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2016.09.13]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묘산봉으로 이어지는 빌레왓길 입구. 아침부터 마을 주민들이 일손을 멈추고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여명의 주민들이 입구를 둘러싸더니 곳곳에서 큰소리가 오갔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며 플래카드를 걸자는 고성까지 튀어 나왔다.
임성만 김녕리장이 성난 주민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곧이어 승합차량 한 대가 현장에 들어서더니 판사들이 서류를 들고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치솟는 땅값에 과거 마을의 농로로 사용했던 땅까지 팔려나가며 농로를 막는 것도 모자라 마을 주민간 얼굴을 붉히며 소송까지 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서현석 부장판사)는 4일 오전 11시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빌레왓길 인근에서 마을회가 제기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등기 소송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논란의 땅은 김녕 농산물 저온저장고에서 묘산봉으로 이어지는 김녕 빌레왓길 인근 6만5167㎡(1만9747평)이다.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농로로 사용하던 마을공동 재산이었지만 당시 구장(리장)인 A씨 명의로 땅을 등기하면서 일이 꼬였다고 주장했다.
1934년 토지정리 과정에서 이 땅을 마을회 소유로 등기하려 했지만 법규상 허가가 나지 않자, 당시 구장(리장)이던 김모씨 이름으로 등기를 했다는 것이 마을 주민들의 주장이다.
반면 토지주의 후손들은 A가 당시 구장이라는 증거도 없고 명의신탁한 사실도 없다며 마을회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A씨 후손측은 "마을회의 억지주장으로 오히려 우리 가족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애초 땅은 할아버지 소유였고 최근 땅 값이 오르자 마을회에서 소유권 주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 땅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2월20일 김씨의 아들 명의로 소유권 보전이 이뤄졌다.
1992년에는 김씨의 아들에서 다시 손자에게 상속됐다. 2008년 3월25일에는 손자 명의로 등기이전 절차도 마무리 됐다. 문제는 이 땅이 제3자에게 매각되면서 불거졌다.
올해 1월 이 땅은 다시 다른 사람의 명의로 증여가 이뤄졌다. 마을공동 소유로 알았던 이 땅이 제3자에 넘어가자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한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토지를 매입한 땅 주인이 인근 토지까지 매입해 매립을 하면서 과거 농로에는 사람 키 높이의 돌이 쌓였다.
농로가 막힌 마을주민 A(74) 할머니는 “수십년간 사용하던 길이 하루 아침에 벽이 생겼다”며 “밭으로 가는 길이 막혀 현재는 농사조차 짓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날 현장검증에서 마을 주민들은 해당 토지가 100년 넘게 농로로 사용됐고 해당 부지 내 나무들도 마을회 차원에서 조림사업을 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현장에서 만난 해당 토지주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땅을 매입했을 뿐 농로를 당장 막거나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다.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 이장은 “토지주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부득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 마을을 위해 해당 토지를 매입하는 등 최대한 중재 방안을 이끌어 내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A씨 후손측은 "마을회측의 일방적 주장으로 우리 후손들이 마치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매도되고 있다"며 재판을 통해 억울함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과거 농로로 사용하던 땅을 후손들이 팔면서 소유권과 관련한 각종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며 “사익 간 소송에 행정이 개입할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의 소송 결과를 지켜보면서 제주도에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지원하도록 하겠다”며 “땅 값이 오르면서 향후 이 같은 분쟁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