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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3시 제주국제공항 1층 국내선 입국장 내부에서 보건당국이 실시간으로 입도객들의 발열을 체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현장] 공항-항만 뚫리면 전파 예측불허...상시적 검역체제 구축해야

9일 오후 3시 제주국제공항 1층 국내선 입국장 내부. 항공기가 활주로로 내려앉자 수백여명의 관광객들이 밀물처럼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도착 게이트로 이어지는 진입로 2곳에 설치된 발열감시용 카메라가 쉴새없이 방문객들의 체열을 확인했다. 모니터를 지켜보는 간호사와 보검담당 공무원의 눈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 순간 체열 38.5도가 넘는 어린이 승객이 있다는 소식에 현장에 있던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게이트를 가로질렀다. 다행히 메르스 감염 증상과는 관계가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3시간 뒤 제주항 연안여객선터미널 앞 2부두 계류장. 승객 200여명을 실은 제주~완도간 블루나래호에서 관광객들이 줄지어 제주 땅을 밟았다.

평소에는 계류장 바로 앞 2부두 출입구를 통해 곧바로 제주항을 빠져나가지만 이날은 항만 관계자들이 출입문 자체를 막아섰다.

승객들은 부두를 따라 200여m를 돌아 연안여객선터미널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어김없이 열감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7부두 국제여객선터미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제주도가 ‘메르스 청정지역’ 사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0일 현재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광역자치단체는 제주를 포함해 대구, 경북, 광주, 전남 등 5곳 뿐이다.

격리 대상자가 전국적으로 증가하면서 제주도는 언제든 방역망이 뚫릴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다른 지역에서 공항과 항만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루에 제주 땅을 밟는 도민과 관광객은 4만여명에 이른다. 보름에 한번꼴로 제주도 전체 인구와 맞먹는 방문객이 제주에 들어온다는 계산이다. 이중 95%가량이 관광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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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3시 제주국제공항 1층 국내선 입국장 내부에서 보건당국이 실시간으로 입도객들의 발열을 체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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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3시 제주국제공항 1층 국내선 입국장 내부에서 보건당국이 실시간으로 입도객들의 발열을 체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도가 공항과 항만 검역에 사활을 건 것도 이 때문이다. 당초 공항과 항만은 메르스 ‘주의’ 단계에 맞춰 국제선 입국장에서만 발열검사를 할뿐 국내선은 검사를 하지 않았다.

검역이 강화됐지만 빈틈도 있었다. 제주공항의 경우 담당자 출근시간 등을 이유로 오전 6시부터 7시 사이에는 발염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항에서는 일반 승객들만 검사를 할 뿐 차량에 탑승해 곧바로 여객선에 오르내리는 자동화물기사에 대한 검사는 없었다.

제주도는 뒤늦게 이 사실을 인지하고 검사인원 2명을 항만에 투입했지만 몰려드는 화물차량을 감당하지 못해 단 몇 시간만에 현장에서 철수하는 등 허점을 드러냈다.

국립제주검역원의 정원은 12명. 3명을 충원했지만 이마저 인천공항이 더 시급하다며 한명의 직원이 파견을 나갔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곳곳에서 검역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제주의 경우 입도객은 무조건 항공기와 여객선 등 다수가 밀폐된 공간에 머무르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관광객이라면 여러 관광지를 찾아 수많은 사람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메르스 감염 의심자나 확진자가 검역 단계에서 누락된다면 단 하루 제주관광에 나선 것만으로도 수천, 수만명과 접촉할 수 있는 특수 환경이다.

지난 4일 친구와 함께 제주를 찾은 여성 관광객 A(31)씨의 경우 아버지가 메르스 감염 확진자였다. 제주도는 A씨가 입도한지 하루가 지난 5일에서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보건당국은 곧바로 소재파악에 나섰고 역학조사반을 보내 A씨를 거점병원 격리병실에 입원시켰다. 1, 2차 조사 결과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확진자였다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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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6시 제주항 2부두에서 여객선이 도착하자 승객들이 2부두 입구가 아닌 연안여객선터미널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제주도는 전 승객들의 발열 체크를 위해 입구를 터미널 내부로 일원화 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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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6시 제주항 2부두에서 여객선이 도착하자 승객들이 2부두 입구가 아닌 연안여객선터미널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제주도는 전 승객들의 발열 체크를 위해 입구를 터미널 내부로 일원화 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당시 항공기에 탑승했던 승객은 물론 이들의 동선을 모두 파악해 접촉자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는 관광지라는 특성상 A씨와 접촉한 사람을 추리는 것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

지정학적 위치로 방문객들의 출발지가 다양한 것도 특징이다. 때문에 메르스 뿐만 아니라 제2, 제3의 바이러스 유입에 대비한 상시 검역 대비 태세가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빠른 대응을 위해서는 관계 기관간 협조가 필수지만 곳곳에서 구멍이 뚫렸다.

지난 6일 메르스를 의심한 20대 여성 환자가 제주시내 병원을 찾았지만 국가지정격리병상인 제주대병원으로 가라는 권유에 보건소 구급차가 아닌 친구의 자가용을 이용해 이동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일에는 2차 감염자가 발생한 서울 모 병원 방문자인 10대 여고생이 보건당국에서 메르스 감염 검사를 받았지만 교육당국은 SNS에 떠돌던 소문을 통해서야 이 사실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메르스뿐 아니라 뎅기열과 라임병 등 이름도 생소한 신종 감염병에 대비한 인력충원과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응태세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성진 국립제주검역소장은 “콜레라 등 과거 전염병은 점차 사라지고 신종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며 “기후변화 등에 따른 검역 대책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 소장은 “즉각적인 대비를 위해 평소 유관기관간 훈련을 철저히 하고 전문인력 충원도 이뤄져야 한다”며 “제주검역소의 경우 정원이 12명에 불과해 증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윤희 제주한라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국내 전파된 메르스가 변종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각 병원마다 전파 차단에 노력하는 만큼 조만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 과장은 “7월부터는 해외여행객을 통해 말라리아나 댕기열 등이 전파될 수 있다”며 “신종 질병을 막기위해 손씻기 등을 잘하고 감염 환자와의 접촉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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