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좌절 딛고 LG 입단한 제주 토종 황목치승 “이 악물고 뛰렵니다”

▲ 11일 <제주의소리>를 찾은 LG 황목치승이 올 시즌 선전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악착같이 하렵니다”

대한민국 야구를 이끌 대들보에서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좌절의 늪에 빠졌다가 프로야구 LG트윈스 입단과 함께 제2의 인생을 펼치게 된 제주 출신 유격수 황목치승(28)의 각오는 대단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눈빛과 표정에선 간절한 열망이 묻어났다.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헝그리 정신’이 읽혀졌다. 

내년 1월 스프링캠프에 참가하기 앞서 개인 훈련차 12일 상경하는 그가 11일 인사차 <제주의소리>를 찾아 프로무대에서의 포부와 의지를 밝혔다.  

<제주의소리>는 8월25일('제주출신 동갑내기 야구선수의 새로운 도전')과 10월2일('아름다운 도전 제주 황목치승 LG트윈스 입단'), 11월3일('황목치승 이어 오두철도 프로야구 입단 기적') 등 세 차례에 걸쳐 순탄치 않은 그의 야구인생을 소개했다.

소개했듯이 황목치승은 어릴적 대단한 유망주였다. 제주남초등학교 5학년 때 ‘절친’ 오두철(28.포수.기아 타이거즈 입단)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 그는 제주제일중 3학년 때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아시아대회(서울)에서 대표팀의 6전 전승 우승을 이끌었다.

해외에서 곧바로 러브콜이 왔다. 일본 교토한국고등학교(현 국토국제고) 야구부 김건박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어 일본 대학야구 명문 아세아대학에 스카우트 됐다.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일본 프로야구는 물론,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도 멀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버렸다. 대학 전지훈련 도중 상대 주자의 스파이크에 무릎을 치여 인대 2개가 끊어졌다. 2번의 수술과 재활이 이어졌고, 2년 후 복귀했지만,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부상 후 2년을 쉬면서 몇 번이나 그만 둘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큰 돈을 들여 일본까지 보내줬는데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 황목행철씨는 제주에서 목수일을 하면서 번 돈의 대부분을 일본에 있는 아들의 뒷바라지에 썼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의 꿈을 접은 그가 졸업 후 선택한 곳은 사회야구인팀 ‘세가사미’. 이후 군 입대를 위해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무릎 부상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2012년 제주도 사회인야구팀 ‘삼다수’에서 몸을 만들며 절치부심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같은해 9월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에 입단했다.

‘명장’의 조련을 받은 그는 예전의 기량을 서서히 되찾았고,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다. 올시즌에는 1번타자 겸 유격수로 활약하며 교류경기에서 타율 0.259, 15타점, 25득점, 16도루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 LG 황목치승은 <제주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거포와는 거리가 멀지만, 톱타자에게 필수적인 ‘호타준족’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스스로도 ‘발’과 수비 만큼은 자신있다고 했다. LG 스타우터의 눈에 들어온 건 어쩌면 당연했다.

LG 입단 확정 소식이 알려진 것은 10일2일. 꿈만 같았다.

“드디어 내가 프로야구 선수가 됐구나. 너무나 기뻤습니다”

입단 당시 기분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황목치승은 그 공을 제2의 야구인생을 펼치게 해 준 고양원더스와 김성근 감독에게 온전히 돌렸다.

야망이 없으랴마는, 밑바닥 야구 인생을 경험해선지 황목치승은 당장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했다. 

이 악물고 노력해서 1군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게 1차 목표. 그 다음은 ‘야구명가’ LG에서 붙박이 유격수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또 그 다음에는? 이 대목에서 황목치승은 빙그레 웃고 말았다.

1군이냐 2군이냐, 그리고 구체적인 포지션은 스프링캠프 이후 결정된다고 했다.  

개인 훈련에선 체력 보강과 함께 기본기부터 다시 가다듬을 요량이다. “프로는 체력, 기술 등 모든 것의 레벨을 올려놓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황목치승의 별명은 ‘치타’. 어렸을 때부터 움직임이 빠르다고 해서 붙여졌다.

김 감독이 최근 자신이 뽑은 '2014 새얼굴’ 4명중 1명으로 황목치승을 지목하면서  “작지만(173cm) 배트와 수비 모두 굉장히 좋다. 다리도 빠르다”고 기대를 드러낸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황목치승에게 고향 제주는 나고 자란 곳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생의 전부인 야구와 인연을 맺어준 곳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는 아직도 야구에 있어선 불모지나 다름없다. 황목치승은 이게 늘 가슴이 아팠다.

“장담하기엔 이르지만,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엔 제주에서 초등학교나 중학교 지도자를 할 생각입니다. 그게 안된다 해도 제주 야구 발전을 위해 어떻게든 힘껏 돕겠습니다”

황목치승은 오봉옥 전 삼성 투수, 현역 최고의 포수 강민호, 고원준 롯데 투수에 이어 프로무대에 진출한 몇 안되는 제주 토종 선수다. 눈빛이 뿜어내는 간절한 열망은 그가 이 계보를 잇게 될 날이 머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프로야구의 심장부, 잠실벌을 누빌 ‘제주산 치타’의 역동적인 활약상이 기대된다. <제주의소리>

<김성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