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대학생아카데미] '아시아의 빌게이츠' 스티브 김성공신화 뒷얘기 풀어내..."가난이 나를 키웠다" 회고

“가장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크게 성공하기 어렵고 게다가 주류사회로 들어가기는 더욱 어려운 땅 미국. 특히 아시아인이라면 그 장벽은 더 높아진다.

때문에 27살의 한 대한민국 청년이 맨주먹으로 미국 땅에 뛰어들어 30년 만에 IT계에서 20억불의 수익을 올린 이야기는 ‘성공신화’로 불리고 있다.

그 주인공 스티브김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이 17일 오후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린 ‘JDC 대학생 아카데미’ 여덟 번째 강사로 나섰다. 젊은 날에 누구보다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대학 청년들에게 할 말이 많은듯 보였다.

▲ 스티브 김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김 이사장은 “가난이 나를 이 자리에 서게했다”며 입을 열었다.

“부모가 돈이 많아 사업 자금을 대줬다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저 아저씨가 성공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도 들지 않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김 이사장은 어린 나이부터 물지게를 이고 날라야 했다. 중학교 때는 누나의 교복을 고쳐서 입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소년은 주눅 들지 않았다. 그의 곁엔 가난하지만 남을 돕고 베푸는 배려심 깊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어렸을 땐 물려받은 유산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철이 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에게 받은 유산이 많았다. 그중 가장 큰 유산이 바로 ‘가난’이다. 성장 과정에서 많은 유혹을 만나게 된다. 여유가 있었다면 유혹에 빠지기 쉬웠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고생을 보면서 자식된 도리로 그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드리는 게 효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다. 그게 바로 ‘헝그리 마인드(Hungry Mind)’다. 돈 있는 사람이 헝그리 마인드를 갖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게다가 스티브김은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집념의 사나이기도 했다. 27살에 맨몸으로 미국으로 간 것이 그렇다. 그는 이국땅에서 1시간 3천원짜리 아르바이트를 10시간씩 했다. “다리에서 피가 내려와 끊어지는 고통을 겪었다”고 김 이사장은 회상했다. 한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던 김 이사장은 “평생을 이렇게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어떻게든 공부해서 엔지니어가 돼야 겠다”고 생각한다.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생활이 시작된다.

단 3년 만에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꿈의 엔지니어가 됐다. 김 이사장은 “그때처럼 공부 잘 될 때가 없었다. 절실했으니까. 이것만이 살 길이라 생각했었다. 이게 바로 헝그리 마인드”라면서 “공부가 안 될 땐 과감히 책을 덮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든 자기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기업에 엔지니어로 일했다. 엉뚱하게도 그는 ‘모든게 천천히 움직이고 일을 재촉하는 이도 없는’ 대기업이 불만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엔지니어 기술을 남들보다 많이 배워서 좀 더 빨리 돈을 벌고 승진하고 싶었다. 게다가 조직이 크다보니 내가 하는 일이 조직 전체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더 버틸 수 없어 그는 대기업을 박차고 중소기업을 찾아간다.

김 이사장은 “이게 인생의 터닝포인트(Turning Point)‘였다”고 말했다. “작은 회사였기에 제품의 생산에서 영업, 제품 설명, 수리까지 내가 도맡아야 했다. 나는 그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을 넘어 없어선 안 될 사람이었다. 이것이 중요한 메시지다. 돈을 벌면 성공했다고 하지만 돈 보다 중요한 게 있다. 사회에 나갔을 때 한 조직에서 없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것, 인정을 받는 것이 행복한 거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일이 너무 많아 행복했다”는 ‘워커홀릭(Workaholic.일 중독자)’ 김 이사장은 경쟁사와 제품을 비교해 좀 더 나은 시제품 개발에까지 나서게 된다. 1억을 모아 차고에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게 바로 그가 처음 창업한 회사 ‘파이버먹스(Fibermux)’다. 6년 만인 1991년에 5400만 달러에 매각했다.

이어 1993년 컴퓨터 네트워킹 시스템 회사 ‘자일랜(Xylan)'을 세운다. 이 회사는 1996년 나스닥 상장에 이어 1999년 프랑스 알카텍과 인수 합병을 추진 20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때부터 김 이사장은 ’아시아의 빌 게이츠‘로 불리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누구도 부럽지 않은 화려한 생활이 펼쳐졌다. 예술인들을 후원하기 위한 파티를 성대하게 열며 명사들을 사귀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화들을 맘껏 즐겼다. 

김 이사장은 돌연 호화로운 삶을 접고 고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몰입할 수 있는 삶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 무엇보다 그는 “미국에서 번 돈을 한국을 위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그가 3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 청소년 지원을 위한 ‘꿈.희망.미래 재단’을 세운 이유다.

그는 성공을 거머쥔 이후 얻었던 가장 큰 교훈을 “가장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단을 통해 조선족 청년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한 1300여명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또 북한 곳곳을 직접 돌아보고 나서 빵 두유 공장과 버스, 선박수리소, 비료공장을 짓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한 사람이 많은 역경을 뚫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김 이사장은 최근 ‘꿈희망미래 리더십센터’의 문을 열기도 했다. 대학생, CEO, 일반인 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꿈을 찾고 보다 당당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도 나누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라며 “이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목적 있는 삶”을 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 처한 환경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열등한 환경에서도 깨달음만 있다면 우수한 환경의 학생보다 훨씬 행복하고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7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호기심', 가슴 뛰는 일을 찾아가는 '열정', 능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절실한 목표', 나의 존재가 인정받기 위한 '자존감', 사람을 설득하고 마음을 얻어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한 '호감도', 배움을 실천하는 '습관화', 영어 등 외국어 능력보다 더 중요한 '소통능력'이다.

▲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김 이사장은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리는 어느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왔고 자격증은 몇 개 땄고 외국어 능력은 얼마나 되는 등의 스펙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방황했으며 때론 시련도 있었지만 어떻게 이를 헤쳐 왔는지, 이런 게 스토리다. 내 삶의 갖가지 어려운 환경을 어떻게 거쳐왔는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취업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대학강단인 만큼 진로에 대한 과감한 제언도 했다. “중소기업을 찾아가 거기서 최고가 되라”는 것. 김 이사장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재미없는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 버스와 전철에 끼이는 거다. 그런데선 여러분을 대체할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여러분들이 과감하게 중소기업에 갔으면 한다. 열심히 해서 인정 받고 없어선 안 되는 존재가 돼라. 그러면, 돈을 더 달라면 준다.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 15년~20년 후엔 뭘 하고 살까를 생각해라”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