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다솜발달장애인대안학교(다솜학교) 정문.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 '백만불짜리 다리' 만들기 위해 구슬땀...대회 조직위, 다솜학교 지원키로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초원이는 자폐성 장애인이다. 20살 청년이 된 초원이의 지능은 여전히 5살 수준이다. 엄마가 없으면 혼자서 밥도 차려먹지 못하는 초원이. 그러던 어느 날 초원이가 달리기에 재능을 보였다.

초원이 엄마는 아들이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오직 아들을 위해 달리기 연습을 시킨다. 그림일기를 쓰던 초원이는 '내일의 할일'에 마라톤 맞춤법을 몰라 '말아톤'이라 쓰기도 한다. 그렇게 달리고 달린 초원이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에 성공한다. 

영화 ‘말아톤’ 줄거리.

말아톤은 지난 2001년 19살 나이로 춘천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42.195km를 2시간57분7초의 기록으로 완주한 자폐성 장애인 배형진(34)씨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라는 감동적인 대사를 남긴 영화 말아톤의 감동이 제주에서 실현된다.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제주 다솜발달장애인대안학교(다솜학교) 학생 12명이 오는 10월15일(토요일) 제주시 구좌읍 구좌생활체육공원에서 펼쳐지는 ‘2016년 제9회 아름다운 제주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 교사 구령에 맞춰 줄넘기를 정리하고 있는 다솜 학생들. 줄넘기를 정리하는 것도 다솜 학생들에게는 공부의 일종이다.
19일 오후. 40평 남짓한 1층 건물 다솜학교 거실에서 발달장애인과 자폐성 장애, 정신지체,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어린이와 청년들이 줄넘기를 들고 서 있었다. 거실은 학생들에게 사실상 운동장이다.

작은 교실 3개와 교무실. 좁은 공간 탓에 교무실은 창고를 겸해 사용된다. 혹여 학생들이 다칠까봐 교실에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물건을 놓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거실에는 2개의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학생들은 선생님 구호에 맞춰 줄넘기 줄을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흔들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서 있었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줬다. 단순하고, 쉬운 행동(몸짓)일 수 있지만, 학생들은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됐다.

비영리단체 사단법인 한국발달장애인협회 부설 다솜학교는 성인·고등 ‘청춘불패’와 초·중등 ‘무한도전’ 등 2개 반으로 구성됐다.

▲ 김덕홍 다솜 학교 교장이 학생들에게 줄넘기를 가르치고 있다.
청춘불패에는 정훈(28·정신지체 1급), 건우(27·지적장애 1급), 원철(26·정신지체 1급), 유리(20·발달장애 1급)씨, 경태(19·발달장애 1급), 수현(18·자폐성장애 2급), 한성(17·자폐성장애 1급), 승현(17·발달장애 3급)이가 공부한다.

무한도전에는 정민(16·발달장애 1급), 진우(12·자폐성발달장애 1급), 성민(12·지적장애 2급), 지웅(11·자폐성장애 1급)이가 있다.

큰 형 정훈씨부터 막내 지웅이까지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지능은 비슷하다. 어떤 부문에서는 5살, 또 다른 부문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 이상을 넘지 못한다.

다솜 학교에 정훈, 건우, 원철, 유리씨, 경태처럼 이미 성인인 학생들도 다니는 이유는 부모의 의지 때문이다.

자신이 힘들더라도 직접 돌보고 싶어서다. 또 병원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낮 시간대에는 학교에 자녀를 맡긴 뒤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직접 자녀를 돌본다.

장애시설에 보내자는 주변 사람들의 제안에도 ‘부모로서’, ‘부모이기 때문에’ 매일 자녀와 함께 하고픈 게 부모 마음이다.

지난 1989년 거북이 조기교실로 문을 열고, 자폐아동 교육을 시작한 다솜학교는 다솜조기교육원, 다솜어린이집 등을 개원하고 지금은 종일·방과후반을 운영중이다.

제주에는 특수학교인 영지·영송학교가 있어 비영리단체 대안학교인 다솜학교는 국가나 지방단체, 교육청 등으로부터 이렇다할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 공모에 신청해 일부 예산을 지원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솜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 다솜학교 교무실. 공간이 좁아 각종 비품들이 놓여져 있다.
다솜학교 학생들이 비장애인보다 지능은 다소 떨어질 수 있어도 언젠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꾸준한 교육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단순히 특수학교를 다니다 성인이 되면 장애시설로 보내지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모습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처럼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도 찾아줘야 하다.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요즘 다솜학교 학생들은 '줄넘기 축제'를 위해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연습을 거의 매일 하고 있지만, 줄넘기 1개를 뛰어넘는데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2년 동안 줄넘기를 배워 1개를 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다솜 선생님이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 조직위원회에 손을 내밀었다.

만남을 청한 이유는 다솜 학생들의 ‘아름다운 도전’을 위해 아름다운 마라톤 참가를 도와달라는 것, 그리고 매년 아름다운 마라톤 주최 측이 어려운 이웃에 전달하는 기부금을 이번에는 다솜 학생들을 위해 써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조직위는 다솜학교 학생들의 아름다운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참가비를 일절 받지 않기로 했다.

'의기투합'이 되자, 다솜학교 학생들은 오는 23일부터 매주 금요일 마라톤 연습을 시작할 예정이다.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상 처음 간 곳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마라톤 코스를 방문, 지리를 익히기 위한 것이다.

또 아름다운 마라톤 조직위는 올해 기부처에 다솜학교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기부천사'들의 참가비 일부가 기부금으로 쓰이기 때문에 참가자가 많을수록 다솜학교에 대한 온정은 더 뜨거워진다.

아름다운 마라톤 조직위는 지난 2008년 첫 대회부터 서남아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 필리핀 등 해외는 물론 제주 동부 아름다운 청소년 센터와 아름다운가게, 김만덕기념관 건립 등에 기부금을 전달해왔다.

작년 대회까지 총 기부액이 1억7000만원을 넘어섰다. 현재 조직위는 가칭 ‘아름다운 1020’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10회 대회에는 누적 기부액이 2억원을 돌파한다는 의미다. 

김덕홍 다솜학교 교장은 “다솜 학교는 비영리 단체 대안학교라 이렇다할 지원이 없다. 여기서 일하는 고호경·양윤희·문영미·강윤정·양은실·문영행 교사들의 월급은 쥐꼬리 만하다”며 “그래도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솜 학교 학생들이 아름다운 마라톤에 참가해 아름다운 도전을 펼친다.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다솜학교 후원 계좌.
62-01-006410 제주은행 (사단법인 한국발달장애인협회)
351-0743-1913-83 농협 (사단법인 한국발달장애인협회)
문의 = 064-758-0877.

다음은 아름다운 도전을 앞둔 다솜 학생들.
강한성.jpg
▲ 한성(17.자폐성장애 1급).
문경태.jpg
▲ 경태(19.발달장애 1급)
변수현.JPG
▲ 수현(18.자폐성장애 2급)
변승현.jpg
▲ 승현(17.발달장애 3급)
양원철.JPG
▲ 왼쪽부터 원철(26.정신지체 1급)이와 유리(20.발달장애 1급)
이진우.JPG
▲ 진우(12.자폐성발달장애 1급)
장지웅.jpg
▲ 지웅(11.자폐성장애 1급)
조성민.JPG
▲ 성민(12.지적장애 2급)
현정민.JPG
▲ 정민(16.발달장애 1급)
현정훈,박건우.jpg
▲ 왼쪽부터 정훈(28.정신지체 1급), 건우(27.지적장애 1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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