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위에 군림하려 하나, 결국은 압도된다
인간은 자연위에 군림하려 하나, 결국은 압도된다
  • 김홍구 (-)
  • 승인 2011.03.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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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이 김홍구, 오름속으로] 영아리

인간이 자연에 압도당한다하면 어떤 느낌일까.  오래 전 산벌른내 중심에 서있는 방애오름에 오르고서 제주자연의 광대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자연이 풍기는 거대한 힘에 압도당했지만 그 느낌은 지금도 가슴에 맺혀 잊지를 못한다.

영아리, 이 오름에 오르면 그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거대한 한라산이 좌우에 오름이라는 장수를 거느리고 떡 버티고 앉아 그 아래 자연에 귀의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마저도 넉넉하게 품어 앉아 있다. 그리고  영아리가 제주도 서쪽 한가운데서 그 한라산을 향해 경배하듯 서 있다.

▲ 영아리에서 바라본 한라산 방향 ⓒ김홍구
영험스런 산, 이것이 영아리를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다.  이곳에서 객기를 부리거나 소리지르거나 자연에 순응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구름과 안개가 끼어 뭇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  하늘은 한 사람의 어진 이를 내어  뭇사람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려 하나  세상은 도리어 잘난 것을 뽐냄으로써 남의 모자라는 곳만 들춰내고 있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생각하며 한동안 한라산으로 눈을 돌린다.

영아리라는 이름이 붙은 오름은  3곳이 있다.  물이 괴어 있지 않다하여 붙혀진 표선면의 여문영아리, 물이 고여  있다하여 붙혀진 남원읍의 물영아리,  그리고 안덕면에 위치한 영아리,  예전에는 이 오름을 오르기가 간단치가 않았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찾아가곤 한다.  오름을 가고자 하는 열정에 오름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오름을 오르는데 복수초(福壽草)와 박새가 막 꽃봉오리와 잎을 내밀고 있다.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긴 겨울의 끝에서 눈을 뚫고 올라오는 노란 복수초를 보면서 그 빛깔이 상징하듯 복되고 오래 살기를 바라며 영원한 행복으로 가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원하지 않았을까.  박새는  무리를 지어서 자라는데 식물체에 강한 독성이 있어 주의를 해야한다.

▲ 복수초와 박새 ⓒ김홍구
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분화구를 가진 영아리는 해발 693m,  비고 93m 이다.  북쪽 능선이 주봉이다.  팻말은 남쪽 능선이 정상이라고 써 있지만 북쪽이 조금 더 높다.  북에서 남으로 휘돌아가는 능선은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한다.  대자연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돈이를 감싸고 있는 골프장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옅은 연무가 있는 것이 아쉽기는 해도  그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의 장엄함과 오름들은 오름몽생이를 압도한다.

빈네오름, 다래오름, 큰바리메, 족은바리메, 이돈이, 큰노꼬메를 비롯하여 삼형제오름과 돌오름까지 이어지는 오름의 맥은 아무리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아직은 긴겨울의 끝자락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들은 한낱 티끌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한라산을 바라보다  한라산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이렇듯 영아리는 호젓하지만 우람하게 다가오는 봄을 맞으며 서있다.

▲ 영아리 북동쪽 방향에서 바라본 오름들 ⓒ김홍구
 
그 서쪽으로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오름들을 보라.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원물오름, 감낭오름, 도너리, 족은대비오름, 당오름, 정물오름, 금오름, 돔박이, 고수치, 왕이메,  새별오름,  북돌아진오름, 폭낭오름등등  열거하기도 숨이 차다.  

▲ 영아리에서 바라본 서쪽방향 오름군락들 ⓒ김홍구
남쪽정상의 바위를 배경삼아 한라산을 바라본다.  끝없이 펼쳐진 너븐드르, 그야말로 무변광야다.  바위에 기대어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광대하고 섬세한  제주의 대자연을 누가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 봄을 맞이하는 영아리에도 봄바람이 분다. 

정상에서의 거대한 바위는 영아리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줄까, 아니 인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자연의 존엄성을 안다면 긴시간의 시공을 넘어 존재한 영아리에게 진정 가슴으로 고마워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연위에 인간이 군림하자는 뜻이다.  오름을 오른다는 것은 자연을 밟고 지배하자는 것이리라.  인간은 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복도 아니고 오르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자연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 주체가 되며 인간은 그저 자연에 잠시 머물다 그대로 남겨두고  나오는 행위를 말한다.  인간은 자연이 존재하여만 살고 그 자연은 인간에게 고맙게 많은 혜택을 준다.

▲ 영아리 남쪽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김홍구
영아리는 송이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오름이 그렇다.  물빠짐이 좋아  오름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송이는 밀집력이 약해  풀밭으로 덥혀 있지 않고 드러나 있을 경우에는 비에 휩쓸려 가거나 무너져 내리며 아주 빠른 시간에 훼손된다.  영아리 남쪽정상부근 송이층이 많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준다. 

▲ 남쪽정상의 바위와 드러난 송이 ⓒ김홍구
영아리는 가까이에 4개의 오름으로 보호(?) 받고 있다.  동으로는 어오름, 남으로는 마보기,  북으로는 이돈이, 서쪽으로는 하늬보기가 영아리를 호위하고 있다.  이  4개의 오름은 소소리바람이 부는 이 계절에  마을의 거욱대 같은 역할을 하는 오름이다.  거욱대란  마을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풍수지리설에 따라 기운이 허하다고 믿는 곳에 액운을 막으려고 세운 돌탑을 말한다.  영아리는 마치  찬바람의 기운을 막으려는 양  하늬바람을 막는 하늬보기,
마파람을 막는 마보기가 있는 것이 참으로 이채롭다. 

영아리에서 바라보는 남쪽은 저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이 좋다.  가까이  어오름과  마보기, 골른오름을  비롯하여 녹하지악, 모라이, 우보오름,  군산,  다래오름,  산방산,  절울이,  바굼지, 모슬개오름, 가시오름과 마라도, 가파도, 형제섬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말이 없다.  이제 긴 겨울을 이겨내고 새롭게 싹을 틔우고자 봄은 그렇게 노력을 했다.  땅속에 서 가지위에서 하늘에서 바람까지 모두가 봄을 만들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지만 그들의  법칙에 의하여 조금씩 변해간다.  자연스런 변화,  즉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변화가 아닌 그들만의 변화가 좋다. 

▲ 영아리에서 바라본 남쪽방향 오름군락 ⓒ김홍구
영아리는 말이 없어도 인간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이제 봄이 가까이 왔다.  어디서 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고  어디선가 봄을 알리는 빛이 느껴질 것이다.  아직 활짝 피지 않았지만 노랑빛의 복수초가  눈에 어른 거린다.  오름에 들어가며 발끝과 마음의 눈으로 봄을 느껴보자.

▲ 영아리에서 바라본 북쪽능선과 한라산 방향 ⓒ김홍구

▲ 영아리에서 바라본 서쪽방향 오름 ⓒ김홍구

▲ 영아리에서 바라본 한라산 방향 ⓒ김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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