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굴하지 않고 제주4.3진실 파고든 예술
'주홍글씨' 굴하지 않고 제주4.3진실 파고든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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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제주4.3이 국가추념일이 되고, 어느덧 70주기를 바라보고 있다. 자유롭게 4.3을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예술가들의 역할은 실로 컸다. 온갖 탄압과 손가락질, ‘빨갱이’라는 붉은 낙인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 하나로 붓과 펜,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4.3은 양지로 나왔지만, 4.3예술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있다. 시대의 변화 앞에 아픈 역사인 4.3이 과연 어떻게 기억되고 전승돼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제주의소리>는 4.3 68주기를 맞아 4.3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예술가들과 지난한 4.3예술운동, 4.3예술의 현주소, 그리고 4.3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4.3과 예술] 소설·시·미술·노래·영화로 4.3에 다가가다 
① '강요된 침묵' 깨뜨린 4.3예술
② 70주기 앞둔 4.3예술, 현주소는?
③ 4.3예술, 어디로 가야 하나?

# 거대한 '금기의 벽'에 균열 낸 <순이 삼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제주4.3을 이야기하고, 4.3의 진실을 깨닫기까지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은 제주도민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초창기 4.3진실규명에 앞장선 학술연구, 언론과 함께 예술은 단순히 4.3의 상처를 보듬는데 그치지 않았다. 진실을 막아선 권위, 이념의 벽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 바로 예술이었다.

지난 2002년 제주4.3연구소와 광주5.18연구소가 공동으로 연구한 주제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재현’의 첫 번째 결과물인 <기억 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2004, 역사비평사)를 통해 4.3예술운동의 큰 물줄기를 살펴보자.

1961년 5.16 군사반란으로 전면에 등장한 군사정권이 20년 이상 집권하는 동안, 그 전부터 숨죽이며 살았던 4.3 피해자, 유족들은 더더욱 침묵을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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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발간된 소설 <순이 삼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 역시 가로막힌 현실에서, 1978년 어느 제주 작가가 세상에 내보낸 중편 소설은 4.3을 둘러싼 흐름을 바꿨다. 소설은 지금이야 널리 알려진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다. 

북촌리 학살사건 현장을 생생히 묘사하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있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폭로한 이 작품으로 저자는 매질과 고문을 감수해야 했다. 

<순이 삼촌>에 대한 의미나 해석은 보는 이마다 다를 수 있으나, 4.3과 4.3예술을 이야기 하는데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기억 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 집필에 참여한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김영범 교수는 “4.3에 대한 일체의 논의가 금기시되던 폐색 상황에서 그 진실의 한끝이라도 드러내고 알리려는 의지는 문학과 예술을 매개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 최소의 시도가 <순이 삼촌>을 비롯한 현기영의 일련의 소설작품이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책 속에서 밝힌다.

판매금지에도 알음알음 널리 읽혀진 <순이 삼촌>은 거대한 '금기의 벽'에 일종의 작은 틈을 만들어냈다. 그 틈에서 새어나오는 물줄기는 점점 커지면서 추모의 자리를 만들고, 각 예술분야로 뻗어나갔다.

# 침묵의 시대, 진실 밝히려는 예술혼

소설의 경우, 현기영은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잃어버린 시절>(1983) 등의 작품을 계속 써냈고, 1980년대 들어 현길언, 오성찬, 고시홍, 한림화의 작품도 이어졌다.

1988년 재일작가 김석범의 소설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 등이 국내에 번역돼 소개됐으며 김석희, 오경훈, 김관후, 이석범, 정순희, 김창집, 함승보 등이 1987년 6월 항쟁 이후 4.3 소설을 발표했다. 1991년 한림화는 최초의 4.3장편소설 <한라산의 노을>을 펴낸다.

시는 1980년대 들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문충성의 <수평선을 바라보며>(1979), 김수열의 <이장>(1983),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1987) 등을 비롯해 김명식, 김관후, 김용해, 강덕환, 김경훈, 문무병, 김경홍, 허영선 등도 작품 활동에 나선다.

4.3을 미래 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그림책도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2003), <붉은 동백꽃>(2004), <테우리 할아버지>(2014), <나무 도장>(2016) 등 다수에 이른다.

1990년 이후 1998년부터 제주작가회의가 펴내는 문예지 <제주작가>, 한라산 관음사가 주관한 4.3문학상, 제주도와 4.3평화재단이 주관하는 4.3평화문학상 등을 통해서도 많은 작품이 발굴됐다.

희곡은 장일홍, 김경훈 등을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했으며, 놀이패 한라산은 1987년 7월 창립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마당극을 제작하며 연극 운동의 명맥을 잇고 있다.

미술 분야는 1987년 그림패 바람코지가 본격적인 운동의 시작으로 꼽힌다. 1990년 강요배 화백의 연작미술전 <제주민중항쟁사>는 나중에 <동백꽃지다>라는 화집으로도 묶어 발간되는 전시다. 

3년에 걸친 작업기간과 생생한 묘사, 4.3의 전 과정을 묘사한 스케일은 강요배 개인의 명성을 크게 높여줬고, 작품들은 4.3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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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요배 화백의 작품 <동백꽃 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강요배 화백이 3년간 작업한 결과물을 모은 화집 <동백꽃 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탐라미술인협의회가 1994년 출범하고 동시에 시작한 제1회 4.3미술제 <닫힌 가슴을 열며>는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며 사람들이 미술로써 4.3을 기억하는데 큰 역할을 맡고 있다.

강요배, 강태봉, 고길천, 고민석, 고혁진, 김동수, 김수범, 박경훈, 박소연, 부양식, 송맹석, 양미경, 오윤선, 오석훈, 이원우, 정용성, 정윤광, 허순보, 강문석, 고원종, 김영훈, 김현돈, 송준주, 양기훈, 양천우, 현경화 등 많은 미술인들이 탐미협에서 활동하며 미술제를 이끌었다. 4.3미술제는 2014년(21회)부터 탐미협 회원전이 아닌 외부 작가도 함께하는 모습으로 변화를 꾀한다. 

음악, 노래의 경우, 1982년 제주대학교 졸업생들로 구성된 ‘숨비소리’가 모습을 갖춘 운동의 시초로 꼽힌다. 그러던 중 1987년 제주가 아닌 밖에서 4.3을 직접적으로 다룬 최초의 노래가 나오는데, 바로 <잠들지 않는 남도>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활동하던 안치환이 만든 이 노래는 4.3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4.3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들어서 ‘우리노래연구회’가 활동을 이어갔고, 작곡가 최상돈은 1993년 시인 이산하의 시에 살을 붙여 만든 <세월>을 비롯해 2001년 <애기 동백꽃의 노래> 등 많은 곡을 발표한다. 

1992년 창작소리판굿을 공연하는 민요패 소리왓이 창립했고, 2003년 2월 노래패 ‘노래빛 사월’과 ‘섬하나 산하나’는 ‘노래세상 원’으로 통합해 현재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4.3평화음악제 같은 행사를 계기로 젊은 음악인들이 과거 4.3 노래를 재해석하거나 창작하는 시도가 보이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4.3의 국가추념일 지정에 맞춰 2015년 4.3의 노래 제작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영상물은 1980~90년대에는 제주지역 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증언 모음 등 다큐성 프로그램이 주축을 이뤘다. 전국 단위 방송에서는 1991년 MBC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4.3을 작품 소재로 일부 다루며 화제를 모았고, 1999년 상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제주4.3>은 전국 시청자들에게 4.3을 알린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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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개봉한 영화 <지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영화는 ‘제주4.3다큐멘터리제작단’이 제작한 <무명천할머니>(1998년)와 조성봉 감독이 이끄는 ‘하늬영상’의 <레드헌트 1>(1997)이  당시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레드헌트 1>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무명천할머니>는 제1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우수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다. <레드헌트 1>로 국가보안법 논란에 휩싸인 조성봉 감독은 1999년 <레드헌트 2>를 제작하며 꺾이지 않은 의지를 내비쳤다.

2010년대 들어 4.3을 대중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영상물로는 2013년 개봉한 오멸 감독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이 돋보인다. 독립영화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전국관객 14만 4700명을 모은 <지슬>은 4.3예술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해 임흥순 감독은 제주출신 프로듀서 김민경과 손잡고 4.3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함께 다룬 작품 <비념>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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