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의 황우석 교수 논란을 보면서

네티즌들이 주도하는 ‘황우석 교수 구하기’ 열풍이 매우 위험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불법 거래된 난자와 연구원의 난자가 사용되었다는 MBC 피디수첩의 보도가 나간 후 네티즌들의 광기 어린 분노가 극을 달리고 있다.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앞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온라인상에는 피디수첩 광고주 리스트를 만들어 항의를 독려하고 있다. 실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네티즌들의 항의 등쌀에 못 이겨 이 프로의 광고주 12개 업체 중 11개가 이미 광고를 중단했거나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기자들이 자유언론 수호를 외치다 유신독재권력의 압력으로 광고가 무더기로 취소되어 백지 광고가 나간 일은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집단 항의로 광고가 취소된 일은 한국의 언론사에 없던 일이다.

네티즌들은 그들의 행위를 애국의 결단으로 포장한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모두 매국으로 간주하여 돌팔매질을 가하고 있다. 그들의 행위는 과연 애국으로 칭송될만한 일인가?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그들의 집단적 분노와 항의는 애국주의가 아니라, 극단적인 국수주의이며 위험한 전체주의 논리의 오류에 깊이 빠져있다. 언론은 진실보다 국익에 우선해야 한다고 그들은 강변한다. 국민개개인의 알권리보다는 전체국가이익이 우선한다는 논리다. 국익을 놓고 진실게임을 하자는 건 아니다.

국익과 진실은 양립 불가능한 가치일까.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익을 손상하는 매국적 행위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진실이 밝혀져 설사 국가 이미지가 타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 장기적으론 국가 이미지를 드높이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왜 모르는가. 그래서 언론은 국익과 진실이 대립할 땐 기꺼이 진실의 편에 서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정도다. 이번 피디수첩에 관한 한 문화방송은 언론의 정도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미국의 침략전쟁인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국익을 내세워 진실과 정의에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 우리가 얻고 있는 국익이 무엇인가.

개인의 인권과 생명의 가치보다도 국가가 우월하다는 전체주의는 일본의 군국주의나 독일의 나치즘과 같은 파시즘적인 발상이다. 강제 징용과 징병을 하고 아시아 강토를 군화발로 유린하면서도, 무고한 사람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어 떼죽음을 시키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국익을 앞장세웠다. 진실과 정의에 바탕을 둘 때라야 국익은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힘을 갖는 법이다. 그렇지 않은 국익은 대부분 모호한 추상으로 귀결되어 불온한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황우석 교수는 연구과정에서 자발적 기증이 아닌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생명윤리의 국제적 규정을 명백히 어겼다.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진 난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입을 다물었고, 몇 번씩이나 말을 바꾸어 진실을 호도했다. 카드 빚에 쫓기거나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절박한 처지에서 여성들은 장기간에 걸쳐 과배란 주사를 맞고, 고통을 겪으며 그들의 몸에서 적출된 난자가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모른 채, 그러한 시술 행위가 가져올 위험성이나 후유증에 대해서 어떠한 정보도 제공 받지 못한 채 브로커를 통해 단돈 150만원에 난자를 팔았다.

천민자본주의에서 볼 수 있는 인간 물신주의의 극치이다. 그럼에도 황 교수는 그들을 ‘숭고한 여성’ 또는 ‘성스러운 여성’이란 수사를 동원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간의 몸이나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품화되거나 도구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편윤리의 준칙이다.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칸트는 말했다.

또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황 박사의 연구가 난치병 치료에 기여하고 그래서 노벨상을 탈 지고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연구과정상의 수단이 그 목적을 정당화 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식민지 지배자나 독재 권력의 폭력에 대한 대항폭력과 같은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한한다.

이제 국익과 진실 사이에서 합리적인 균형을 찾아야 한다. 진실을 외면한 맹목적인 애국주의로서는 한국의 과학이 국제 사회의 폭넓은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희생시킨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국익은 무엇인가? 생명을 구제한다면서 인권과 생명의 경외심을 저버린 저열한 윤리의식을 가진 나라라는 지구촌 가족들의 싸늘한 시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금의 ‘황우석 신화’는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대한민국 성장 신화의 판박이처럼 보인다. 신화는 합리를 내쫓고, 이성을 부정하는 우상이요 온당치 못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제 국가도 황우석 개인도, 네티즌들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파생되는 윤리적 문제는 도외시한 채, 찬양일색으로 황우석 띄우기에 급급했던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 비해, 뒤 늦었지만 돌아올 비난을 무릅쓰고 진실을 보도한 피디수첩은 언론의 본연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그 방송사 광고주들에게 광고 취소 압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담당 피디의 가족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해 ‘가족들을 다 죽여라’고 아우성치는 것은 비이성적 집단 광기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몰매를 가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협박도 마다 않는 언동은 나치시대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일이 배아복제 연구를 포함해 생명과학기술전반에 걸쳐 연구자들과 국민 모두의 윤리 지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일은 그간 브레이크 없이 앞만 보고 탄탄대로를 내달려온 황우석표 벤츠에 약간 브레이크가 걸린 데 지나지 않는다.

이 기회에 고급 차의 성능만을 과신해 오직 앞만 주시하고 가속 페달만을 밟을 게 아니라, 때때로 룸밀러도 보고, 백밀러도 보면서 적당한 속도 조절로 안전운행에 최선을 다해주길 황우석 사단에게 주문하고 싶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