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 독일편] 35일의 레이스를 마쳤다

▲ 프랑스에 참가했던 친구로부터 온 격려의 이메일 ⓒ안병식

레이스를 하는 동안 프랑스 횡단 대회에서 함께 달렸던 친구들로부터 격려의 이메일도 받았다.

 "Hello Ahn! You are the best and doing very well across Germany so shortly after beeing a Trans Gaule finisher..." -Jibi-

 "Good luck for you to be the first man to end Trans Gaule and Deutschland Lauf the same year...." -Fabrice Viaud-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내가 레이스 하는 걸 매일 체크하고 있었다. 프랑스 대회가 끝나고 바로 다시 독일 횡단 레이스에 참가하는 게 외국인들에게도 신기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친구의 이메일을 보고 프랑스와 독일 횡단 레이스를 같은 해에 완주한 건 내가 처음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이렇게 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은 나에게 너무 소중한 선물이 된다.

▲ 출발과 피니쉬 라인에는 매일 날짜가 기록 되어 있다. ⓒ안병식

 대회 11일째.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는 89km였지만 큰 언덕과 산을 오르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었고 다치고 지쳐있는 참가자들 모두에게 너무 힘든 날이었다. 오늘 따라 바람도 많이 불었고 언덕과 내리막을 오르는 코스가 많아 무리하고 나니 그동안 괜찮아지던 무릎도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저녁노을이 지고 날이 어두워지고 난 후에야 피니쉬 라인에 도착했다.

“Ahn! 대단해!”,“너는 해냈어!"

그동안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너는 할 수 있다’고 격려의 응원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 독일의 시골 마을을 달리는 참가자들 ⓒ안병식

▲ ⓒ안병식

▲ 가족과 함께 참가한 한 러너가 아이손을 잡고 피니쉬 라인으로 가는 모습 ⓒ안병식

오늘은 3명의 참가자가 레이스를 포기했다. 34명의 참가자 중 이제 16명만이 남아있었다. 많이 힘든 시간들이지만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모두에게 희미한 추억으로 기억될 지금의 순간들.

 이제 나도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난 달리기를 멈추고 한동안 쉬고만 싶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이제 지쳤어요.’ ‘그만 달려야겠어요.’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잠시 쉬면서 나에게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나의 달리기에 대해. 나의 인생에 대해.....’

 내가 달리고 있는 이곳은 어디인지? 난 지금 어디까지 달려왔는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 이제 더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하는지?

▲ 중국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맥주와 중국요리 ⓒ안병식
 
 이제 5일 후면 17일 동안의 레이스는 끝이 난다. 며칠 남지 않은 일정에 참가자들에게는 웃음과 여유도 찾을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중국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매일 빵과 음료로 배를 채우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쌀~밥인지 모르겠다.

 한국을 떠나 온지도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힘든 레이스 때문에 무엇을 먹고 싶었는지도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오늘 만큼은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마음 것 먹고 싶었다. ‘다친 무릎이 악화되지나 않을까?’ 라는 걱정으로 맥주 한 잔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었던 시간들, 오늘 만큼은 맥주 한잔의 여유도 가지고 싶었다.

“여러분! 우리의 피니쉬를 위하여!” 대회 책임자인 독일의 인고가 모두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물론 많이 다친 환자들은 오늘도 맥주 대신 환타로 대신했지만 우린 이미 축배의 건배를 하고 있었다.

▲ 체크포인트에서 ⓒ안병식

“Ahn! 이제 5일 밖에 안 남았다.” 독일 대회 내내 ‘짝꿍’이었던 루디거가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는 조금만 참으면 된다.”
“건배!”
“.......”
“루디거! 너는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울트라 런닝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레이스가 힘들 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루는 나는 매우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날은 매우 천천히 레이스를 즐기며 달렸다. 그 이후 내 몸은 다시 괜찮아졌다. 달리기는 재미있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달리는 그 순간을 즐겨라!“
“너의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냐?”
“나는 나의 아내와 15살 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은 여기에 올 수 없었지만 대회 기간 내내 나에게 격려의 이메일을 보냈다. 나의 가족들은 나의 새로운 도전에 기뻐하고 나에게 힘을 준다. 이런 나의 가족들을 많이 사랑한다.”

▲ 독일횡단 1,000km 지점에 표시된 거리 표시 ⓒ안병식

▲ 코스를 표시해 놓은 노란 화살표. 참가자들은 화살표를 보며 달린다. ⓒ안병식

 Civil engineer(토목기사)로 일하고 있는 독일의 루디거는 이번 횡단레이스를 하는 내내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고마운 친구였다. ‘몸은 괜찮아?‘, ‘무릎은 어때?‘ 매일 친구처럼 옆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30년 동안 달리기를 해왔고 이 대회를 위해 한 달에 1,000km이상의 훈련을 했다는 그는 이제 다시 또 새로운 대회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루디거! 레이스를 하는 동안 너의 배려와 친절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는 너에게 다시 한 번 건배를 청하고 싶다. 너의 달리기와 당신의 가족들을 위하여..‘
“건배!“

 어느새 레이스는 1,000km를 넘어 종반으로 가고 있었다. 독일 남부지방은 알프스 산맥이 있어 산을 오르고 내리는 코스가 많았다. 대회 마지막 날은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이라 코스는 힘들었지만 도로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트레일 코스였다. 매일 같은 아스팔트 도로 위를 반복해 달리다 보면 발과 무릎에 충격도 많이 가고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는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도로가 아닌 흙과 돌, 풀, 낙엽을 밟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 ⓒ안병식

▲ 1,000km를 넘게 달리며 낡아버린 운동화와 양말 ⓒ안병식

▲ 숙소가 마련된 체육관 풍경(얼음찜질하는 참가자와 체크포인트에서참가자들이 특별 음식을 넣어두는 바구니) ⓒ안병식

 프랑스와 독일 횡단 레이스를 하는 동안 많은 각양각색의 수많은 길들을 지났다. 자동차가 달리는 고속도로 옆을 지나기도 했고 한적한 시골마을 길도 지났다. 자전거가 다니는 길, 기차가 다니는 길, 옥수수, 포도밭 사이의 작은 길들도 지났고 유채꽃이 활짝 피어 있는 길을 따라 달리기도 했다.

 때론 포장되지 않은 트레일 코스를 따라 산을 오르기도 했다. ‘인생의 길’ 처럼 갈림길에서는 선택의 순간도 있었고 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길을 잃고 헤매이게도 만들었다. 길 위에서 걷고 달리고 서있고 모든 것은 길 위에서 시작하고 길 위에서 끝이 났다. 이제 그 길 위에서 닳고 닳은 낡은 양말과 신발만이 그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마지막 체크포인트를 지나면서 내가 달려온 거리들을 생각해봤다. 2343, 2344, 2345km.. 이제 몇 분 후면 한 달을 넘게 달린 나의 달리기는 끝이 난다. 내 몸은 더 가벼워져 가고 있었고 발놀림은 더욱 빨라져 갔다. 그리고 35일 동안의 프랑스와 독일 횡단 레이스는 끝이 날 것이다.

▲ 독일 남부 알프스 지방의 풍경 ⓒ안병식

▲ ⓒ안병식

 한 달 넘게 달리며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고 때론 비, 안개, 뜨거운 태양이 함께 하기도 했다. 고요한 침묵을 깨는 발자국 소리, 햇빛이 비치는 날은 늘 함께 했던 내 그림자, 동이트기 전 새벽별을 바라보며 깜깜한 어둠속을 달리기고 했다. 붉게 물든 석양노을과 비가 그치고 난 후의 무지개를 보며 달리기도 했으며 2시간을 넘게 하루살이와 모기 때와 싸우며 달리적도 있었다.

 달리면서 느낀 행복했던 순간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던 순간들, 외로움과 슬픔의 기억들, 고통의 순간들, 모든 것에 감사하고픈 순간들... 달리면서 느낀 매일 매일의 감정들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기도 했다.

▲ 독일횡단을 하는 필자 ⓒ안병식

▲ 독일횡단을 하는 필자 ⓒ안병식

 ‘나는 달려야 한다‘라며 매일 간절하게 애원했던 시간들, 몸이 아프고 난 후에야 내가 얼마나 달리고 싶었는지.. 달릴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달리기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행복을 가져오는지 다시 느끼는 시간들이 되었다. 길 위에 서 있고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들. 이제 35일 동안의 나의 달리기는 끝이 났지만 지금 이 순간 난 다시 새로운 꿈들을 꾼다.  / 안병식

* 대회 협찬 :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JDC, 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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