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24) ‘공신정’과 제주측후소 신축 下

*상편 “유서 깊은 명승지에 대형 청사 짓는다고?”에서 이어집니다.

문화재 보존과 복원을 위해 이전한 강원지방기상청

2005년 11월 18일 강원지방기상청은 42억4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2007년 12월까지 강릉시 용강동 63-2번지 현 청사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2층 연면적 720평 규모의 신청사를 신축할 계획을 발표한다. 강원지방기상청은 이를 위해 그해 연말까지 현 청사 주변 부지 882.6㎡를 추가로 매입하고 2006년 실시설계를 거쳐 착공에 들어갈 계획을 밝힌다.

강원지방기상청은 1911년 신설된 강릉측후소를 전신으로 시작된 유서 깊은 기상청이었다. 1926년 개청 이래 82년간 사용해 온 용강동 청사는 그동안 노후하고 협소해 첨단 기상장비 설치에 어려움이 많았고, 직원들의 근무와 기상정보를 제공받으려는 민원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이 발표가 있고 나서 사업은 난항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강원지방기상청 청사 신축 계획이 강릉시가 추진 중인 <임영관·관아복원 및 전통문화 공원 조성사업>과 맞물리면서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강릉시가 사적공원 조성계획을 최초 수립한 것이 지난 1999년인데, 7년이 넘도록 강원지방기상청과 이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한 적이 없었던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강원지방기상청 부지가 ‘사적 제388호 임영관지’에서 직선거리로 500m 내에 위치해 청사를 신축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영향평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강릉시 문화재위원회의 ‘문화재보존영향검토’ 과정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3명 전원이 “문화재 복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청사 신축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는데, 당시 제도적으로는 전문위원 3인 이상의 반대의견이 제출되면, ‘문화재현상변경허가 신청’을 문화재청에 의뢰하게 되어 있었다. 결국 강원지방기상청은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신청’을 제출하게 된다.(강원일보)

 

▲ 강릉시의 <임영관·관아복원 및 전통문화 공원 조성사업> 조감도.

강원지방기상청은 현 부지의 신청사 신축의 배경으로 일제강점기인 1911년 강릉측후소가 설치된 이후 현 청사에서 약 100년간 기상관측을 해 왔기 때문에, 기상자료의 연속성 확보 차원에서 현 부지의 청사신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강릉 도심에 위치해 있음에도 개발제한으로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어 강릉지역 내에서 기상관측의 최적지라는 점을 들어 이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문화재청 심의결과 ‘조건부 신축’ 방안이 제시될 경우 타협의 여지가 있지만, ‘신축불가’ 결정이 내려질 경우 타 도시로 청사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내세웠다. 청사 이전을 전제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문화재청은 2006년 10월 25일자로 현상변경불허 처분을 내렸고, 그에 따라 현 부지 내의 청사신축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강원지방기상청은 강릉시와 부지를 맞교환하는 형태로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강릉과학산업단지’ 내에 새 청사 부지를 선정하고 청사신축계획을 변경하기로 한다. 신청사는 2007년 6월 착공하여 2008년 4월 17일 준공식을 가졌다.

건축규모는 부지면적 1만5584㎡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축연면적 2011㎡ 규모로 지어졌으며, 홍보관과 민원실도 갖추었다. 결국 청사 신축을 고수하려는 배수의 진까지 쳤던 강원지방기상청은 <임영관·관아복원 및 전통문화 공원 조성사업>을 위해 ‘강릉과학산업단지’ 내로 이전 신축하였다. 문화재 복원의 중요성에 대한 문화재담당 부처와 강릉시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이 강릉지방기상청의 이전을 도모하게 한 것이었다.

강릉 임영관지 일대 사적공원 조성사업은 강릉시가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핵심문화재 사업인데, 강릉시 역시 대부분의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이 일제에 의해 헐리어 전통문화경관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강릉시는 전통문화경관의 복원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임영관·관아 복원에 이어 강릉우체국, KBS강릉방송국, 강원지방기상청 등이 이전한 부지를 포함한 사적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복원된 강릉객사와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내내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었다. 최근 인근의 각종 기관들이 이전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복원된 강릉객사와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년)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내내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었다. 최근 인근의 각종 기관들이 이전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강릉 임영관 관아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강릉부의 지방행정을 관장하던 읍치로서 영동지역의 수부(首府) 역할을 했던 공간이었으나, 일제에 의해 임영관을 비롯한 중요건물이 훼손되고,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과 칠사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만 남아있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에 강릉시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전통문화도시 강릉의 역사적 정체성을 찾고, 역사 및 문화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자 단계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2006년까지 임영관 내 객사의 정청인 전대청을 비롯한 중대청, 동대청, 서헌 등 1단계 복원사업을 완료했다. 또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에 걸쳐 총사업비 54억 원을 투입해 아문, 동헌, 별당, 의운루 등 공해건물과 주변정비 사업 등 관아복원사업을 추진해온 것이다.

강릉의 경우, 이러한 전통문화유산을 복원 정비하는 데 있어, 전통경관복원을 타 사업에 우선하는 문화유산인식이 강조된 것이다. 이러한 강릉의 사례를 볼 때, 현재 제주지방기상청도 기 수립된 계획이 이미 추진 중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새로운 계획이 가능할 것이다.

나오며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조성된 근대적 기관들은, 과거 조선 정부의 중요경관 또는 시설 등 왕조의 권위를 나타내는 건축물들을 지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위치가 선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주축이 되어 철저하게 전국에 걸쳐 시도한 한반도의 조선왕조와 한민족의 전통 지우기의 산물이다. 즉, 조선왕조의 국립교육기관이었던 향교에는 소위 ‘천황의 신민’인 ‘국민’을 교육하는 ‘국민학교’를, 왕조의 통치기관인 읍치의 관아들에는 총독부의 지배기관인 행정청사를 배치하는 식이 그러하다.

또한 외침에 방비하기 위한 성곽들은 해체해 그 존재 자체를 지워 버렸다. 그러므로 일제의 근대식(?) 건축조성과 도시개발 및 경관정책은 500년 전통의 조선경관의 해체와 일본식 경관의 대치를 통한 민족적 기억의 단절이었다. 즉, 그들의 도시개조는 정교하고 집요하게 계획된 식민지문화정책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과거의 옛 건물들을 복원하고 유산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근대의 초입을 식민지로 겪어야 했던 아픈 과거에 대한 복원이기도 하며, 스스로 자기의 경관을 회복해 경관적․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기도 하다.

현재 공신정터의 아래인 단애석축은 그 서측에 바로 면하여 3층, 4층의 건축물들이 들어서서 병풍바위들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으나, 현장을 답사해 본 결과 현재에도 앞의 건축물들을 걷어내면 과거 김정 목사가 찬탄해 마지않았던 병풍바위가 그 당시대로는 아닐지라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중인문, 삼천서당, 결승정, 공신정, 북성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의 경관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현재 탐라광장조성사업으로 사업대상지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중인문터가 발굴된다면, 이 일대의 조선시대 전체경관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탐라광장사업과 맞물려서도 전통문화경관이 복원되어 산지천변의 핵심적인 경관지로 활용된다면 문화관광자원으로도 손색이 없는 유산을 복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신정’은 향후 제주성의 복원에 있어서 반드시 복원되어야 할 주요 누정이며, 공신정을 중심으로 향후 이 단애지역 전체의 경관을 복원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비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제주지방기상청에서 추진 중인 공신정터 위에 세워질 3층 규모의 새 기상청 건물은 공신정의 복원을 가로막는 일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명승지였던 공신정 인근의 전체경관 복원을 영원히 훼철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 제주시의 발주에 의해 (사)제주역사문화진흥원에서 제주성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연구용역을 통해 제주성과 관련된 성내 현존 유적 및 멸실 유적들의 보존과 복원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수립되는 상황에서, 공신정터에 현대식 대형건축물인 기상청의 신관이 들어선다는 것은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앞서 강릉 임영관 복원과 맞물려 강원지방기상청 이전문제가 결국, 전통문화유산 복원으로 귀결되었던 점을 상기하여, 제주도나 제주시의 문화재담당부서는 물론, 온 도민들이 관심을 모아 기상청 신관조성과 제주시 최고의 전통경관지 복원의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