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플러스 제주] 김원석 PD, “작품 혹평 속에 시청자와의 공감 필요성 절감”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현실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큰 호평을 받은 드라마 ‘미생’은 수차례에 걸친 실패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드라마 미생을 연출한 김원석 CJ E&M PD는 “여러 작품으로 실패를 맛보면서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임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최고의 지식콘서트 ‘테크플러스 제주(Tech+) 2015’(테크플러스)가 ‘기운생동(氣韻生動)-제주를 깨우다’라는 주제로 10일 개최됐다.
2013년부터 매해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테크플러스는 올해 건축, 벤처기업, 방송, 제조업 등 각 분야에서 주목받는 명사들이 나섰다. 여기에는 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을 드라마로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김원석 PD도 포함됐다.
2012년 1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웹툰으로 연재된 만화 미생(작품확인: 클릭)은 대한민국 샐러리맨 문화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철학적 성찰로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다른 만화들과 비교하면 텁텁하게 느껴질 만큼 스토리와 작화는 담백하지만 작품이 전달하는 '사람'에 대한 메시지는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불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바둑용어인 제목 미생(未生)은 꿈을 펴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들을 대변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2014년 10월부터 3개월간 케이블채널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생은 케이블이란 인프라 한계를 뛰어넘는 평균 시청률 8.2%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CF시장을 휩쓸었고 ‘미생물’이라는 코믹 패러디 작품까지 정식으로 편성되며 만화 원작자가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미생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올해 열린 제51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에서 연출상(김원석), 남자최우수연기상(이성민), 남자신인연기상(임시완) 등 3관왕을 휩쓸었다.
많은 이들은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원작 만화의 기조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다. 사무직을 소재로 한 많은 드라마 작품들이 러브스토리, 지나친 극적 요소로 버무려져 정작 직장문화는 뒤편으로 밀려난 경향이 강했지만, 드라마 미생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에 집중한 원작에 최대한 충실한 결과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됐다.
김 PD는 이날 강연에서 자신이 미생을 만나기 전까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음악전문 케이블채널 엠넷(Mnet)에서 방송 생활을 시작한 이후 화려한 편집 기술, 그래픽 활용 능력으로 승승장구 했지만 어느 순간 연달아 세 작품(SF드라마 GOD, 슈퍼스타K 더 비기닝쇼, 몬스타)을 속된 말로 ‘말아먹으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
김 PD는 “그 당시에는 대본에 충실하지 못한 채 그래픽이나 외형적인 면에 집중했고, 내가 만족하면 시청자도 만족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드라마의 중심은 인기 많은 배우가 아닌 탄탄한 대본이라는 점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과정을 겪고 만난 것이 미생이다.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좋은 연기·촬영·대본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김 PD가 미생을 제작하는 과정은 그 전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원작자와 자주 만나며 의견을 교환했고, 작가진도 여러 명으로 구성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산해냈다. 시청자들이 남긴 댓글이나 SNS의견도 분석하면서 시놉시스에 반영했다. 작품을 대해 달라진 자세는 김 PD의 커리어에 큰 획을 남긴 영광을 가져다줬다.
김 PD는 “저는 미생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미생을 통해 앞으로 제 인생에 있어서 사람을 소중히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자신이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을 소개했다. 주인공 신입사원 장그래에게 미안해하는 상사 오상식 과장과 그를 덤덤한 듯 따뜻하게 위로하는 장그래의 대화다.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 파리 뒤를 쫓으면 변소 주변이나 어슬렁거릴거고 꿀벌 뒤를 쫓으면 꽃밭을 함께 거닐게 된다잖아.” (오상식)
“그래서 저는 꽃밭을 걷고 있는가 봅니다.” (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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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