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직 칼럼]정치권은 상생의 정치를 만들어야

봄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는데
집 마당에는 한겨울 모습 그대로 꼼짝 하지 않고
서있는 나무 한그루가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눈 속에서 피어났던 홍매화는 제쳐 놓고라도
잎이 나오기 전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이며,
벚나무, 개나리, 수선화는 화려했던 꽃잎들을 벌써 땅으로 돌려주었고,
청단풍은 눈부신 연초록의 새잎으로 단장을 끝냈다.

움직임이 굼뜨다는 감나무며, 배롱나무까지도 조그만
봄 잎들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는 참인데

대추나무만은 단단한 껍질 탓도 있겠지만
밤공기가 아직은 차다고 느끼는지
순을 틔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같은 계절을 느끼는 느낌은 다 다른
모양이다.

존 F 케네디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성경 귀절이 하나 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고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을 할 때가 있고 평화로울 때가 있느니라."

( 전도서 3장 1-8절 )


한바탕 전쟁 같았던 선거전도 끝이 났다.

지혜로운 국민들이 적절한 표의 안배를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16대 국회처럼 야당이 야합하면 말도 안 되는 탄핵을 당할 정도의
작은 여당을 만들어 주지도 않았고
여당도 반성할 점이 있다는 것을 깊이 깨우치고
교만하지 않을 만큼의 표를 야당에게도 주었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하는 일없이
세비만 축내며
내분과 정쟁만을 일삼던 이들에게는
그에 해당하는 국민의 분노를 보여주었다.

더하나 고무적인 일은
그동한 아웃사이더로 벌판에서 투쟁만 해야 했던
민주 노동당에게도
진보의 뜻을 제도권 안에서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7대 총선이 다 잘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완연한 지방색의 감정표가 작용한 지역도 있었고

드물어지긴 했지만
정말 사라져야 할 정치인 몇몇은
여전히 17대 국회에도 끼어든 반면

이들로 인해
정작 국민을 위해 국회에서 자리를 지켰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의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대대로 물려줄 부와 기득권을 가진
어느 부자 동네들은
표시나게 보수에 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여하튼
사상 최악의 회기를 보낸 16대 국회보다야
아무려면
17대 국회가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갈등과 미움의 골을 메꾸기 위해
서로의 허물을 들추기 보다
용서를 베풀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상생의 정치를 17대 국회는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미움으로 서로의 마음을 찢을 때가 아니고
그 상처를 꿰메야 할 때이고

비방과
당리당략과
권모술수와
야합과
검은 돈의 정치는 버려야 할 때이며

지금은
진리의 깃발을 높일 때이고
사랑의 목소리로 대화 할 때가 온 것이 분명하다.

밤기운이 조금 서늘하긴 해도
비온날 아침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이 향기롭다.

잔인하다는
4월의 봄도

저만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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