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소설이 20여 년 간 내게 던진 질문

80년대 말, 피가 끓던 시절이었다. 술자리에 조정래, 황석영의 소설과 고은, 박노해의 시가 빠지지 않았다. 너무나 먹먹해서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라, 민중문학의 색채가 짙은 작품들이 가져다주는 한 줄기 빛에서 위안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피가 끓던 시절에도 박범신의 소설은 민중문학 이상으로 내 원초적 감성을 자극했다. 예리한 관찰력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감수성과, 제도적인 것이든 저항적인 것이든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사회 모순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에서 난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20여년이 넘어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삶의 이정표가 되어준 작품은 ‘그들은 그렇게 잊었다(부제 ; 흉기3)’다. 청년기에 작품이 남겨준  감동을 가슴속에 등불처럼 품고 살아왔다.

▲ 박범신의 소설
 

소설의 주인공 상우는 4.19 당시 고등학생 1학년 신분으로 시위에 참가했다가 무릎에 유탄을 맞아 불구가 되었다. 시위 현장에서 상우가 다리에 유탄을 맞고 다른 한쪽 다리에 의지해 몸을 피하려고 할 때, 옆에는 그의 친구 서민영이 총상을 입어 쓰러져 있었다. 그 때 위험을 무릅쓰고 서민영을 껴안고 일으키려 했던 이가 있었다. 상우와 민영이 다니던 학교의 3학년 선배이자 학생회장이었던 임지운이었다.

임지운이 서민영을 일으키려 하지만, 서민영은 ‘눈부셔’라는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상우는 민영의 유언이 되어버린 '눈부셔'라는 비명의 의미를 60년도 4월의 찬란한 하늘, 자유와 정의를 향한 젊은이들의 푸른 이상을 찬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상우는 학교를 졸업한 후 우편배달부가 되었다. 그러다가 별 이유도 없이 권고사직을 당했다. 실직자가 된 상우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가 만난 친구들은 모두가 세속에 물들어 있었다. 그들의 가슴과 뇌는 모두 금속화되어 있었고, 모두들 ‘최악의 불경기’를 이기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상우가 만난 많은 이들 중에 60년대의 찬란한 이상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상우가 수유리에 있는 서민영의 묘지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임지운과 재회했다. 상우는 임지운으로부터 고향에서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임지운이야말로 자신들 세대 중에 유일하게 60년대의 이상을 기억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상우는 재취업에 거듭 실패하고는 임지운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상우는 세태와 부당하게 타협하기를 거부하면서 고향에서 가축을 키우고 있는 임지훈이라면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임지훈이 살고 있는 상공리로 가는 도중 상우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김덕팔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김덕팔 역시 임지운을 찾아 상공리로 간다고 했는데, 그의 오토바이에는 쇠꼬챙이 같은 물건 하나가 실려 있었다. 김덕팔은 이 물건을 ‘수술도구’라고 했다.

김덕팔과 상우가 장애를 입은 상우의 다리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4.19는 보통사람들 기억 속에서 깨끗이 지워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다가?”

“육공년도 4월이었지요. 유탄에 무릎을 맞았어요.”

“총에? 사냥을 갔었구먼?”

“육공년도 4월이었다니까요?”

“엽총이었나?”

“육공년도......,”

많은 이들이 60년도의 이상을 잊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할수록 임지운에 대한 상우의 연민과 신뢰가 깊어만 갔다.

▲ 벛꽃 사이로 보이는 4월의 하늘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 소설의 주인공 상우는 친구 민영이 4.19 당시 총격을 받고 죽어갈 때 남긴 '눈부셔'라는 외마디 비명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산다.

한편, 상우와 김덕팔이 나루터에서 상공리로 가는 배에 오를 무렵 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임지운의 아들 ‘민영’을 만났다. 상우는 임지훈이 아들의 이름을 '민영'이라고 지은 것이 4.19 당시 총탄에 맞아 죽은 서민영의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다. 민영은 귀머거리였지만 수려한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김덕팔을 향해 강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 김덕팔은 상우에게 민영이 김덕팔이 가지고 다니는 쇠꼬챙이로 스스로 한쪽 귀를 찔러 귀머거리가 된 사실을 알려줬다.

상우가 김덕팔과 함께 찾아간 임지운의 목장은 군부대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목장이라고 하기에는 슬레이트 지붕에 축사 몇 동뿐인 황량한 곳에서 임지운은 군부대에서 나오는 짬밥으로 개들을 키우고 있었다.

상우는 임지운이 소나 돼지가 아닌 개를 키우는 것에 적이 놀랐는데, 상우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공포와도 같은 침묵 속에서 유령처럼 서 있는 개들의 모습이었다. 개들은 악취가 진동하는 축사 안에서 짖지도 못하고 사람에게 경계의 눈빛조차 보내지 못하고 축 처진 채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형님"

"자네가 예까지 올 줄은 몰랐네."

"어떻게 된거냐구요. 저 개들은 지금 살아있습니까?"

상우가 흥분하며 임지운에게 따져 묻자, 김덕팔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살아있고말고. 단지 짖지 못할 뿐이야. 내가 이 녀석들을 수술했지."

"수술이라고요?"

"이걸로 말이야"

김덕팔은 어린 개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쇠꼬챙이로 개들의 고막을 터뜨리고 항생제를 주사한 사실을 자랑삼아 말했다. 60년대 4월에 들었던 총성 한발이 상우의 귀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임지운은 지나간 세월을 통해 정의로운 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고통스럽게 항변했다. 그리고 개의 고막을 터트리게 된 것은 개 짖는 소리가 장병들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면서 임지운은 개를 키우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며 아픈 마음을 드러냈다. 민영이 귀머거리가 된 것도 자신이 개들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 자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날 밤 상우는 임지운과 술을 마시고 밤이 깊어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무렵 비명소리가 상우의 잠을 깨웠다. 깨어보니 옆방에서 잠을 자던 김덕팔이 검붉은 피가 쏟아지는 귀를 움켜잡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영민이 쇠꼬챙이로 김덕팔의 귀를 찌른 것이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 앞에서 당시 여고생들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비운으로 생을 마감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우리는 당시 흘린 눈물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다시 4월이 돌아왔다.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도 못한 1960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운으로 생을 마감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의 죽음 앞에 슬퍼하며 흘리던 그 눈물을 기억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되묻는다.

그리고 노전 대통령을 통해 출세의 길을 걸었던 그 많던 '친노'들에게 묻고자 한다. 그들은 과연 2002년 12월에 품었던 맑은 이상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혹시 소설의 부제가 말하듯 서로 흉기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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