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섬에서 가객 김광석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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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30일 제주시 세이레아트센터에서 열린 ‘김광석추모공연, 가객에게 부치는 편지 세 번째 이야기’공연 모습 / 사진=조남희 시민기자 ⓒ제주의소리

[조남희, 제주사름으로 살기]① 급변하는 제주, ‘귀눈 왁왁’해도 열린 공간 

지난 1월30일 제주시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김광석추모공연, 가객에게 부치는 편지 세 번째 이야기’라는 공연이 있었다. 조그만 소극장의 2회 공연이 300석 만석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는데,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10여팀의 뮤지션들과 스태프들이 출연료도, 일당도 마다하고 만들어낸 결과였다. 

폭설 때문에 한 주가 연기되고, 유료공연인 것을 감안하면 작년 공연의 매진사례에 이어 좋은 결과를 거둔 셈이다. 필자도 공연팀 중의 하나인 ‘밴드 문제’의 일원으로 공연을 함께 했다. 

공연 전날 밤, 공연장 앞 관객 대기실을 꾸미기 위해 밴드의 멤버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예산이 넉넉지 않다보니 거의 모든 것을 자원봉사로 기획단과 준비팀이 직접 세팅해야 해서, 공연팀과 스태프 구분할 것도 없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했다. 

공연팀 소개 패널을 벽에 설치하고 김광석 등신대 포토존을 마련하고, 관객용 음료를 준비하는 등의 작업을 끝내고 공연장소로 가보았더니 음향팀이 무대 음향을 조정하고 있었다. 무대 영상을 출력하는 LED대형스크린도 설치되고 있었다. 

내가 도무지 얼굴을 알 수 없는 스태프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이 공연이 이제 ‘우리끼리’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던 때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발전하고 커졌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우리끼리’, 즉 매년 공연을 준비하던 사람들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에 왠지 모를 묘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공연 당일 오전 공연팀들이 시시각각 리허설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생각은 조금 더 커졌다.

올해 공연은 작년의 공연과 같은 출연진이 70% 정도를 차지했다. 객석에 앉아 그들이 준비한 노래를 별 기대감 없이 들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출연진들이 아는 팀들이고 친하고 익숙한 뮤지션들이어서 기대감 없이 앉아있던 게 미안해질 만큼 그들이 준비한 노래는 내게 참 좋았고, 예상했던 익숙함과 지겨움이란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자 ‘이대로, 우리끼리’에 대한 미련은 더욱 커져서, 이 추모공연이 내년에 맞이할 변화가 벌써 걱정되고 아쉬워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이 뮤지션들이 여전히 무대를 채웠으면 좋겠고, 내년에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조명 아래 박수를 받으면 ‘우리가 매년 이 공연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라는 꼰대 같은 말을 하게 되진 않을까, 좀 익숙하고 지겨우면 어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닥쳐오는데 그것을 막을 수는 없고, 막지 않는 것이 맞다는 것은 알겠는데 막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감정. 그냥 우리끼리 지내면 좋겠는데,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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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30일 제주시 세이레아트센터에서 열린 ‘김광석추모공연, 가객에게 부치는 편지 세 번째 이야기’공연 모습 / 사진=조남희 시민기자 ⓒ제주의소리

그런데 이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지 싶더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 나보다 먼저 오래 이 섬에서 살아왔을 사람들 이야기다 싶어 순간 아득해졌다. 그런 마음과 감정일 거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어도 갑작스레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보니, 역사상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제주의 현재를 살아가는, ‘귀눈이 왁왁’(귀와 눈이 캄캄한 이란 뜻의 제주어)한 일이 남 일이 아닌 것이다.
 
알 수 없는 씁쓸함과 묘한 역지사지의 감정들 속에서 해매이다가, 나는 무심코 꺼내들은 책에서 작은 단서 하나를 찾은 듯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고 신영복 교수는 그의 마지막 저서 ‘담론’의 첫 장 ‘가장 먼 여행’ 에서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변방이 창조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레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창조적인 공간이 되지 못한다. 중심부보다 더 완고한 교조적 공간이 될 뿐이다. 우리의 교실은 자유롭고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총괄기획자는 이제 이 공연은 내 손을 떠났으며, 더 발전되는 공연을 위해 기획단과 출연진도 많은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며 마무리를 했다.  

이 공연이 매년 성공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공연팀이든 기획단이든 육지에서 온 이들과 제주에서 살고 있던 이들이 제법 잘 섞여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일이 없이 각자의 역할을 척척 해내면서도 상업적인 지분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김광석이라는 음악인을 관객들과 함께 기억하고 그의 음악에 한번 빠져보자는 순수한 목적 하나를 가졌다는 점. 제주도를 사랑하고 좋은 공연예술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욕심 없이 뭉쳤다는 점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육지의 비슷한 어떤 공연을 모방하려 하지 않았고 정직하고 단순한 스타일로 공연을 기획하고 만들어냈다는 점도 있겠다.    

자유롭고 열린 공연이 되어 매년 창조와 발전을 거듭하는 공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년에 누가 새로 공연을 함께 하더라도 ‘이 공연을 만들려고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공연을 소중히 여기고 힘들어도 함께 가겠다는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리라 믿으니까 말이다. 

내가 사는 이 섬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조적인 변화를 이어갈 것이라 믿는다. 막힌 섬이 아닌 자유롭고 열린 공간이 되어, 이제 오는 사람이든, 먼저 와있던 사람이든, 그것을 선하고 정직하게 이어갈 것을. 

 조남희 시민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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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넘게 쭉 서울에서만 살았다. 잘 나가는 직장, 꽤 많은 월급, 떠들썩한 도시의 삶은 그녀에게 허울 좋은 명함, ‘소맥’을 제조하는 기술, 만성적인 어깨 통증과 뱃살을 남겼다. 삶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던 어느 날, 미치도록 좋아하던 제주로 왔다. 이곳에서라면 숨통이 트이고, ‘조남희’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른 섬 제주에 정착한 지 4년이다. 제주살이에서 겪은 다사다난 좌충우돌 이야기를 ‘서울 처녀 제주 착륙기’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해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살아보려는 이들과 ‘개념 있는’ 정착을 꿈꾼다. 일하고 글 쓰고 가끔 노래하며 살고 있다. 2016년 <제주의소리>를 통해 ‘조남희, 제주사름으로 살기’ 연재를 시작한다. *'사름'은 사람이란 뜻의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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