게 이들을 개발대상지에서 빼내는 노력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지난 2003년 6월 이래로 필자가 속한 참여환경연대와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이러한 사례들을 근거로 현행 GIS상에서 곶자왈 등급 상향을 전면적으로 촉구해 오고 있다. 또한 그 해 6월에는 이러한 GIS등급조정이 현행 특별법 시행조례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라는 점에서 이를 도의회에 공식청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는 등급기준 자체를 조정할 수 는 없는 일이라며 소극적으로 임했고, 도의회 또한 공식 청원한 내용을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재차 집행부로 이송해버리며 책임을 회피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이번의 곶자왈 훼손사례는 곶자왈 보전에 눈감아 왔던 행정과 의회 등의 무사안일이 빚은 필연적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김태환 도정 들어서도 환경단체들의 GIS등급조정을 통한 곶자왈 보전책 마련이 기회때 마다 제기되었으나, 그때마다 도는 “제주도 전체면적의 16%를 차지하는 곶자왈 전체를 1등급으로 보전하는 것은 무리다”라는 입장을 보였을 뿐이다. 물론, 지난해 제주도가 만든 ‘관리보전지역(GIS)운영·관리규칙’상에서 그나마 사업지구에 곶자왈이 포함될 경우 이를 재조사를 통해 보전할 수 있는 최손한의 근거가 생겨나기는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보전책으로서는 너무도 미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제주도는 여타의 사후적 감시대책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개발에 노출돼 있는 곶자왈을 보전하기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현재 도가 말하는 훼손실태 조사가 아닌, 도내 곶자왈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더불어 현행 GIS상에서 곶자왈 지역을 절대보전이 가능한 1등급으로 상향조정하든지, 아니면 지금의 행위제한규정을 2등급까지 확대 강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곶자왈이라도 살려두자

관련학자 등에 의한 조사·연구가 이뤄져왔으나, 제주의 곶자왈의 가치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 9월 KBS 환경스페셜을 통해 방영된 ‘한반도 최후의 상록수림, 제주의 선흘곶’ 부터로 기억한다. 이후 2000년 GIS 도전역 확대 논란, 2001년 수당목장(교래곶자왈) 개발문제 논란, 제민일보를 비롯한 도내 언론의 곶자왈 탐사보도 등으로 이어지면서 곶자왈은 이제 제주의 중요한 가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듯 곶자왈이 갖는 생태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이미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활동, 학술연구 등으로 일반화 되었음에도 제주도의 정책은 오히려 개발을 방조해왔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곶자왈은 상록활엽수림과 각종 생태자원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면서, 한라산과 해안을 잇는 제주의 중요한 생태축 구실을 하고 있다. 이미 제주도는 한라산 국립공원 일대를 제외하고 총연장 3,200km에 달하는 도로개발, 골프장 개발, 해안도로 개설과 바다매립, 펜션 등 각종 건축물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에 ‘한반도 최후의 상록수림’이 아닌, ‘제주도 최후의 생태자원’ 이라 할 곶자왈 마저 각종 불법훼손과 합법적 개발에 의해 유린된다면, 이는 그 자체로 제주도의 ‘가치'를 그대로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제발 곶자왈이라도 살려두자.

[참여환경연대 고유기 사무처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