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존재 이유는 실로 다양하다. 단순한 교육 공급 기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선 그 지역사회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존재 유무 자체가 인구와 생활권을 바꿔 놓기도 한다. 최근 '제주시내 중·고교 이전 재배치'가 교육계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러한 학교의 존재 이유와 맞물려있다. 도내 중·고교는 대부분 역사가 30년 이상 됐다. 물론 신생학교는 예외다. 그동안 평면적 도시 확산이 진행되면서 기존 도심은 공동화로 학생들이 빠져나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거꾸로 특정 신규 개발 지구엔 중·고교가 집중되면서 지역불균형마저 낳고 있다. 교육당국이 중·고교 재배치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이러한 상황 변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학교가 지역사회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 때문에 이 또한 쉽지않은 과제다. 자칫 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뇌관을 안고있다. [제주의소리]가 중·고교 재배치 구상이 왜 나왔는지, 갈등 소지를 줄일 묘안은 없는지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 제주시 도심권 고등학교 분포 현황. 남자 고등학교는 제일고와 오현고가 동, 서부에 배치돼 그나마 낫다. 하지만 여자고등학교는 아라동과 영평동에 몰려있다. 지금은 신제주권 여학생 통학 불편 민원이 크지만, 삼화지구 인구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인다면 신제주권과 같은 민원이 커질 수 있다. ⓒ제주의소리

[현안 떠오른 중·고교 재배치] ② 추진 명분은 충분...문제는 도민여론·묘안

이석문 교육감은 왜 지금이 제주시내 중⋅고등학교 재배치의 적기라고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급격한 도시 팽창 때문이다.

옛 제주시(동(洞)지역) 내 고교 중 2000년대 이후 신설된 고교는 없다. 굳이 따진다면 외고(2004년)가 있지만, 옛 제주시와 인접한 애월읍에 위치해 있다. 그 바로 전에는 과학고(1999년)와 영주고(1995년, 당시 교명은 제주공고)가 개교했다.

하지만 이들 고교는 특수목적고(외고·과학고) 또는 특성화고(영주고)다.

일반고의 경우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최근에 생긴 일반고는 남녕고로, 1986년에 개교했다. 또 사대부고·대기고 1984년, 중앙여고는 1980년 문을 열었다. 결국 일반고는 30년, 특성화고는 20년째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학교는 고교에 비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신제주권의 한라중(2002년)과 노형중(2013년), 이도동의 탐라중(2011년), 삼화지구의 오름중(2013년) 등 중학교 4곳이 2000년대 들어 개교했다. 

이들 학교 바로 직전에 생긴 중학교는 아라중(1992년)이다.

1970~80년대 도시 확장과 함께 광양 등에 자리했던 학교들이 신제주, 화북, 아라동, 영평동 등지로 잇따라 이전했다. 당시만 해도 광양은 여전히 땅값이 가장 비싼 핫(Hot)한 곳이었다.

오현중⋅고 1972년, 제주여중⋅고 1972년, 제일고 1983년, 제주고 1976년, 중앙고 1984년, 신성여중⋅고는 200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당시엔 대부분 소나무 숲이었다.

교육 당국은 기존 학교 부지를 팔아 이전 재원을 확보했다. 학교 입장에서도 아쉬울 게 없었다. 더 큰 부지에다 신축 건물로 보금자리를 옮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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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도심권 중학교 분포 현황. 대부분의 학교가 중앙로를 따라 원도심~아라동에 몰려있다. 남자 중학교와 공학의 경우 원도심과 신제주, 삼화지구, 이도동 등지에 고루 분포하고 있지만, 여중은 그렇지 않다. ⓒ제주의소리
2000년대 들어 제주시 신제주(연동·노형동)와 아라⋅영평동, 삼화지구 인구는 점점 증가했다. 이들 지역은 한창 '뜨고있는' 곳이다.  

최근 개교한 중학교가 이를 설명해준다. 탐라⋅아라⋅한라⋅오름⋅노형중학교 모두 이들 지역에 생겨났다.

많은 학교가 생겨나고, 또 옮겨갔던 1970~80년대 상황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에는 학교 이전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들 학교를 과거처럼 도심지 외곽으로 이전하는 것도 결코 쉽지않다. 통학거리 때문이다. 학교간 부지를 맞바꾸더라도 향후 도시 구조 변화 등을 예측해 배치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직도 서부, 동부지역 많은 학생들이 도심지 학교로 통학하고 있다. 

옛 제주시의 학교 분포는 4개 구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신제주권과 원도심, 삼화지구, 아라·영평동 등이다. 

지금은 신제주권과 원도심에 인구가 몰려있지만, 삼화지구와 아라·영평동의 인구 증가 추세를 봤을 때 이들 지역 교육 수요 예측도 반드시 필요하다. 

즉, 당장 신제주권에 교육적 요구가 많다고, 눈에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려 한다면 향후 10년 뒤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엄밀히 말해, 현재 학교 정원만으로도 공급은 충분하기 때문에 학교 신설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새로운 학교가 생기면 기존 학교의 학생수가 줄어 학교 운영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굳이 신설한다고 해도 여중·고가 필요하지만, 교육부에서 허가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결국 현실적인 해법은 학교 재배치로 귀결된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 재배치 문제만 잘 풀어도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수요, 통학거리 등 민원을 해결할 수 있고, 지역 균형발전도 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교육감은 지난 1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제주시 도시 규모가 급속도로 확장됐다. 지금 (옛 제주시)학교 상황은 도심 구조에 맞지 않는다. 변화를 수용하기 위한 정책적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학교 재배치 문제는 단순히 교육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도민사회 여론도 중요하다.

제주시 중⋅고교 재배치의 명분은 충분하다. 이제 성패는 이 교육감이 어떤 묘안을 짜내고, 어떤 방식으로 그 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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