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7일, 제주의 시인·작가·평론가 등 문인을 포함한 17명의 답사팀이 인천공항을 떠났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혜의 호수, 바이칼호를 만나기 위해서다. 이 거대한 호수가 품은 이야기들은 그들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것이었을터. 3박 5일간의 짧은 일정 속에서 문무병 시인이 느낀 감흥들을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문무병, 바이칼호를 가다] (3) 알혼섬 샤머니즘의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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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바위 음바위와 양바위 사이에 있는 성황당(이렛당). ⓒ 문무병

1. 사랑의 바위

알혼섬 부리야트 사람들의 사랑을
신화 없이, 온몸으로 말하는 바위,
하트 모양의 사랑 바위,
사랑이 진하게 쓰여 있는 바위,
설명이 필요 없는 정말 기막히게 조화로운 성소였네.
다른 어떤 바위보다 바이칼의 샤머니즘을 잘 말해주는
바이칼의 화산섬 알혼섬의 호보이 곶 가까이,
자연이 말하는 바이칼의 정기가 서린 명당,
남녀가 교합하면 아이를 낳는다는 바위,
하트 모양의 사랑의 바위, 암 바위와 양 바위,
그리고 가운데는 볼록하게 털이 자란 듯
제주 이렛당 같은 잡목에는 지전물색이 걸린
아기를 낳는 바이칼의 성황당이 있었네.

처음에 멀리서 그곳을 보면,
천사의 날개처럼 부드러운 바람 일고
누운 여인의 부드러운 능선은 가까이 갈수록
거친 돌산 두 개 앞뒤로 서 있었고,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생산의 고통인 듯,
여자가 다리를 벌려 편하게 누워 있는
두 개의 무덤처럼 보이는 음양의 큰 바위 돌산은
위치를 바꾸고 보면, 가깝고 멀리,
온갖 형태의 삶을 잉태하는
가운데 두툼한 신혈(神穴) 위에 신목과 지전물색
너무나도 아름다운 바이칼의 성황당
제주 마을의 성소, 아이를 낳고 길러주는 이렛당이
가까이서 보니, 제주의 아담한 신당이었으니,

제주의 심방은 신당의 나무 아래 서서
왼쪽 가까이엔 음 바위,
오른쪽 멀리엔 양 바위라 하여,
음양이 갈리는 양 바위 절벽 아래는
바이칼에서 제일 깊다는 수심 1638m의 심연,
밤에 몰래 음 바위에 가 남녀가 잠을 자면,
딸을 낳는다는 너무나도 효험이 있는 음 바위,
부리야트 사람들이 음기가 너무 세서
음기에 눌려 어김없이 딸을 낳는다는
음 바위, 사랑 바위에 눈을 꽂고,
양 바위에 가 잠을 자도 아들은 낳지만,
아들 낳는 양 바위는 부리야트 사람들에겐 인기가 없다는
속설을 믿으며, 허무한 듯 멀리 양 바위를 들여다보며,
밤에 몰래 찾아가 아이를 만드는 사랑 바위,
합궁을 하고, 신에게 보트카를 올리고 가는,
아이를 낳는 사랑 바위, 바이칼의 음기가 흐르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관리하고
이승의 생산, 호적, 저승의 장적을 관리하는 본향당,
바이칼 부리야트 사람들의 성황당 사랑의 바위에서
제주의 순례자들은 절 삼배하고, 바위 위에 동전을 놓고,
보드카 대신 한라산 소주를 바이칼 호수에 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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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바위. ⓒ 문무병
2. 부르한 바위

바이칼은 샤먼의 호수,
하늘 바다 바이칼을 이야기하는 알혼섬,
샤먼의 성지 ‘부르한 바위’를 노래하세.
하늘과 땅 사이,
풍부한 샤먼의 정기(精氣) 가득한 천해(天海) 안에서
제일 큰 알혼섬의 ‘알혼’은 생각하네.
부리야트어로 ‘알혼’은 ‘메마르다’는 뜻이라네.
인간 세계는 언제나 풍요 속에 빈곤한 삶이라,
태초에 바이칼에 샤먼의 세상을 열었을 때부터, 
알혼섬 부르한 바위는 샤먼의 성지가 돼 있었네.

‘알혼섬’은 원시의 낙원인거야. 
‘나무도 거의 없는’ ‘나무가 드문’
때 묻지 않은, 황폐한 땅이었지만,
원시의 어둠에 새벽의 여명 묻어 있어 바람 일고, 
민족의 조상들은 ‘알혼섬’ 광활한 초원에 가축을 키우며,
평화로운 마을 언덕에 세르게를 세우고, 샤먼은 천제를 지내
‘햇볕 잘 드는 땅’, 우리의 ‘아사달’ 같은 땅 일궈냈으니,
여기 길이가 75km, 너비가 15km가 되는,
거제도의 두 배되는 바이칼의 알혼섬이라네.
샤후르따에서 바지선으로 알혼섬에 도착,
알혼의 북쪽 끝, 호보이 곶까지
구 소련제 지프를 미니버스로 개조한 고물차 
‘우아직’을 타고 덜컹거리며 달리는
길 없는 길의 북녘 끝은 바이칼의 미여지벵뒤,
하늘 올레까지 다녀 온 사람은 알리라.

순례자의 눈에 분명 그곳은 하늘올레,
호보이 곶에서 풍덩 몸을 던지면 눈앞에 나타나는 그곳은
호수의 심연이 아니라 천상신 하느님,
텡그리가 계신 하늘이었다 하네.
바이칼이여, 하늘 길을 여는 바다여, 아름답구나!
그렇다네. 하늘 가는 길은 바이칼에 빠져
흑수바다를 건너가는 저승길이라네. 

바이칼은 사방 어디를 봐도 푸르고 명징한 하늘 바다지만,
알혼섬은 메마르고 황량한 초원이라네.  
알혼섬의 섬마을 후지르 마을 동산에는
아득한 옛날, 샤먼의 성지 부르한 바위 쌍봉이
천해에서 솟구쳤으니, 마을 안 높은 언덕에 알혼섬을 지키는
천신 텡그리와 바이칼의 산과 강을 지키는
열 세명의 아들이 내려와 샤먼의 땅을 지키고 섰네.
13분 신위를 모신 13개의 세르게, 그리고 장승까지
부르한 바위를 호위하고 섰으니, 과연
성스럽구나. 세계 9개의 샤머니즘 성소 중이 하나라 하는
부르한 바위여, 자랑할 만하구나. 샤먼의 바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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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한 바위가 있는 언덕위의 세르게와 장승. ⓒ 문무병

우리 제주의 순례자들도 모두 모여 와
가지고 온 한라산 소주 바이칼에 부어
한라산 백록담의 물과 바이칼의 물을 합수하여
하늘에 천제를 올렸다네. 정말 행복했다네. 
우리처럼 성황당과 하늘에 제사하는 부리야트 샤먼과
제주에서 온 17명의 심방들 모여 하늘에 제사하니
후지르 마을 부리야트 사람과 우린 모두가 형제일세.

우리는 부르한 바위를 배경으로 두고
13개의 세르개 앞에 제단을 차려
간절한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 빌었으니
바이칼의 천상신(天上神) 텡그리 하느님이시여,
그리고 13명의 아들 신들이시여.
첫째 아들은 힘이 장사, 샤먼의 무조신(巫祖神)이고
둘째부터 열세 번 째 아들까지는 바이칼에서 갈려나간
산과 강물의 신들이여, 바이칼의 영들이여,
모두 평안하소서.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부르한 바위가 보이는 언덕 에 서서
5색 천이 칭칭 감긴 13개의 신위(神位)를 뜻하는
열 세개의 세르게 앞에서
다시 한 번 영기어린 부르한 바위를 보니,
멀리 붉은 기운이 도는 바위는 하늘로 치솟는 듯 빛나고
주위는 아직도 환한 빛으로 가득한데
시베리아는 아직도 백야, 밤 9시라 하네.
부르한 바위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가고,
밤이 깊을수록 성령으로 충만한 기운이 느껴져 오네.

부르한 바위, 시베리아 샤먼의 정령이 깃든 곳
부리야트 사람은 이곳을 신성시하여
부르한 바위에 있는 동굴 앞을 지날 때는
일체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며,
여자들은 아예 이 동굴에 들어가지 못 한다 하는 
이곳은 수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영적인 에너지를 축적해 가는 샤먼 바위, 샤먼 부우달,
부우달은 바위나 청동 혹은 철로 이루어진 물건이라니
‘부르한 바위’를 ‘부르한 부우달’로 고쳐 부르기도 하는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일반인들은 ‘부우달’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특이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르한 부우달이라 부른다 하네.

바이칼 샤머니즘의 성소인 부르한 바위 주변에는
효녀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  
바이칼에서는 상인에 의해 
물결이 거센 바이칼의 ‘인당수’에 몸을 던지던 
희생 처녀가 금빛 비늘을 가진 물고기로 환생을 하여
신들의 세계인 바이칼에서 살게 됐다는 이야기는
심청전의 인간 희생 모티프와 너무나도 닮았구나. 
그래서 알혼섬의 부리야트인들은 예로부터
항해의 안전을 빌기 위해 희생을 바쳐
하늘 바다에 천신제와 수신제를 지냈다는 하네.

부르한 바위는 몸 전체가 온통 바윗덩어리인 채로
앞은 프리모르스키 산맥이 흐르고, 
호수 건너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  
바위산은 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네.
알혼섬의 부르한 바위는 그래서 신성한 걸까? 
그곳이야말로 최고신, 즉 샤먼 신앙에서 섬기는
가장 큰 신 가운데 하나가 내려와 주재하는 곳,
땅이 정리되지 않아 악신이 많던 시절에,
천상신 텡그리가 부르한 바위에 그 신을 내려 보냈으며
신은 그 자리를 거처로 삼아 악신을 물리쳤다 하네.
또한 텡그리님은 세 마리 독수리를 보냈는데,
그들이 각각 샤먼으로 변하여 바이칼인의 조상이 되었다 하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머리와 가슴이 흰 독수리를
샤먼의 분신으로 여긴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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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혼섬 부르한 바위를 배경으로 서 있는 김수열 시인. ⓒ 문무병

바이칼의 부리야트 사람들은
샤먼의 종류를 세 부류로 나누었는데
흰 샤먼과 검은 샤먼과 도구를 만드는 샤먼이라네.
첫째 검은 샤먼은 힘의 신, 악의 신이며,
이미 세상을 등진 인간들의 혼백이나
지상에 떠도는 다양한 영적인 존재와 인간들 사이를
매개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 하며,
둘째, 흰 샤먼은 치료의 신, 선한 신이며,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존재들과
교통하는 존재를 의미한다네.
셋째는 도구 제작의 기능을 지닌 샤먼이라 하네. 

샤머니즘 의식을 치른다는 것은
신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다는 의미이며,
제사의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
첫째는 가족들이 지내는 제사요,
둘째는 종족단위로 지내는 제사요,
셋째는 철마다 지내는 계절제사로
요즘은 여름에 파종한 후 가을에 수확하기 전에
땅의 신에게 감사제를 드리는데 이를 ‘타일라간’이라 하네.
천상신 텡그리(Tengry)는 샤머니즘에서 나온 말이고,
이와 같은 뜻인 부르한(Burkhan)은 불교에서 나온 말이니,
두 단어 모두 ‘하느님’, 혹은 ‘부처’를 뜻하는 말이요
텡그리라는 말은 징기스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다네.

훌륭한 샤먼이 되려면,
먼저 어렸을 때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자신을 키워줄 스승 샤먼을 만나야 하네.
스승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자신을 분별력 있는 샤먼으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
샤먼이 되는 데는 남녀 차별이 없지만,
여성 샤먼은 예언을 많이 하고,
남성 샤먼은 제사를 주관한다 하네.
샤먼들의 공적인 위계는
마을에서 누가 얼마나 신통하다고 인정받는가에 달렸으며,
샤먼의 단계는 모두 9단계로 나뉘는데
나(바이칼의 샤먼 발렌친)는 5단계 정도의 샤먼이요.

러시아의 샤먼과 한국의 샤먼의 차이는
러시아에선 샤먼을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지요.
다른 이들처럼 똑같이 일하면서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이를 샤먼이라 하지요.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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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종교가 지녀야 한 미덕이니
부르한 바위를 통해 우리는
바이칼의 샤머니즘과 샤먼을 만났고,
우리 큰굿과 신화의 시원을 찾아간
제주에서 온 순례자들은 하늘바다에 몸을 헹군
정말 아름다운 성지 순례자가 되었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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