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63주년] 최상돈 제주4.3 63주년 전야제 예술총감독
올해 첫 실내 공연..."의도가 가슴으로 전해지길" 바람

▲ 최상돈 제주4.3 63주년 전야제 예술총감독.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세련된 것은 지양합니다. 너저분하고 투박해 보이겠죠. 이 무대는 스크린이 아닌 ‘그림’이고, TV가 아닌 ‘마당’입니다”

오는 2일 오후 6시30분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제주4.3 63주년 전야제에 대해 최상돈 예술총감독은 이같이 설명했다.

최 감독은 빗질 한 번 해본 적 없었을 듯한 곱슬 머리를 모로 기울이며 특유의 울림있는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질문이 포괄적일 땐 그 곱슬머리 속에서 곰곰 곱씹는 소리가 났다.

4.3의 대표곡 격인 ‘아기동백꽃의 노래’를 만든 가수기도 한 그는 2006년부터 2년동안 기타 하나 메고 4.3 유적지를 찾아다녔었다. 지금도 “생각 날 때마다 간다”는 그는 4.3에 대해서만은 누구보다 진지하다.

4.3 당일 열리는 ‘위령제’와는 별도로 열리는 ‘전야제’는 4.3행사 중에서도 남다른 위상을 갖는다. 전야제 무대는 그야말로 4.3을 고민해 온 제주 예술인들의 작업이 집약된 공간이다.

제주 예술인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무대다. 미술 작가들이 모여들어 한라산 걸게 그림을 그리고 스티로폼에 물감으로 초가와 감나무를 그린다. 겨울이 배경일 경우 동백이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다시 예술인들의 손으로 ‘뚝딱’ 거리며 못질 하고 톱질 해 무대 위에 세워진다.

제주 문학도 결합한다. 제주 시(詩)는 공연 이야기의 큰 줄기가 된다. 물론 4.3을 노래한 것들이다. 올해엔 김석교의 ‘어떤 귀향’이다. 지난해엔 아예 제주시인 김수열이 진행까지 맡았었다.

제주의 정체성을 담아내려 노력해온 놀이패, 마당극패들이 무대에 선다. 특히 놀이패 한라산은 고집스럽게 거의 제주 정체성을 담는 작품들만 해왔다. 소박하고 투박해도 그걸 제주의 멋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노력을 들여 만든 무대다. 그래서 세련되지 않고, 너저분해 보인다. TV가 아닌 마당, 화면이 아닌 그림을 지향한다”

▲ 간드락 소극장 앞 최 감독의 작업공간에서 한 스탭이 전야제 무대 설치물 작업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예술가가 기획하고 연출하다 보니 대중성에 대해 문제제기 받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며 최 감독은 '대중성'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그렇다고 이벤트 공연, 기획사에 4.3 전야제 행사를 맡길 수 없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정말 힘들다. 하지만 기획사에 맡긴다면 주제의식을 놓칠 수 있다”

대중성을 고민하며 올해 처음 '인디밴드 공연'을 선보인다고 했다. 홍대 앞에서 인기있는 권우유, 루싸이트 토끼, 유발이, 제주 인디가수 피리 등이 출연한다. 전야제 무대에 정식으로 오르진 않지만 사전 홍보무대로 1일 5시 제주시 산지천 분수대, 2일 오후 2시 시청 어울림마당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인디밴드의 초심에 저항정신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썩 어울리는 무대가 아닐까.

최 감독은 “언젠가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같은 음악이 정식으로 4.3 전야제 무대에 설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4.3이 공론화된 게 불과 20여년전. 아직 전야제에는 ‘축제’의 흥겨움보단 ‘위령’의 무게감이 더 한다. 3년 전부터 전야제 총감독을 맡아온 최 감독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최 감독은 “지금은 4.3의 모든 행사가 ‘위령’ 성격이 강하다. 대중적으로 4.3을 알리는 행사로 탈바꿈 하고자 해도 4.3의 성격 규명이 완벽히 되지 않은 상황에선 어렵다”고 말했다.

4.3이 자랑스런 역사가 됐을 때 비로소 ‘축제’는 시작된다는 것이다.

“도민들은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쓴 거다. 나라가 갈라서고 이북에 가서 일하는 친지를 못 만날 것 같은데, 이를 두려워하니까 5.10선거를 반대했던 거다. 자존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던 거다. 유격대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민의 희생이 마치 좌우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것처럼 말한다. 나는 4.3이 정의로운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도민들은 자존을 위해 당당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 4.3에 대해서만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매섭지만, 웃을 땐 영락없이 사람 좋은 인상이 드러난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올 전야제의 가장 큰 변화는 실외에서 실내로 옮겨간 것.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된다. 전야제가 열리는 매해 4월 2일 저녁은 꽃샘추위가 어김없이 기승을 부렸었다. 특히 나이가 연로한 유족들이 자리를 지키지 못했었다. 때문에 장소를 옮기자는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날씨 걱정을 덜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열린 마당’이라는 취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 게다가 객석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고 최 감독은 걱정했다.

이번 전야제의 주제는 ‘재회, 그 해 가을날의 약속’이다. 김석교 시인의 ‘어떤 귀향’이 주제시로 큰 줄기가 된다.

4.3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날 어떤 영혼의 이야기다. 구천을 헤매던 영혼이 고향 마을 어귀에서 지내다 사월 제삿날이 되어 집으로 간다. 하지만 곧 되돌아 온다. 토벌대의 영혼이 있었기 때문. 그는 생각한다. ‘아직 내가 기쁜 마음으로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제삿밥을 먹을 정도는 아니구나’.

여기서 주인공 ‘영혼’은 이번 무대에선 일본, 형무소, 대마도 등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이상으로4.3희생자들이라고 했다. 최 감독은 “신고돼 4.3평화공원에 위패가 걸려있는 것 외에도 추정 희생자가 3만 이상으로 얘기되고 있다. 아직도 명예회복이 덜 된 영혼들이 있다. 이는 끝없이 해야할 이야기인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느냐고 물었다. “왜 봄날을 그린 건지, 왜 겨울에는 봄이 그리웠는지 느꼈으면 한다. 그해 겨울 눈밭에서 지내다 보니 얼마나 집에 가고 싶고 봄이 그리웠겠냐. 관객들이 왜 출연자가 ‘아, 목동아’를 부르는지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는지 그 의도가 가슴으로 전해졌으면 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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