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 대학생아카데미] (9) 허영호 LG이노텍 사장"퇴출 대상에서 세계 10대 부품전문기업으로..."

“아이폰 카메라는 한국 기술로 만들어 졌습니다”

아이폰 카메라를 LG이노텍 기술로 만들었다며 허영호(59) LG이노텍 사장은 자부심을 내비쳤다.

지금은 매출액 4조1035억원에 이르는 세계 10대 전자부품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10여년전 LG이노텍은 처량한 신세였다. IMF 당시엔 퇴출 대상 기업으로 분류되며 벼랑끝으로 내몰린다.

그가 사장을 맡은 2002년 이후 LG이노텍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쾌속항해를 이어간다. 10여년간 연구개발(R&D)에 전력 투구한 결과였다. 전 세계 TV와 휴대폰, 반도체에 LG이노텍 부품을 쓰지 않은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10년째 LG이노텍을 이끌며 대표적인 '장수 CEO'로 꼽히게 된 이유였다.

제주시 회천이 고향인 허영호 LG이노텍 사장은 3일 제주대학교에서 열린 ‘JDC 대학생아카데미’에서 고향 후배들에게 수십 년간 세계적 기업의 CEO로 우뚝 설 수 있던 비결과 그동안의 일화들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 허영호 LG이노텍 사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허 사장은 제주 오현고 졸업 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1977년 금상사에 입사한 뒤 LG마이크론을 거쳐 지금의 LG그룹 최대 부품회사인 LG이노텍을 이끌고 있다.

허 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꿈이 TV를 널리 보급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만 해도 12인치짜리 흑백 TV를 봤었다. 마을의 5~60가구 중에 TV를 갖고 있는 집은 2~3군데 였다. 저녁이면 그 집 마당에 전부 모이는 거다. 연속극 드라마 ‘여로’를 봤던 기억도 있다. 그때 처음 시골 구석구석에 TV가 보급되는 데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 허영호 LG이노텍 사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1977년 TV로 유명했던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취직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첫 직장 생활을 서울이 아닌 구미에서 시작했던 허 사장은 “지방에서 살면서도 서울에서처럼 걸음걸이를 빨리하는 버릇을 들면서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습관은 여전하다. 그보다 한참 젊은 사람들과 등산을 해도 뒤로 쳐지는 일이 없다.

일본 파견근무 당시 일화에선 일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부품 주문이 누락될 경우가 가끔 있다. 제품 생산에 들어가려다가도 부품 하나가 없어서 생산 중단되기도 한다. 긴급 물품이 생기면 나도 앉아만 있을 순 없다. 100원짜리 부품이 없어서 400달러짜리 TV 수출이 안 된다면 편하지 않지 않나. 짐 싸서 도쿄에 있는 공항터미널로 간다.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면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에게 부품을 서울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열 사람이면 다섯 사람은 한국사람이다. 다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어렵게 부탁을 들어준다”

첫 발령지 구미에서 시작해 광주, 파주, 일본, 서울까지. 지방과 해외 근무를 거치며 겪은 어려움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었다. 허 사장만의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도 눈길을 끌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회사는 퇴출 대상 기업 즉, 있어선 안 되는 회사였기에 참 어려웠다. 모든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전남 광주 공장에서 혼자 숙식을 하는 데 어느 날 집에 와서 불을 켜니 천장이 하얬다. 불면증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불면증이란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스트레스 양의 차이라는 생각이었다. 선택은 두 가지였다. 되면 되고 안 되면 말고 식의 생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낮추거나,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늘리는 것이었다. 당장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1시간30분, 저녁 퇴근 후 1시간 정도를 걸었다. 7월초부터 시작해 12월 말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 3주 지나니 잠이 오기 시작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퇴출 대상’ 기업을 ‘세계 10대 부품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킨 비결도 공개됐다. 허 사장은 “‘왜 우리가 이렇게 헤매지’란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아무나 붙들고 이유를 묻고 다녔다. 세 가지로 압축됐다. 첫째, 사장이 자주 바뀐다. 둘째, 투자가 안 된다. 셋째, 교육이 안 되고 있다,였다. 이 세 가지를 사장의 약속이자 회사의 목표로 정했다. 사장이 바뀌어도 잘 되고, 투자도 잘 되고, 교육 많이 하는 회사를 만들자는 것이다”고 소개했다.

이는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다. 투자액이 2003년 260억 원에서 2010년 1조5000억 원으로 늘었고 회사 전략과 관련된 교육도 숱하게 진행됐다.

▲ 허영호 LG이노텍 사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목표 설정에서부터 직원들을 참여시켰던 점이 ‘꿈을 현실로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허 사장은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면서 “아무리 좋은 목표라도 사장 혼자의 목표라면 의미가 없다. 목표 설정 때도 많은 사람들을 참여 시켰다. 정해진 목표도 액자 속 전시물로 그치게 하지 않고 공유된 목표를 만들었다”고 했다.

문 닫을 위기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로 덤벼들었다는 허 사장의 회고다. 허 사장은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이겨보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구조조정도 없었다. 이게 매년 매출액 증가로 돌아왔다. 첫해 3천억에서 다음해 4천억, 5천억으로 꾸준히 늘었다”고 말했다.

2005년 목표는 1조원 달성이었다. “1970년에 생긴 회사가 2003년엔 사람 나이로 30대 초중반이 된다. 이때 우리 회사의 모습은 어땠으면 좋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겁도 없이 ‘1조원’이었다. 그때만해도 상징적인 목표였던 것을 해냈다”

허 사장은 가장 좋아하는 말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를 꼽았다. 지난날 겪었던 난관이 그가 이룬 성공에 치른 값이라 여기기 때문일 터. 그는 고향 후배들에게도 대가 없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선택의 자격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택과 목표설정, 실행, 자신감 고양 등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뢰가 형성 돼야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사장은 무엇보다 ‘실행’을 중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목표 설정도 실행의 준비단계에 불과하다. 그 정도로 실행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어야 한다. 실제 움직이고 실행해서 성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만 목표가 살아 숨 쉬게 된다”고 말한다.

LG이노텍은 이제 광주에서 파주까지, 해외의 유럽과 인도네시아 등지에 지사를 갖고 있다. 그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돌진중이다. 허 사장은 “2015년 글로벌 탑(TOP) 5가 되려 한다. 매출 10조원을 달성하면 전 세계 5위 안에 들게 된다. 사장 혼자서 해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조직의 힘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는 칭기즈 칸의 이야기를 되새긴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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