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함께 하며 민족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2004년 3월 30일. 제주출신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징역 7년의 선고를 받았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결과였다. 소위 북한의 정치국원을 역임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심지어는 "그의 '경계인'이란 표현이 냉철한 현실인식이 기반이 돼야 할 평화통일에 오히려 장애가 됐다"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사과와 반성의 뜻이 없다"며 중형 선고의 이유까지 제시했다.

행정부 검찰의 구형이 아닌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이었다. 입이 저절로 열려 이내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닫혀지지 않는다. 사법부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또 다른 그룹이다. 좁게는 대한민국의, 더 나아가 지구촌 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해야할 책무가 그들에게는 있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의 판단은 항상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며 정말 '냉철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향후 몇 년, 몇 십년 후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역사적 고민을 사법부는 이번 판결에서 배제시켰다. 거기다가 '범죄'의 차원이 아닌 '양심'의 문제에 대해 사과 및 반성을 강요하는 퇴행적 가치 판단이 아직도 유효하다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필자는 이 순간 이후,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화석화(化石化)하였다."라고 단언한다.

사실 검찰의 구형에 대해서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공안검찰'의 성격은 진정한 의미의 대한민국 발전과는 그간 궤를 같이 하지 않아 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실정법의 기계적 적용을 일삼는 '공안검찰'에 대해서는 과거 분단체제의 부산물 또는 독재정권의 시녀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신주처럼 떠받드는 '국가보안법'은 지구촌 양심적 지식인의 판단에 의하면 폐기되어야 마땅할 대표적 '악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직무'는 언젠가 청산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왔던 터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니 가련하다고까지 여겨왔다. 시대가 그들의 임무와 역할을 새롭게 부여할 때까지 그들은 스스로를 개혁할 줄 모르는 존재들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분단체제·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또 다른 희생자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법부의 판결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할 잣대를 사법부는 아직도 준비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통해 그 잘잘못을 분석하며 진정 우리가 나가야 할 미래에 대해 늘 고민한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우리 민족 내부의 모순은 어떻게 표출될 것이며 이를 현명하게 극복해야 할 방안.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통일된 우리 민족이 추구해야 할 생존 전략. 그를 위해서 과거에는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자세와 인식이 필요한지를 늘 고민하고 준비한다.

비단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 뿐 아니라 행정과 사법 등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준비해야 한다. 한 예로 사법부와 역사학의 만남, 재계와 철학의 만남 등 다양한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사소통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판결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간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결과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사법부에 촉구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으시오. 미래를 내다보세요. 진화하는 인류 사회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사법부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라오. 진정한 평화통일은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입장 공감합니다. 그러면서 그 방법론의 하나로 양쪽을 아우르는 시각을 갖는 것 중요하지 않습니까. 좀 더 쉽게 객관적 시각이 필요한 거죠. 남쪽은 북쪽의 속내, 북쪽은 남쪽의 내심만 따지고 서로 티격태격해왔던 역사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방 후 남북한 정권 담당자들은 오히려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고 정권 안보에만 급급했다는 역사적 평가까지도 나오고 있죠.

'양심'에 입각한 '학문'의 세계에 대해, 폐기돼야 마땅할 '실정법' 차원의 속 좁은 적용과 판결은 애시당초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검찰과 국정원에 일갈하시오. 화석화한 대한민국 사법부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어서 충심으로 쓴소리를 보냅니다. 대오각성하고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법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금번 송두율 교수 판결과 관련하여 사법부 내에서는 광범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사법부가 여타 분야와 '대화의 광장' 마련 등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고 선도하는 부서로 재탄생 하길 바란다. 한편, 이의 추진과는 별도로 앞으로 있을 2심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 사법부가 민족과 함께 하며 민족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과시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2004. 3. 3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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